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현기자의 출판 25시 [04/10/22]
 
국내 인문서 시장 구조적 불황서 벗어나는 길은 대학 구성원들의 손에 달려 있어

인문사회과학서적 출판인들의 모임인 ‘인사회’에서는 지난 18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2004 책과 함께하는 젊은 대한민국!’을 모토로 인문사회과학서적 독후감 대회를 열고 있다. 창립 24주년을 맞이한 인사회가 불황에 빠진 인문사회과학서적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대회로 고등학생 이상을 참가 대상으로 하고 있다.

주최 측은 인문서 매출 신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대학생들에게 특히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후원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대학생기자연합, 전국대학생기자연석회의 등 대학 주변 단체에서 주로 받고 있다. 인문서 불황의 파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원군으로 대학사회를 꼽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사회는 단순히 책의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로서의 위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일주일이면 수백권씩 쏟아지는 신간의 홍수 속에서도 눈에 띄는 국내 저자의 인문서가 없고, 서점에서 독자의 손길을 타는 인문서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 대학과 대학 구성원들의 책임도 크다. 특히 지식의 생산자와 거래소 역할을 해야 하는 대학 교수들과 대학출판부가 그 역할을 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과거 대학사회가 민주화에 기여한 것처럼, 오늘날 번역서의 독점적 시장지배 상황을 타개하고 국내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부흥을 위해서 오늘의 대학과 대학인들이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출판하지 않으면 죽는다(publish or perish)’라는 미국 대학사회의 명언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한국 대학사회는 그동안 너무 안이했다. 지적 탐구 활동을 최대한 보장받고 있는 교수들이나 비교적 상업적 출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학출판부는 국민의 기대만큼 지식의 유통에 기여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변변한 출판물을 내놓기는 고사하고 학기 초 종수별로 고작 수백부 찍어낸 책으로 1년 농사를 다 짓곤 하는 우리 대학사회의 현실은 안타깝다 못해 처연하다. 지난 10월 중순 독일에서 열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미국의 하버드 등 대학출판부가 각종 책들을 내놓고 외국인들의 발길을 잡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 처연감은 더해진다.

최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기획회의’ 7호에 실린 특집 ‘이 저자가 팔린 이유’는 출판인들과 대학교수들, 대학출판부가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기획물이다. 기획물은 문학과 인문 논픽션 과학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저자들을 소개하고, 이들의 책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이유를 분석했다. 이 연구소가 추천한 ‘팔리는 저자’ 11명 중에 국내 대학 교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정민 한양대 교수 정도다.

답은 여기에 있다. 인문역사류의 책을 주로 내는 일빛출판사의 이성우 대표는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교수들이라면, 그들이 특히 인문학과 자연과학 교수들이라면 당당히 대중 앞에 나서야 한다”며 “출판사도 힘이 들더라도 교수들을 저자의 대오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사회와 단행본 출판사들이 저자 발굴과 서적 간행에 힘을 합칠 때 출판의 구조적 불황 타개에 힘이 보태질 것이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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