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문인 [04/11/22]
 
[이규태 코너] 담배와 문인

문인협회소속 작가들이 담뱃값 올리는데 항의 집회를 열고 그 뜻을 국회에 전달했다. 담배 없이 글 못 쓰는 직업임을 천명하는 이면에는 하찮은 담뱃값에도 영향받는 쥐꼬리만한 원고료에 대한 항의가 숨겨져있다 하겠다.

골초인 중국의 노벨상 작가인 린위탕(林語堂)은 서재의 탁자 위에 타고있는 담배를 놓는 버릇이 있어 그 탁자부위가 타들어가 얇아지고 있었다. 그 두께를 확인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 그 타들어가는 분량으로 자신의 문필작업의 양과 질을 가눔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탁자가 타들어가지 않은 세월처럼 무미건조한 나날은 없었다고도 했다.

역시 골초인 처칠은 자신 안에 정치인적 소질과 문인적 소질이 공존하는데 후자가 발동하는 시간에 전자보다 세곱의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한국사상 골초를 들라면 인조반정의 공신으로 글 그림 문장으로 손꼽는 장유(張維)를 든다.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내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면 알 만하다. 그의 장인인 충신 김상용(金尙容)이 요초(妖草)에게 홀린 사위를 구해달라고 임금에게 상소까지 했을 지경이다.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들의 담뱃대는 자신의 키의 두배나 길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초기의 담뱃대도 연동(煙童)이 들고 다니며 담뱃불을 붙여야 했을 만큼 답뱃대가 길었다. 나폴레옹이 한국풍물 스케치를 보고 나서 갖고 싶어했다는 것이 기다란 담뱃대였다 했으니 꽤나 길었던 것 같다. 답뱃대가 길수록 담배가 유도하는 경지가 황홀해진다 하여 그 길이와 신명과의 접속농도는 비례하는 것으로 알았으며 긴 담뱃대는 신명을 받드는 지배자나 무당의 상징이었다. 40여년 전 마라도의 정신적 지배자인 무당 할머니가 물고 있는 담뱃대는 2m 이상으로 신물시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하여 담배를 찬양하려는 것은 아니며 담배가 인간의 감각과 영감(靈感)을 접속시키는 다리였음을 역사에서 살펴보았을 뿐이다. 작가의 발상이나 구상이 막혔을 때 터주고 발상의 촉수(觸手)가 허공에서 방황할 때 대상을 잡아주는 구실을 문인들은 체험했을 것이요 담배값 시위는 담배의 직업식량으로서의 비중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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