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올가을엔 '고전의 바다'로                                                            [2004. 10. 23]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느닷없이 호머의 서사시‘일리아드’가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소설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일리아드’를 현대적 문체로 풀어쓴 책이 15만부나 팔렸답니다. 심지어 200명의 독자들이 참여해서 24시간 동안 ‘일리아드’를 연속해서 읽는 낭독회도 열렸습니다. 이른바 ‘시의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는 겁니다. 3000년 전에 나온 서사시가 오늘날 다시 읽히는 이유에 대해 작가 바리코는 “이 시는 전쟁에 대한 기념비였고, 전쟁의 참혹한 아름다움을 그린 것”이라며 “인간은 전쟁문학을 읽음으로써 전쟁을 즐기려는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에서는 최근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새로 나왔습니다. ‘돈키호테’ 발표 400주년을 맞아 결정본을 낸 것입니다. 3000쪽짜리 책 2권으로 나온 ‘돈키호테’는 전 세계의 세르반테스 연구자 100여명이 참여해서 주석을 붙이고, 기존 판본의 오류를 수정했다고 합니다. 서구에서 근대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르반테스를 제대로 다시 읽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프랑스에서는 공상 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꼽히는 쥘 베른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합니다. 내년에 작가의 사망 100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작인 ‘해저 2만리 모험’ 등의 소설들이 원전에 충실하게 재편집돼 나왔습니다. 또한 프랑스 추리 소설의 대표작인 아르센 뤼팽도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내년이 바로 뤼팽이라는 인물의 탄생 200주년이기 때문입니다. 뤼팽 시리즈 전체가 새로운 전집으로 출간되는가 하면, 영화도 새로 나왔습니다.

이렇듯 오늘날 지구촌 출판계는 고전을 되살리고 다시 읽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소설가 칼비노는 “고전이란 내가 최근에 다시 읽는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 처음으로 그 책을 집으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다. 올가을에 Books 독자 여러분도 그런 거짓말을 하면서 고전의 바다에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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