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04/11/17]
소설가 박경리는 "작가는 결코 벗어놓을 수 없는 두 개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는 생활의 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의 짐이다"라고 했다. 그는 위암 선고를 받은 뒤 혼신의 힘을 다해 '토지'를 쓰면서 그 창작의 몸살에 못견뎌 소설 연재를 중단하다가 다시 이어가곤 했다. 그는 "작가는 마지막에 울어야 하며 최후에 떠나야 한다. 모든 이들이 어디론가로 질주할 때 두렵지만 끝까지 남아서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소설가 최명희는 대하장편소설 '혼불'을 남기고 생애를 마쳤다. 그는 마치 '혼불'을 쓰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그 소설을 완성하자마자 부여잡았던 삶의 끈을 스르르 놓아버렸다. 식민지 시대의 김유정이나 나도향, 이상 등의 작가들은 요절했지만 그들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언제나 우리 곁에 살아남아 있다. 김유정의 삶에 대한 애정은 간절하기 이를데 없다. 그는 폐결핵으로 29세에 쓸쓸한 삶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돈이 있으면 닭과 지네를 고아 먹고 병이 나을 수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죽기 직전에 썼다.
어디 문인뿐이겠는가. 화가 구본웅, 이인성, 최욱경과 조각가 김복진, 권진규처럼 불꽃 같은 삶을 산 예술가들도 있다. 요절한 작가도 있고 긴 생애 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도 있지만 예술가의 생애는 얼마나 살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작품을 남겼는가에 있다. 작가의 생애에서 예술성이 깊을수록 불가피하게 일상적 삶의 행복은 기울 수밖에 없다.
다시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왔다. 1925년 동아일보에서 시작된 이래 한국 문단사에 수많은 문인들을 배출한 등용문인 신춘문예는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작가지망생들의 몸살을 앓게 한다. 요즘은 대학에 문예창작과도 많이 생겼고 창작교실도 아주 많아서 문학도 일종의 전문수업과목이 되어 있다. 생계에도 유용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사회적 출세의 바탕도 되지 않지만 문학에의 열정은 식지 않은 모양이다.
영남일보도 지난해에 이어 시와 소설 부문에서 최고의 당선고료를 내걸고 영남일보 문학상을 공모한다. 열정과 패기에 가득찬 신인들의 도전이 있기를 바란다.
(영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