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치며] '정글'속의 책, 소박한 소망  [2004. 11. 23]

'193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한 책이 있었습니다. 책은 스스로를 헤밍웨이나 스타인벡 급의 작품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노벨상 후보에는 한번도 올라보지 못했습니다. 6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책은 세 번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가 끝날 무렵 책은 밀라노의 고서점에서 네 번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점은 그 해 여름 문을 닫을 예정이었고 그전에 누군가에게 구제되지 않으면 책은 재활용 폐지로 넘어갈게 될뻔했습니다. 책은 서점에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심장이 멎을 만큼 초조감을 느낍니다. 선택을 받아 떠나는 동료에 대해서는 부러움과 시기심도 교차합니다. 책은 수세기를 지나서도 살아 있는 책,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꿈입니다. 그러나 책은 지금 그런 이상보다는 폐지로 변한 뒤 치즈와 샐러드를 담는 포장지가 되거나 아님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한 줌 재로 변하는 처지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인용한 글은 안드레아 케르베이커가 쓴 '책의 자서전-어느 베스트셀러의 기이한 운명'의 주요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저자는 책을 영혼이 있고 감정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가정한 뒤 1인칭 화자로 내세워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 하게 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만약 책이 사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책은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할까요. 제가 추측하기로는 무엇보다 생존권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출판사라는 어머니의 자궁을 떠난 뒤 서점에 진열됐다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소리없이 사라지는 가치없는 삶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벨상 등 굵직한 상을 받지는 못할지라도, 표지가 찢기고 군데군데 좀이 슬더라도 오래도록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서가에 꽂혀 있기를 바랄겁니다.

책은 또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원할 듯합니다. 책의 세계에도 정글의 법칙은 적용됩니다. 효용가치가 떨어져 찾는 사람이 없으면 가차없이 도태됩니다. 책의 처지에서는 지은이나 출판사가 애초부터 읽히는 책으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겠죠.

반세기전에 나온 책들은 라디오를 싫어했다지만 요즘의 책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엄청나게 미워할 개연성도 큽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손에서 자신을 떠나게 만든 주범으로 인식을 한다면 말입니다.

'책답게 살 만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고물상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주인으로 만나 이리저리 채이다 잡동사니 상자 속에서 암울한 생을 보내는 것은 죽기보다 끔찍한 일인 까닭입니다. 뜨거운 라면 냄비를 올려 놓는 받침대, 잠잘 때 쓰는 베개, 혹은 부부싸움 때 상대방에 던지는 흉기가 된다면 책은 태어난 것을 후회하며 복받치는 설움을 삼키고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천년만년을 살 수 없다면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좋은 주인에게서 귀여움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 소박한 책의 소망일겁니다.

오늘도 책들은 서점의 진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고 먼지 덮인 집 서가의 구석진 자리에서 주인이 다시 한번 불러주기를 애타게 기원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끄고 자신을 꼭 안아주기를 갈망할 수도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책에게 어떤 주인이 되고 싶습니까.


(국제신문 염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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