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노벨문학상  [04/10/18]
 
[문화마당] 당신들의 노벨문학상

동양문학 아직도 변방 취급
'번역 미비' 핑계 온당치 않아

노벨문학상은 엄격한 비밀과정을 통해 수상자가 정해진다. 후보 200여명이 추천되어 5명으로 압축된 후 비밀작업이 진행된다. 누가 최종 후보였는지도 50년간 공개되지 않는다. 올해는 오스트리아의 엘프리데 옐리네크에게 돌아갔다. 강렬한 문제작을 발표해온 독특한 개성의 여성시인이자 작가다.
번역된 그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는 자전적 요소가 짙다. 피아노 선생의 성적(性的) 히스테리 뒤에 감춰진 폭력과 굴종의 사회병리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노처녀의 히스테리 앞에서 기성권위와 성차별이 적나라하게 벗겨지는 것이다. 유럽 페미니스트들은 이 작품을 여성운동의 교과서처럼 읽었다. 예리하고 용기 있는 작가가 수상하는 사실이 기쁘다.

한국의 고은 시인도 올해 후보였다. 그가 수상하지 못한 점은 서운하다. 동양은 노벨 문학상에서 아직도 변방이다. 제3,4의 권역이다. 1901년 제정된 이래 달랑 4명이 수상했다.

1913년 인도의 타고르가 수상한 후, 반세기가 더 지나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에게 명예가 돌아갔다. 2000년에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중국 극작가 가오싱젠이 상을 받았지만, 이는 프랑스와 중국에게 나눠준 셈이다. 스웨덴 한림원의 국력과 경제력 등에 대한 정치적 저울질이 지나치다.

김지하 최인훈 등도 추천된 적이 있다. 모두 받을 만한 작품세계와 문학적 업적을 지닌 후보였다. 결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지금 고은과 함께 소설가 황석영도 수상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50년에 걸쳐 세계가 주목할 만한 문학작업으로 어두운 시대를 헤쳐왔다. 개인 삶에서도 투옥과 망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몸을 던지는 치열함으로 질곡의 현대사에 새 지평을 열었다.

작품을 번역해서 세계에 알리는 적극성은 중요하다. 한국이 내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선정되어 문학ㆍ출판계의 기대가 크다.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주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 지난해 진형준 한국문학번역원장은 “2005년을 전후해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작가가 탄생할 것으로 거의 확신한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자기 문학을 알리는 것이 각국의 책임이라도, 스웨덴 한림원에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번역 미비를 내세워 동양을 계속 들러리로 세우는 것은 온당한 일인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노벨의 이상(理想)을 전파하고 있다면, 번역본을 구해 읽거나 숨은 작가를 찾아내는 일도 원칙적으로 그들의 소임일 것이다.

세계적 권위는 뽐내면서 소임에는 태만한 것도 서구중심의 오만을 드러내는 일이며, 노벨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문학과 영화를 직접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지 모르나, 칸ㆍ베를린ㆍ베니스 국제영화제 등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 영화제들은 직접 좋은 작품을 발굴ㆍ시상해 왔다.

노벨문학상에서 흥미로운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팝가수 겸 작사작곡가 밥 딜런이 몇 해째 계속 후보로 추천되고 있다. 그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 등으로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과 용기를 준 60년대 반전가수다.

지금까지 노벨문학상이 시와 소설, 희곡 위주로 시상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논란이 일고 있다. “노랫말이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부정과, “딜런은 옛 음유시인처럼 시와 음악의 관계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는 옹호가 부딪히고 있다.

밥 딜런이 수상한다면 파격이 될 것이다. 대신 세계적으로는 노벨문학상에 대한 회의(懷疑)가 한층 깊어지게 될 것이다. 가창력은 신통해 보이지 않지만, 그의 가사는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수상한다면 그가 미국가수이기 때문으로 비칠 것이며, 또 반체제 가수로 쌓아온 전생애와 인간적 신뢰에 대한 배신행위가 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배울 점은 있을 듯하다.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한 모임’ 같은 모임이 정작 필요한 곳은 한국이라는 점이다.


(한국일보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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