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문학 작품 번역 문화적 검열 추세”

“예전에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외국소설의 금기 대목을 과감하게 번역하면 국가에서 검열의 칼을 들이대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다른 가치관끼리 충돌할 것을 우려해 번역본 출간 전에 출판사나 번역자가 ‘문화적 검열’을 하는 추세가 뚜렷해요.”

도쿄대 비교문학과정 오사와 요시히로(大澤吉博) 교수는 5일 서울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열린 ‘해외석학 초청강연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100여명의 교수와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강연회에서 오사와 교수는 흥미 있는 사례들을 들어가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먼저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에 나오는 대목. 원래 일본 원작에는 “그녀는 결국 남자였는데, 부드럽게 웃었다. 뉴욕 사는 게이가 TV에 나올 때 볼 수 있는 아둔한 미소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실 이 웃음이 암시하는 것보다 훨씬 강했다. 이처럼 강한 에너지의 발산이 오늘날 그녀를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이 부분이 프랑스판이나 독일판에는 그대로 번역됐지만 미국판에선 “그녀의 강점은 화려한 매력이었다. 이게 오늘날 그녀를 만들었다”고 번역해 양이 줄고 내용도 바뀌어졌다. 이는 미국 게이 그룹을 감안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사와 교수는 또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둘러싼 모험’에서 일본판 원작과 프랑스판 독일판에는 “도로가 멜론의 그물눈처럼 얽힌 도시 지도”가 미국판에서는 “도로가 거미집처럼 얽힌 도시 지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에선 보편적이고 자연스런 비유를 쓰는 번역 관행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북미권의 경우 원래 텍스트보다 자국 독자 취향에 맞춰 번역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럴 경우 가독성은 높아지지만 문화간 가교 역할을 하는 번역 본래의 역할은 다소 줄어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도쿄大 오사와 교수)=동아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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