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산업 통계가 없다 [04/10/27]
 
한국 문화가 산업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 산업으로서 기초가 탄탄하냐` 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가 부재하다는 데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시장 규모는 물론 시청률을 제외한 모든 매출 수치는 추정치에 불과하다.

9월 10일 발매된 이수영 6집을 보자.

음악산업협회 9월 집계에서는 22만1116장이지만 25일까지 한터의 일일 판매 누 계는 오히려 그보다 줄어든 18만7000장이다.

반면 이수영 기획사는 이제까지 30만장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는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관객 동원 수치를 놓고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극장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배급사에 관객 수를 허위로 줄여서 보고하고 배급 사나 제작사측은 흥행 붐을 조장하기 위해 관객 수를 수천, 심하게는 수만 명 씩 늘려서 발표하기도 한다.

◆ 음악ㆍ출판계 "출고량=판매량"

음악과 출판은 반품과 도소매라는 독특한 구조 때문에 정확한 판매가 집계되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음반판매량을 집계하는 곳은 한국음악산업협회와 인터넷 사이트 한터닷컴 단 두 곳.

음악산업협회는 회원사들이 제출한 자료를 월별로 집계한다.

그러나 이는 출고 량이 대부분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반면 한터는 자체 개발한 음반관리 프로그램으로 매장에서 실제 판매한 음반을 정확하게 집계한다.

그러나 전체 소매점 중 15%에 불과해 이를 표본으로 전국 판매량을 추정한다.

도매상 직영점이나 온라인 판매는 실제 집계하지 않으므로 경우에 따라 오차범 위를 넘어설 수 있다.

어느 것도 정확한 판매량은 아닌 셈이다.

출판 역시 대부분 반품조건부 방식으로 유통된다.

일단 유통업체나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나중에 정산하는 방식으로 책이 팔리면 돈으로 주고, 안 팔린 책은 반품하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창고에서 책이 나갔다고 해도 모두 팔린 것으 로 볼 수 없다.

반품률이 40%까지 되는 경우도 있다.

김인호 한국출판인회의 정책기획위원장은 "통계를 기본적인 인프라스트럭처로 인정하고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절실하다" 고 말한다.

◆ 극장 입회용역비만 2억원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96년부터 통합전산망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 러나 통합전산망 시범사업자 선정 과정에 따른 갈등과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법정소송 등 우여곡절로 8년 만인 올해 초에 이르러서야 통합전산망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국 극장 전산망 가입률은 50%에도 못미친다.

아직 전국 150 개 극장이 전산화가 안돼 관객 수 집계를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강 원도는 전산화된 극장이 단 한 곳도 없다.

김동현 시네마서비스 배급팀 차장은 "배급사와 직배사들은 입회용역사에서개봉 영화의 전국 성적 집계를 보고받아 자체 박스오피스 성적을 산출해야 한다" 고 말한다.

영화를 상영할 때마다 입회사에 용역을 주고, 아르바이트생들이 극장 입구에서 관람객 머릿수를 직접 센 후 배급사에 보고하는 `원시적인` 방식이다.

서울 지역 관객 수를 토대로 전국 관객 수를 추산하는 관례도 여기에서 비롯된 다.

현재 영화 입회용역회사는 대략 8개 업체. 입회인 1인 일당 용역비는 평균 3만 5000~5만원 정도다.

2~3주 개봉하는 영화의 경우 평균 5000만~6000만원이 기본 인건비로 들어간다.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실미도` 는 무려 2억여 원이 들었다.

산업 전체로 보 자면 불필요한 돈이 들어가는 셈이다.

◆ 돈, 의욕, 의지 부재

이처럼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1차적으로 생산자와 유통업체 에 있다.

음악은 산업 틀을 갖추기 이전에는 현실과 맞지 않는 세제 등을 이유로 각종 탈세와 절세, 무자료 거래가 횡행했고 지금도 여전히 사업 투명화를 꺼리는 분 위기가 남아 있다.

극장측은 경영상 문제로 전산화 비용 부담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민간기업의 경영정보를 실시간으로 내놓으라는 것은 억지라는 비 판도 있다.

◆ 정확한 데이터는 국가 문화산업의 기초

다행히 최근 들어 정부와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가시화하고 있다.

음악은 음반시장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진행중이다.

영화는 영진위에서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가입을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 하고 있다.

관건은 빠른 실행이다.

"산업 전반 현황이나 지역별ㆍ연령별 판매 추세를 알아 야 치밀한 전략이 나온다" 는 음반 관계자 말처럼 판매 집계는 단순히 소비자 취향의 증거 이상이다.

정확한 관객 수와 판매량이 집계되는 미국 영화와 음악 이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매일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 지역별ㆍ연령별 시청률 집계가 나오는 방송이 한국 문화에서 가장 산업적 틀을 잘 갖추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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