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편식' 유감 [04/11/10]
[책장을 펼치며] 베스트셀러 '편식' 유감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방문했을 때, 허기를 달래려 음식점에 들어갈라치면 무엇을 주문할 것인가에 대해 적잖은 고민을 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냥 아무 음식이나 먹을 생각이라면 별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이왕 먹는거 조금이나마 괜찮은 것을 선택하려고 하면 뭐가 맛있는지를 통 모르는 까닭입니다.
이럴 때는 주위를 한번 슬그머니 둘러본 뒤 많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적어도 선택에 대해 실망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책을 고르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루에 수십종씩 쏟아져 나오는 책 중에 어느 것이 진짜 좋은 책인지를 가리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비슷비슷한 내용이 많은데다 미사여구로 포장해 놓은 겉만 봐서는 헷갈리기 십상입니다.
이때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공식이 적용됩니다. 이른바 잘 팔리는 책, 바로 베스트 셀러를 찾는 것입니다.
익명의 대중들로부터 '볼만한 책'이라는 최소한의 검증을 받은 것이기에 어느 정도는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긍정적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스트 셀러가 과연 좋은 책인가' 하는 질문에는 즉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용이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하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베스트 셀러 탄생에는 '계획된 마케팅'이나 '미디어 활용'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판사들이 책이 나오면 서점측에 고객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은 고전에 속하는 것이고, 한때는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해 며칠동안 특정 책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잘 팔리는 책'으로 만드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미디어가 적극 활용됩니다. 인맥을 동원해 신문이나 방송의 서평을 이용하기도 하고 독자 사인회 등 대중의 눈을 끌 만한 이벤트도 수시로 엽니다.
특히 어떤 식으로든 방송매체에 책이 거론되면 이른바 '대박'이 터집니다. 지난 5월 막을 내린 모 방송사의 책 관련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 중에 추천할 만한 책으로 거론되기만 하면 그날부터 서점에서는 물건이 동이 나 버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책은 졸지에 베스트 셀러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책의 내용이 담보돼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출판사가 어떤 행동을 취하든 나무랄 것이 못됩니다. 많이 팔린다는 것은 그만큼 독자가 많다는 뜻이 되니까요.
하지만 책은 '낯선 곳에서의 음식 주문'처럼 주위의 분위기에 따라 무작정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만난 한 서점관계자는 매장을 한번 둘러보는 여유도 없이 대뜸 직원들에게 "요즘 베스트셀러가 뭐에요"라고 물은 뒤 그 책을 구입해 나가는 고객들을 보면 허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아마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을 읽지 못하면 친구나 직장동료간 대화에 낄 수 없다는 강박감이 작용한 탓일 겁니다.
서점관계자들은 고객들이 책을 고를 때 주위의 소문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책의 머리말이나 후기, 또는 단 몇쪽이라도 찬찬히 넘겨보기를 권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나오는 책의 홍수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 그건 온전히 독자들의 책무입니다.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