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의 두 얼굴 [04/12/14]
 
[책장을 펼치며] 교양의 두 얼굴

현대사회에서 반상의 구별을 따진다는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천하없는 상놈'이라는 식의 표현은 서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욕설입니다. 얼마전 텔레비전의 어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천박한 것들' '영국의 권위 있는 귀족 세바스찬' 등의 말이 유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거꾸로 해석해보면 사람은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계층간 계급이 엄연히 존재해 이른바 상놈들이 책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던 때야 교양을 쌓는다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겠지만 요즘에야 어디 그렇습니까. 서점에라도 가볼라치면 교양이라는 이름을 붙인 책들이 넘쳐 납니다. 책 값을 치를 조그마한 경제적 여유와 독서에 할애할 만한 자투리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교양을 갖춘 문화시민이 되는 길은 열려 있습니다. 책이 가져다 준 큰 혜택 가운데 하나입니다.

책 담당 기자인 저에게 신간으로 부쳐져 온 책들을 정리하다 보니 강준만 교수가 쓴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의 강 교수는 서점가를 중심으로 한 교양 붐에 독설을 퍼붓습니다. "왜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교양론 또는 교양을 제공하는 책들은 거의 모두 서구의 저자들이 쓴 서구 이야기인가"라고 말입니다.

똑같은 신화라 하더라도 그리스신화에 정통한 사람은 풍부한 교양을 가진 사람으로 대접받지만 단군신화에 정통해봐야 시대착오적인 국수주의자로 몰리지 않으면 다행이라는게 강 교수의 시각입니다. 똑같은 시사 사건이라도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미주알 고주알 설명하는 건 '학술적' 성격을 가질 수 있는 반면,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그렇게 하는 건 신문 쪼가리를 '짜깁기'한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강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교양개념은 발을 땅에 딛지 않은 채로 공중에 붕 떠 있는 것"이라며 한국적 교양을 주문합니다.

책을 잠시 덮고 생각해보니 강 교수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교양이라는 것을 '목에 힘주기' '현학적인 자기과시' '고상함' 정도로 알고 살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도 듭니다.

저만해도 한때 영화 좀 안다는 티를 내려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테오 앙겔로풀로스, 빔 밴더스 등 발음하기도 어려운 외국 영화감독의 이름을 작품도 보지 않은 채 외우고 다녔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데미안의 구절이나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그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라는 어린 왕자의 구절을 시도때도 없이 읊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이웃에 살던 대학생 누나는 외출할 때마다 무게가 꽤 나가는 일본어 잡지를 옆구리에 끼고 나갔습니다. 심지어 극장에 갈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영화는 불을 끄고 볼텐데 뭣 때문에 들기도 힘든 책을 가지고 갈까 하는 궁금증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동서를 두루 통달한 교양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만 행여 서양문화에 기울어진 교양이거나 '나 잘났소' 식이라면 우리의 사고도 경도될지 모르겠습니다. 교양서적을 고르실 때 한 번쯤 이런 것들을 떠올리는 것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국제신문 염창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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