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이 길을 밝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04/10/30]
 
별빛이 길을 밝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왠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죄르지 루카치의 초기작 <소설의 이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책 내용은 내 기억 속에서 산산히 흩어져버렸지만 이 구절만큼은 항상 내 삶의 좌표 구실을 해왔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책을 만들면서 어려울 때 나를 지탱해준 버팀목이었다. 지난해, 새롭게 출판일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걱정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었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말이 내가 겪는 고통만큼은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삶의 현실이라면, 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출구로 나는 이 구절을 되씹어보곤 했다.

아울러 내가 책을 만드는 행위는 무엇을 소유하거나 업적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인문정신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그 일은 결국 남들이 보기에 위태롭고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길없는 길 위에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적 행위라고 한다면 기꺼이 가야 할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더욱 그랬다. 때로는 이 구절이 너무 투명해보여 몸서리쳐지기도 하지만 너무도 혼탁한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면 가끔은 처절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절박한 계기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지나치게 이상향을 꿈꾸다보면 현실을 무시하고 형이상학적 세계에 빠지겠지만, 항상 현실과 연결시키면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이상향이라면 그것만큼 건강한 사유도 없지 않을까.

이승우/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한겨레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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