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평  [04/12/14]
 
출품작 수준 높아져… 주제도 다양

2005년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과 시 부문 예심이 마무리됐다. 문학평론 부문 응모작들은 관례대로 예심 없이 본심에 회부됐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단편소설 8편, 시 22명)은 현재 본심 위원들에게 넘어간 상태다. 본심은 오는 21일 1차로 완료되며, 면밀한 검토작업을 거쳐 본지 2005년 1월 1일자에 공식 발표된다. 예심위원들로부터 금년도 신춘문예 응모작품들의 경향을 직접 들어본다.

◆단편소설 /윤대녕(소설가)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다고 느꼈다. 우선 주제가 다양해졌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문장이 안정된 작품도 많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일상적인 소재들에 매달려 있는 점이 다소 불만스러웠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단편이라는 장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단편소설은 압축된 틀 속에서 고도의 정제된 언어로 전체적인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곧 짜임새를 말함인데, 이것을 빼놓고는 사실 단편소설을 논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몇몇 참신하고 의욕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보람 있는 일이었다.

◆단편소설 /박철화(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어렵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반영하듯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물론 소재의 어둠이 그것 자체로 나쁘지는 않으나, 그 어둠을 풀어내는 목소리가 낯익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발상이 참신하면 구성이 허술하고, 구성이 탄탄하면 발상이 진부한 이 질곡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 소설이 부딪혀 있는 어떤 막다른 골목을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물론 소설이 쓰는 사람의 체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체험을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까지도 보편적인 것이 될 수는 없는 일. 자기의 체험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의도적 노력이 바로 진부한 일상을 뛰어넘는 예술의 인공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나마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려는 몇 개의 목소리가 있었음을 즐거운 위안으로 삼는다.

◆단편소설 /신수정(문학평론가)

‘에나멜 슬리퍼’, ‘판도라 프로젝트’, ‘오드 아이’, ‘포스’ 등등의 영어식 표제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제목은 이제까지 주로 외국 대중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신춘문예라는 순문학 표제 속으로 진주해온 다른 장르의 영향을 생각하면 문학의 잡종성(혼성) 혹은 넓은 의미에서의 영역 파괴 및 경계 지우기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형적인 리얼리즘 소설은 쇠퇴하고 환상적인 측면이라든가 알레고리가 부각되는 현상도 특징이다. 좋게 보면 현실의 다각적인 측면이 소설에 반영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현실에 대한 충실한 재현 능력, 소위 고전적 서사구성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시 /안도현(시인·우석대 교수)

시들이 지나치게 온순하고 안정 지향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고만고만한 상상력,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언어, 습관처럼 손에 밴 듯한 산문시 형태들이 응모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부정의 정신으로 세계를 밀고 나가는 힘이 그만큼 부족해 보였다. 활기 없는 세상이 신춘문예 응모작들에 반영된 탓일까.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인은 늘 긴장하는 자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시 /나희덕(시인·조선대 교수)

전체적으로 산문화 경향이 강해서 압축된 운율미나 시적인 백미를 느끼게 하는 작품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산문적 발성을 기조로 하면서도 새로운 어법이나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시들도 몇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인식의 깊이까지 동반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재는 대체로 도시적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그 변용을 가능케 하는 상상력의 진폭 역시 크지 못한 편이다. 낯익은 비유나 상징도 눈에 자주 띄었다. 자기 삶에서 끌어올린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일정한 시적 경향에 대한 모방이나 상투형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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