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돌아온 ‘새침떼기’,슬프고도 애잔한… [04/11/05]
은희경이 돌아왔다. 그는 그동안 변한 한국사회가 적응이 안된다며 엄살을 떤다. ‘도시에 처음 온 부시맨’처럼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희경은 2년여에 걸쳐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학의 방문연구원으로 지냈다. 소설 쓰고 텃밭 가꾸며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고 로키산맥으로 산행, 태평양으로 바다낚시 쫓아다니는 등 심적 여유의 삶을 살았다.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본 계기가 되었고 생각의 크기와 거리 감각 등이 달라졌다고 한다.
은희경은 자타가 공인하는 새침데기다. 교양 있고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로 타인을 대한다. 가끔은 한없이 망가지고(?) 싶을 때도 있다지만 겁이 많아 완전히 망가지지도 못한다. 그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금방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지인들을 자주 만나는 것을 자제한다. 그래서 등단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교류하는 ‘문우’가 그리 많지 않다. 아마 너무 어른스럽게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장편소설 〈새의 선물〉을 읽어보면 안다.
은희경은 전북 고창에서 유년을 보내고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이를 보다 못해 부모님은 밤엔 책을 못 읽게 했다. 그래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뒤집어쓴 이불 속에서 전등을 켜고 책을 보았다. 초등학교 때 이미 문예반 활동을 하며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했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더 이상 작가의 삶을 미룰 수 없다’는 각오로 한 달간 휴가를 내어 서울을 떠나 다섯 편의 단편을 썼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 서른여섯의 나이에 중편 〈이중주〉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리고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은희경과의 첫 만남의 장면을 기억할 수 없다. 그의 기억을 빌리면 2000년 현기영 선생의 문학상 수상식 뒤풀이에서라고 한다. 불콰한 얼굴로 과메기 안주와 막걸리를 권하면서 자신에게 집적거렸대나…. 하지만 1998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내 판화달력과 교환해 읽었던 기억이 있으니 그 이전인 것만은 틀림없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 한마디 하라고 하니 ‘비 오는 가을날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은 풍경’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우리가 앉아 있던 찻집의 창밖 풍경을 그대로 묘사하는 순발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은희경은 어릴 적부터 ‘초저녁의 달을 쫓아다니는 조그마한 별을 볼 때마다 슬프고 애잔한 느낌이 들곤 했다’고 한다. 그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난 후에 느끼는 페이소스의 뒷맛을 그의 장서표에 새겨 넣고 싶었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