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도서전과 서커스'

문화계 인사인 K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한국 도서전을 하는데 왜 북한 서커스단이 공연을 해요?”

그가 흥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主賓國)인 우리나라가 현지에서 여러 문화 행사를 펼칠 예정인데, 그 가운데 평양교예단의 공연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곧바로 주빈국 조직위로 확인했더니 사안은 이미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조직위의 한 인사는 “남북한이 이번 행사를 함께한다는 인상도 주고 싶었고, 또 독일측도 남북한 공동의 마당이 되기를 바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공동의 마당’을 목표로 조직위는 여러 경로를 통해 평양교예단의 독일 공연을 타진해 왔다. 통일부를 통해 직접 접촉하려 했다가, 지금은 독일측 문화기구가 남북한을 동시에 초청하는 형식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위 인사는 “독일측을 통하는 이유는 순전히 예산 때문”이라며, “우리가 직접 북한 서커스단을 부를 경우 저쪽이 상당한 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 액수가 10억원을 상회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현재 조직위는 독일의 까다로운 건축법에 평양교예단의 공연장 설치 규격이 안전상 어느 정도 부합할지를 알아보는 데까지 왔다.

한국 조직위 행사의 일환으로 평양교예단이 독일 공연을 하면 한국의 이윤택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돼 있다. 그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북한의 남자 곡예사와 우리 동춘서커스단의 스타인 꽃님이가 공중에서 함께 만나는 장면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남북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엮어보겠다는 뜻이다.

조직위는 지난여름 이강숙 위원장이 민간 지원의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돌연 사퇴한 뒤 아직 위원장 ‘영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돈을 모으기 위해 새로 명예위원장 자리를 만들고 유수 기업의 오너나 그 가족을 ‘모셔오는’ 방법, 혹은 마지막 카드로 청와대의 대통령 영부인에게 그 자리를 맡아달라고 간청하는 카드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해진 소식이 평양교예단의 독일 공연 추진이다.

물론 조직위가 계획한 문화행사는 50개가 넘는다. 종묘제례악도 선보일 것이고 현대음악도 연주될 것이다. 조직위는 임영웅, 오태석, 김민기씨의 작품공연도 계획했지만, “아직 독일측의 확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공연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 책을 펴놓고 한국 책에 대해 말해야 하는 한국 책의 축제에 “왜 북한인가?” “왜 서커스인가?”에 대한 공론(公論)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로 극작가 차범석씨는 “이강백씨 희곡들처럼 독일어로 번역된 우리 작품도 있는데, 그걸 제쳐 놓고, 많은 돈을 들여 북한 서커스가 간다는 것은 우습지 않으냐”는 의견을 말했다. “확정한 뒤 반대에 부딪혀 시끄럽기보다 사전에 여론을 좀 들어보라”는 충고이기도 했다.

지난주 한국을 찾았던 스위스 작가 페리클레스 모뉴디스씨는 이런 말을 했다. “도서전은 문화교류의 장(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의 책을 널리 알려 해외 출판업자들과 계약을 많이 맺는 게 중요합니다.” 자기들도 주빈국 때 작가 70여명을 투입하고 여러 행사를 치렀지만, 결국은 번역 출판 계약을 얼마나 많이 맺느냐가 관건이었다는 뜻이다.

(조선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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