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현기자의 출판 25  [04/12/24]
 
[박종현기자의 출판 25시]올 출판시장 불황..교보문고 매출 첫 감소

팩션류 출간 등 다양한 실험정신 돋보여
국제도서전 주빈국 선정…출판계 위상제고

올해 출판계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을까. ‘불황 속에서도 다양한 실험정신이 구현된 해’라고 하면 무리일까. 외부 환경을 먼저 논하는 게 극심한 불황을 겪은 출판계를 정리하는 순서일 것이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본격화된 출판시장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도 출판인들은 출판 강국 만들기에 애면글면 애썼다. 독자의 감소는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가 연말을 맞이해 밝힌 자료에서 잘 드러난다. 불황기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매출 감소를 경험하지 않았던 교보문고 서울 종로구 광화문점은 1981년 문을 연 이래 23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했다는 자료를 최근 내놓았다. 판매 내용은 보다 실망스럽다. 그나마 판매가 늘어난 부문은 경제 경영서나 외국어 학습서 등 실용서일 뿐 인문서와 예술서 등은 작게는 2%에서 많게는 9% 가까이 판매 부수가 감소했다.

올해는 외환위기에 버금갈 정도로 국내 출판 유통구조의 불합리가 여실히 노출된 해이기도 했다. 출판사의 매출 감소는 중앙과 지방을 망라해 도소매 서점 유통의 붕괴를 불러왔다. 또 할인마트에 책을 염가로 공급하던 ‘벤더’들이 다수 부도를 내 출판사 경영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경기도 파주에 출판 유통 현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올 6월 준공된 ‘북센’은 송인·동국과 함께 도매서적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효율성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서점 간, 출판사와 서점 간에 벌이는 도서정가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도서정가제라는 틀이 흔들리면서 가격이 시장 진입에 큰 역할을 하자 출판사와 서점들은 다양한 마케팅 방법을 도입해 경쟁을 하는 사상 초유의 경험을 하고 있다.

올해는 기업형 출판사가 등장해 토종 출판사들에 위기감을 심어준 한 해이기도 했다. 랜덤하우스가 국내시장에 진출해 랜덤하우스중앙을 설립하고 다량의 책을 내놓으며 독자들의 관심을 끌자 국내 단행본 출판사들은 아연 긴장했다. 그러나 랜덤하우스중앙은 여타 단행본 출판사들과 달리 번역서는 20% 미만으로 한정하고 국내서를 80% 이상 내 일정 부문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역사적 사실성(fact)에 상상력(fiction)을 보탠 팩션(faction)류 작품인 ‘다빈치 코드’와 ‘연금술사’ 등이 베스트셀러를 다툰 것은 올 출판계의 경향을 잘 나타내는 현상이었다.

국내 저자의 책들 중에서도 화제를 일으킨 책이 다수 등장했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와 김태완씨의 ‘책문’ 등이 올해 우리 출판계가 건져 올린 소중한 작품으로 등장한 가운데 밀리언셀러의 퇴조는 확연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더 이상의 밀리언셀러 등장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인구 1억명도 안 되는 한국에서 밀리언셀러가 매번 등장한다는 것은 다양한 가치관의 진작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는 각종 국제 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되거나 초청돼 국제시장에서 커진 한국 출판계의 위상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이 행사 1년을 남기고 바뀌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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