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인간의 일기통한 자아찾기  [04/11/24]
 
[책벌레의 책돋보기-말테의 수기]고독한 인간의 일기통한 자아찾기

1904년 로마에서 쓰기 시작하여 1909년 파리에서 완성시키고 그 이듬해 라이프찌히에서 출간한 ‘말테의 수기’(1910)는 시인 릴케가 남긴 단한권의 소설이다. 그러나 릴케의 ‘말테’는 전통적인 소설의 주인공에 비해 너무나 낯선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이 ‘소설’의 첫부분은 여늬 일기와 같이 시작한다. ‘9월11일, 투리에 거리,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에 온다는데, 내보기에는 오히려 여기서 죽어 가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의 다음과 같은 결말은 처음 시작과는 논리적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가 누구인지 어느 누구도 몰랐다. 그를 사랑하기는 무척 어려웠고, 단지 한 존재만이 사랑할수 있다고 그는 느꼈다. 그러나 그 존재는 아직 그렇게 하려들지 않았다.’ 소설의 결말에서는 주인공 말테의 일기속의 ‘나’는 ‘그’로 모두 대체되었다. 자아와 초자아, 의식과 무의식, 개체와 사회사이의 변증법이라는 주제의식은 릴케만의 전유물은 아니나, 전작품을 관통하는 전체 줄거리 없이 71개의 단락으로 이뤄진 ‘말테의 수기’는 호프만스탈에 의해 주도되고 하임, 무질, 카프카를 거쳐 되블린으로 이어지는 소위 산문혁명기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주인공 말테에 대해서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파리에 온 젊은 덴마크 태생의 시인이며, 나이는 28세다. 말테는 영락한 귀족가문 태생이지만, 이제는 안주할곳 없이 이곳 저곳으로 방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낯선 대도시에서 아는 사람도 없고, 물질적 기반도 없이 그저 홀로 내던져져 있다. 작품의 전반부에는 릴케의 파리체험으로 이뤄졌는데, 그가 체험하는 파리는 병원과 무료 숙박소, 질병과 죽음, 가난과 비참으로 가득찬 도시다.

삶과 죽음의 익명성, 자아의 상실과 소외 등의 표현을 통해서 말테의 실존적 불안이 투영되어 나타난다. 다음 단계에서는 유년기 및 청년기에 대한 회상이 이뤄지는데, 현실체험을 결정짓는 것과 동일한 불안과 정체성의 위험들이 이미 말테의 유년기 체험에 내재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개인적 체험 공간을 넘어서, 독서체험에 근거한 서구의 역사와 문학속의 인물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현재적 삶의 문제의식과 연관시킨다.

‘말테의 수기’는 통일성을 지닌 서술형식에서 벗어나 있으며, 인과적인 줄거리의 연관성이나 완결성도 없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도 없는 셈이다. 단지 한 고독한 인간이 오로지 자기자신과 일기쓰기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실존 및 세계속의 현존의 의미를 찾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작품속의 모든 사건은 말테의 내면의 사건이며, 모든 내용은 말테 자신의 내면의 기록이다. 외부 사건은 인과적이 아니며, 외부현실은 말테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온다. 그리고 이 모든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은 말테의 자아탐구와 인간의 존재방식에 대한 성찰이다.


(김영룡 문학평론가)=파이낸셜뉴스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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