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경쟁이 좋은 이유 [04/10/19]
 
[책장을 펼치며] 선의의 경쟁이 좋은 이유

가까운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가 근무하는 건물 지하상가에 '가'라는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근데 다른 식당이 입점해 있지 않다보니 가끔씩 군내 나는 쉰 김치가 식탁에 오르는 등 서비스가 형편 없었다는군요. 어느날 지하에 '나'라는 식당이 들어섰습니다. 우습게도 그때부터 '가'식당 아주머니들이 분위기를 청결하고 깔끔하게 하기 위해 그동안 입지 않던 흰 가운을 착용하는데다 서너가지에 불과하던 반찬이 대여섯가지로 늘었답니다. 물론 쉰 김치는 자취를 감추었고요.

끼니때마다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도 멀리 벗어나기 귀찮아 '가'식당에서 불쾌한 밥을 먹던 건물 입주자들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한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무슨 이유인지 '나' 식당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랬더니 '가' 식당 아주머니들이 불편하다며 흰가운을 벗어버렸고 반찬 가짓수도 다시 줄어들었습니다. 더 황당한 건 그 다음날부터 음식값이 500원씩 오르더라는 겁니다.

같은 업종은 한자리에 모여야 장사가 잘 된다는 건 상과대학에 입학하면 배우는 상식이라고 합니다.

아마 적당한 자극과 경쟁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면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최근 부산 남포동 극장가 부근에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서점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부산대 인근에 이어 자사의 부산지역 두번째 서점입니다.

몇년전 서울의 모 대형서점이 부산에 들어설 때 시끄러웠던 일을 떠올린 저로서는 또 한번 소동이 일어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이번에는 그 대형서점이 문을 여는지 안 여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지역 토박이 서점관계자들에게 슬쩍 말을 걸어 봤습니다. 두렵지 않느냐고요. 그 관계자들의 말이 걸작입니다. "무서울 게 뭐가 있어."

그 말 속에는 어차피 이제는 법적으로 대형 서점의 진출을 막을 방법이 없고 또 "지역서점을 살려달라"는 식의 읍소도 시민들에게 통하지 않는 만큼 실력으로 버텨낼 수밖에 없다는 비장함과 더불어 자신감이 서려있었습니다.

이길 비법이라도 있느냐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전에는 준비없이 우리가 최고라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준비도 많이 했고 어느 정도 경쟁력도 갖췄기 때문에 어느 누가 와도 붙어볼 만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또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변신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고 대형서점이 진출한 도시 중 부산만큼 토박이 서점들이 선전하는 곳이 어디 있느냐는 반문도 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고객의 처지에서 보면 질 좋은 대형서점이 느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지역을 챙긴다는 이유로 지역서점의 손을 들어줄 필요도 없고 타지에서 진출했다고 해서 거부감을 가진다는 것은 이제 너무 유치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부산 토박이 서점들의 이런 자신감에는 마음 든든했습니다. 이제는 토박이 서점들도 외풍에 쓰러지지 않을 만큼 튼튼해졌다는 말로 이해해도 괜찮을 듯합니다.

선의의 경쟁, 참 좋은 말입니다. 신규 진출 서점과 토박이 서점 관계자 여러분, 모두 상생하시길.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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