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 법 [04/10/28]
 
[데스크 시각]잊는 법

‘망각의 알약’이 나온단다. 이 약을 먹으면 끔찍했던 기억도 지울 수 있고, 지워버리고 싶은 사연도 깨끗이 없앨 수 있단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9일 ‘망각의 알약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이며, 지금까지 연구성과는 꽤 성공적이지만, 그만큼 망각 요법의 부작용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현재 미국과 프랑스에서 이 약의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고통스러운 기억을 아예 지울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신적인 장애를 가져오지 않을 정도로 저장하거나, 잊고 싶은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이 약을 복용하면 고통을 상당부분 해소시켜준다고 한다.

이른바 상처에 무덤덤한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당해도 그저 그런 듯이, 그렇거나 말거나 싶은 ‘도통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모양이다. 물론 지금 개발되고 있다는 ‘망각의 알약’이 기억 자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감정촉발 효과를 둔화시키는 수준이라지만, 한편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아예 없애버리는 연구까지 진행되고 있단다.

이 ‘망각의 알약’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잘 ‘잊는 것’이 개인에게나 한 민족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다. 유대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1961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2차대전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판하면서 이른바 상처받은 민족이 그 상처를 어떻게 해야 잊을 수 있는가를 실례로 보여줬다.

사실 아렌트의 작업은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학살을 방조하고 도리어 지원하기까지한 동족의 유대인을 고발하는 내용이었지만, 그의 자기고발 방식은 민족의 내상을 치유하는 법을 보여줬다고 평가받았다. 민족 전체의 공통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란 문제를 놓고 아렌트는 상처를 모두 끄집어내서 끝까지 괴로워하고 나서야 치유된다고 본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는 이른바 ‘과거사 관련 법안’ 또한 이 ‘잊는 법’을 서로 찾자는 것이다. 어떻게 미래지향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것인가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 민족의 공통 트라우마라 할 수 있는 일제 치하의 기억과 한국전쟁의 기억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망각의 알약’에 관한 기사를 읽고 있으면, 외형적으로는 이 알약이 우리 민족의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겠다는 만화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 ‘망각의 알약’이 갖는 기능은 오로지 잊게 하는 데 있을 뿐이란 점에서 치유의 기능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상처란 잊기만 해야할 것이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개인이나 한 국가가 성장하는 디딤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잊는 법’이 있을까 싶다.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과거의 상흔과 잘 동거할 수 있는가다. 상흔과 잘 지내는 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망각과 타협과 자기방어식의 논리개발도 나올 것이다.

고통스러운 기억도 개인에게는 정체성의 일부이며, 상처 속에서 내가 커가고, 상처와 대응하면서 내가 유연해진다.

양귀자의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상처도 힘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상처를 잊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상처와 잘 동거하는가를 찾아내는 데 있다. 그렇다면 ‘망각의 알약’은 필요없는 약일 수 있다.

(배문성 / 문화부장)=문화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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