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치며] 책은 공산품인가

모든 것이 풍족해지다 보니 물건에 대한 애착이 부족해진 세상입니다.

부산 서울 등 지하철이 있는 도시의 유실물보관소에는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이 꽤 쌓여 있고 젊은 세대들은 멀쩡한 휴대전화를 몇달만에 새 기종으로 바꾸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 중 하나인 대량생산 체제가 가져온 일면입니다.

원래 공산품이라는 게 일체의 감정개입 없이 돈을 매개로 판매와 구입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사용해보다 싫증이 나면 쉽게 정(情)을 끊어 버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출판과 서점가에서는 도서정가제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되면서 '과연 책은 공산품인가 아닌가'라는 의문도 자연스럽게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2003년 2월부터 책값의 과열 인하 경쟁으로 학술 문예분야 등 고급서적 출간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책값대로만 팔도록 하는 도서정가제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올해까지는 모든 책에 대해 적용되고 그 이후부터는 취미·여가 활동 관련 도서, 자격증 수험서, 초등학생용 참고서 등의 순으로 단계적으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또 인터넷 서점의 경우 10% 내에서 할인판매가 가능하고 출판된 지 1년이 넘은 도서는 재고로 간주해 책값을 내려 팔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2008년 이후에는 이 제도가 폐지됩니다.

문제는 도서정가제 만료가 임박해지면서 책이 과연 재고 소진을 위해 파격적인 할인도 불사하는 일반 공산품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에 모아집니다.

일부에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제품이 생산되는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박리다매도 마케팅의 일종인 만큼 책에 대해서만 예외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익을 목적으로 자본을 투입해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책은 공산품이 분명하며 공산품을 싸게 팔아 소비자가 만족을 얻는 것이 무슨 시비거리가 되느냐고 덧붙입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책에는 저자의 전문적 식견이나 사상이 투입되는데다 독자는 책을 통해 고도의 정신적 충족을 하기 때문에 일반 공산품과 같은 취급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박을 합니다.

책은 한번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두고두고 간직하면서 활용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손에 넣은 책에 대해 무슨 애착이 생기겠느냐는 겁니다. 또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극단적으로 책 두어 권을 살 때 한 권을 덤으로 끼워서 팔거나 이른바 '땡처리' 방식도 나올 수가 있는데 이게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물론 시각을 달리 해서 본다면 이들의 이런 주장은 책값이 내려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줄어들 자신들의 이익을 염려해서 하는 소리라고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관련 업계에서는 책은 일반 공산품과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토론회를 열어 도서정가제는 반드시 필요하며 연관 법률이 개정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앞으로 정부와 관련 업계가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논리싸움을 벌이겠지만 책 담당 기자인 제가 보기에는 책은 뭔가 좀 특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그것이 참 다행스럽습니다.

(국제신문 염창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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