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치며] 책 욕심 한번쯤 가져봐도…

제 주변 사람들 중에는 책 욕심이 많은 분들이 꽤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건전한(?) 분들이어서 주위로부터 "무슨 재미로 사냐"는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책을 사는데는 뭉텅뭉텅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 저같은 필부로서는 참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미혼인 한 지인은 마음껏 책을 읽을 만한 서재를 갖추려면 적어도 40평대 이상의 아파트가 필요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결혼을 안하는 이유를 강변하기도 합니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요. 감히 이들에게 견줄 수 없지만 저만해도 슬그머니 책에 대해 욕심이 납니다. 책 담당 기자를 하다보니 1주일에 수십권의 신간이 출판사서 부쳐져 옵니다. 그러면 저 책을 모두 집에 가지고 가 꽂아 놓으면 얼마나 뿌듯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행여 제 집에 놀러온 사람들이 저를 지금과는 달리 존경스럽게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계산도 하면서. 그러나 저는 그럴 만한 서재를 갖출 능력도 없거니와 집이 솔아 서가가 들어갈 만한 공간도 없으니 언감생심입니다.

얼마전에 출판 평론가 표정훈씨가 '탐서주의자의 책'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습니다.

탐서주의자라는 단어가 무척 낯설었는데 표씨는 '책의 소유를 삶의 유일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책 내용보다는 책 자체를 중시하며 책을 진(眞)과 선(善)위에 두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 말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고개는 끄덕거려집니다.

얼마전 부산의 모 대형서점에서는 중3 여학생이 책을 슬쩍 가지고 나가다가 발각됐습니다. 서점 직원이 여학생의 집에 가봤더니 이런 식으로 모은 책이 수십권에 이르더라는군요.

이 소녀를 탐서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고 절도 행위에 대해 결코 두둔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아주 나쁜 또래와는 달리 별로 '돈이 안되는' 물건을 손댄 것에 대해서는 조금 연민의 정도 느껴집니다.

출판사 궁리의 인터넷에는 '책 사냥꾼'이라는 재미있는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책 사냥꾼이 보통의 사냥꾼들과 다른 점은 사실상 일상 생활의 모든 장면들 속에서 사냥감을 물색하는 안테나를 접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친구집 서가라든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서점이라든가,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라든가, 버리지 않고 쌓아 둔 몇 년 전 신문더미라든가…. 도서관 이용의 경우 치사한 사냥 방법이기는 하지만 불법 복사 및 제본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사냥감이 천연기념물에 해당하는 경우,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구할 길이 없는 경우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도 책 사냥꾼의 양심은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이쯤되면 이들의 책에 대한 집착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천성이 게을러 탐서주의자나 책 사냥꾼은 못될지라도 내심으로는 모두가 책 욕심을 한번 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뿌리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양식을 쌓는다는 판에 박힌 말은 제쳐 두고라도 다른 분야 마니아들과 달리 조금 고상해 보일 것 같지 않습니까.

(국제신문 염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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