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된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2004. 10. 19]

지난 2001년 1월, 영국의 진보적 신문인 <가디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의 시선을 문득 멈추게 한 그 기사의 제목은 “인간이 된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Being Human is not a Crime)“.
28살인 빈센트 베델이 ‘풍기문란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열두 명의 배심원들 중에서 열 명의 지지를 얻어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런던에서 나체로 “너 자신이 될 자유”(Freedom to Be Yourself)라는 캠페인을 벌이다가 여섯 번 구속되었는데, 처음으로 정식재판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정식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던 그 순간 그는 “인간이 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기뻐하였다고 한다.

영국은 1986년 제정된 ‘공공질서법’에 의하여 공공장소에서 나체로 있는 것을 금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1997년부터 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하며, 공공장소에서 나체를 금하는 법의 폐지를 우선적 목표로 삼고 있다. 그가 이러한 캠페인을 시작한 동기는 자신의 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몸의 불완전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두려움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임을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깨닫고 이 캠페인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의 소망처럼 원하는 장소에서 옷을 입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이 문명사회에 자리잡기는 좀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는 ‘인간됨의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하여 나름대로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새삼 이 오래 전 기사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대학입시제도의 개혁과 고교등급제금지’를 촉구하며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이 처음에는 청와대 앞에서, 그리고 이제는 자리를 옮겨서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외롭게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이다. 입시제도의 문제들은 하도 많이 지적된 것이어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참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이제 무감각해지고 또한 무관심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한국사회에 이처럼 심각한 고질적인 병폐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 당시 초등학생이고 중학생이던 두 아이들에게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학교에 가면 나는 인간이 아니야’였다. 부모를 따라서 영문도 모르고 독일과 미국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귀국한 아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고국에서 학교에만 가면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느끼고 있다니!

“인간이 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인권’에 대한 한 사회의 인식의 척도를 드러낸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책상 앞에 붙어앉아 있어야 하는 기계적 삶을 살면서, 중층적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서 일상적 삶을 살아야 하는 한국의 입시제도를 통해서 철저히 박탈되는 아이들의 ‘인간이 될 권리’는 누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영국의 빈세트 베델이라는 사람은 국가가 만든 법이 자신이 ‘생명을 지닌 살아있는 인간’임을 당당히 표현하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나체로 그 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였다. 나는 인간됨의 의미를 분명히 전달하기 위하여 취한 저항에 대하여, 그것이 사회적 관습에 어긋나고 국가가 정한 법에 어긋나고, 또한 사회에 ‘해악을 가져오는 행위’라고 고발 받았어도 당당히 무죄를 선고한 그 제도적 벽들의 ‘틈새’-그 틈새들을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확대하는가에 관심을 가진다. 그 틈새를 조금씩이라도 확대하고 마침내는 그 틈새들이 새로운 제도로 정착될 수 있을 때, 우리 한국의 아이들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외칠 수 있지 않을까.

강남순/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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