양극화에 출판질 떨어질까  [04/12/24]
 
매출감소 찬바람속
300억대 출판사 등장
자금력 바탕 시장 싹쓸이
“열정·다양성 훼손”우려도

2004년, 한국 출판사상 최초로 단행본 출판사의 매출이 ‘300억원대’에 접어들 전망이다. 반면 규모가 작은 대다수 중소출판사들은 그야말로 ‘사상최악의 한해’였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올 한해 우리 출판계는 한마디로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의 한 해로 평가할 수 있다. 출판이 산업인 점을 감안한다고해도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출판의 특성에 비춰볼 때 올해 유례 없이 심화된 ‘양극화’는 자칫 부작용을 파생시킬 것이란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대형출판사와 소형출판사에게 천당과 지옥이란 정반대의 두얼굴이었던 올해 출판계를 정리해본다.

초유의 불황속 소형출판사들 생존 몸부림=규모는 작아도 인문교양서를 꾸준히 내고 있는 한 출판사는 최근 직원이 4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직원 2명이 ‘알아서’ 먼저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사표를 수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담했지만 그나마 회사가 계속 존속되는 것이 다행일뿐”이라고 이 회사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올해 출판불황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서점의 대명사격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개점 23년만에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이 줄어든 사실이 잘 보여준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광화문점 매출은 지난해보다 0.91%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서점 매출액은 외환위기때에도 소폭으로나마 늘었고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었다. 교보 관계자는 “극소수 분야를 뺀 모든 부문에서 책 판매량이 줄어들었고, 컴퓨터(-15.3%)와 소설(-11.8%), 유아(-10.4%)분야가 특히 감소했다”고 밝혔다.

대형출판사 매출은 되려 급신장=주요 출판사들의 자체집계에 따르면 올해 매출액 추산치는 랜덤하우스중앙이 320억(지난해 220억-이하 괄호안은 지난해 매출액), 민음사 300억(280억), 시공사 300억(250억), 넥서스 290억(270억), 김영사 270억(234억), 대한교과서 단행본부문 210억(150억), 북21 200억(120억)원으로 예상된다. 업계 전체는 불황인데 대형출판사들은 한결같이 적게는 10%안팎, 많게는 70% 이상 매출액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추세속에서 올해 사상 최초로 매출액 300억대 출판사가 등장하는 동시에 300억대 안팎 출판사가 5개에 이를 전망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들과 소형출판사의 격차는 물론 매출액이 100억원대에 머무르고 있는 2위 그룹과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는 점이다. 또한 10년전만해도 대형출판사 매출액이 최대 50억원대이고 그 숫자가 4~5개 안팎이었는데 이제는 100억원대 안팎의 출판사가 30여개에 이를 정도로 상위권의 덩치가 커지고 있다.

상위권 집중, 정공법 못잖은 변칙의 성과=전문가들은 출판계 구조가 많은 소형출판사들이 숫자와 매출액면에서 모두 기본 토대를 구성하는 ‘피라미드형’이 정상적이며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처럼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우리 출판시장 구조는 몇년새 윗쪽이 크고 아래가 작은 ‘역 피라미드형’으로 빠르게 변화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창조적 소수의 열정과 다양성’을 담보로 하는 출판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한 출판계 인사는 “대형출판사들이 성장한 것은 투자와 장기기획 등의 노력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판매력을 이용해서 무차별적인 할인 공세로 밀어붙여 매출을 늘린 측면도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형출판사들이 풍부해진 자금력을 바탕으로 작가 입도선매나 외국 출판물의 고가 계약을 주도하기 때문에 작은 출판사들이 좋은 필자나 외국 주요 출판물에 접근할 기회를 봉쇄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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