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사상의 시장'은 없다 [04/11/01]
 
이념갈등 50년간 제자리 걸음
사상의 시장 독점한 색깔론

20대 때, 꽤 탐독했던 책이 최인훈의 소설이다. 그의 ‘지식인 소설’은 당시의 젊은이들을 외국고전이라는 먼 이역으로부터 귀향하게 했다. 근래 많은 영화 팬이 할리우드로부터 돌아온 것과 비슷하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광장’ ‘회색인’ 등 잇단 문제작을 낸 그는 함께 고뇌하고 방황하고 모색하는 선배이자 스승이었다.

10년 전쯤 인터뷰했을 때, 그는 거의 글을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안타까웠으나 어쩔 도리도 없어 보였다. 그는 소설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끝 마쳤던 것이다.

좌우이념과 정치체제, 민족과 사랑, 종교와 철학 등 동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치열하고 날카로운 필치로 작품에 쏟아 부은 뒤였다.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그의 성격과 지성이 허투루 진부한 사랑 타령이나 역사 얘기 등을 쓰게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의 말은 대강 이랬다. “우리 사회는 전후 40년이 지난 지금도 성숙해 있지 않다. 정상적이라면 지금쯤 이념갈등과 계층불화 등을 치유하고, 큰 틀의 새 가치관을 세웠어야 한다.

완전할 수는 없지만 ‘어떤 사회에서 어느 방식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통합과 화합을 이뤘어야 한다. 나는 작품으로 할 말을 거의 다 했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직도 불안할 뿐이다.” 그 쓸쓸한 말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언론학 시간에 인상 깊었던 말이 ‘사상의 시장’이었다. 진리와 거짓이 ‘사상의 시장’에서 맞붙게 될 때, 진리가 언제나 승리하게 된다는 낙관적 전망이 매혹적이었다.

존 밀턴의 이 유명한 주장은 300년 후 미국 언론으로 이어지며, ‘자동조정 원리’라는 말로 설명된다. 미국 허친스위원회는 선언한다. “어떤 것이 진리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진리와 오류를 ‘사상의 시장’에서 검증 받게 해서 진리를 인쇄하는 것이 그대들의 임무다.”

인상 깊었던 말들이 가슴을 조여 오고있다. 전후 50년이 지나도록 모순과 부조리는 여전하고, 사회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방황하고 있다. 우리가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 현실이 쓰라리다.

이유는 해방 후 YS정부 때까지 집권층 성격에 거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DJ 때 겨우 변화가 싹텄으나, 그의 주요정책이던 ‘햇볕정책’은 거대 보수세력의 ‘북한 퍼주기’라는 비난을 돌파하지 못했다.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시도는 출발선에서부터 보수 언론의 제동을 받기 시작했다.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방해는 집요하다.

보수 야당은 자기들 책임이 더 컸던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이 좌절된 것을 기화로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진상규명법 제정,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관계법 등을 싸잡아 반대하고 있다. 그냥 기회주의적 정치만 하는 게 아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4개 입법에 좌파적 색깔을 입히고 있다.

원산지인 미국에서도 땅에 묻힌 지 오랜 매카시즘이 개혁을 방해하는 영묘한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이 현실이다. 근거 없고 비열한 색깔론이 한 번 휩쓸면 국민의 정치수준은 몇 십 년 후퇴하며 황폐화한다.

최근 ‘워터 게이트 사건’ 특종으로 유명한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말은 차라리 서글프다. “미국에는 위대한 전통이 있다. 대선이 끝나면 모든 정쟁이 끝난다. 미국민은 매우 성숙한 사람들이다.”

‘사상의 시장’을 신뢰하는 것만큼 어수룩한 짓도 없다. 한국에서는 이 시장이 작동을 멈춘 지 오래다. 작동은커녕, 보수 일변도의 여러 신문들은 개혁 얘기만 나오면 국론분열이라고 쐐기를 박으며 역기능을 일삼는다.

‘진리와 거짓이 이 시장에서 맞붙게 되면 진리가 언제나 승리한다’는 말은 소극에 불과하다. 한국의 ‘사상의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것은 아직 색깔론과 국론분열 주장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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