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춘추] 책을 고르는 마음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으면 조그만 ‘동네서점’으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번 읽으면 끝’이란 생각에 소설류는 쳐다보지도 않고, ‘폼나는’ 철학책이나 엉뚱한 학과의 개론서 따위를 뒤적거리곤 했지요. 너댓 권쯤 안아들고 계산대로 오면, 맘씨 좋은 주인아줌마가 몇 퍼센트씩 깎아주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약속은 꼭 서점에서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도서관보다 책이 많은 ‘대형서점’이란 곳을 알고부터였지요. 서가에 꽂힌 책들을 빼 보는게 즐거웠습니다.

어차피 끝까지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무거운 종이봉투를 들고 서점을 나설 때면 괜스레 ‘유식’해진 것 같아 우쭐한 기분이었지요.

언제부터였을까요. 그 뿌듯함, 즐거움이 제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서점을 가도 어떤 책이 팔리는지, 어떤 독자가 무엇을 사는지만 쳐다봅니다. 책 만드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란 건 변명일 것입니다. 지식을 채우기보다는 그것을 사용하기에만 익숙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한가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 권 한 권 뒤적이며 책을 고르던 그 ‘마음’만은 말입니다. 내가 만든 책을 누군가 그렇게 꼼꼼히 뜯어보고 있다고, 그러다 ‘에잇’ 하고 내려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한번 더 연구하고 매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권의 책이 팔린다는 것은 그 책에 담긴 에디터의 마음이 독자 마음에 가 닿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거꾸로 책을 산다는 것은 그것을 책으로 만드는 데 개입한 사람들의 생각과 노력을 함께 사는 일일 테지요. 에디터와 독자는 그렇게 책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민기 출판기획자ㆍ두앤비컨텐츠 대표)=한국일보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