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 “나만 살면 그만” 중소출판사는 ‘고통 2배’  [04/10/15]

“지금처럼 계속되면 일부러 고의 부도내는 도매상이 나올 지경입니다. 도대체 출판시장은 자본주의 시장과 기업 운영의 기본적인 ‘룰’조차 없습니까.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얼마전 최종부도난 아동서 전문 도매상 ‘어린이책’의 피해자인 한 중소출판사 ㄱ아무개 사장은 울화통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부도 도매상의 채권 지불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부터 해야하는데 정작 채권단에서는 실사작업을 할 생각은 않고 “정리해봤자 ‘빈깡통’일 것이 뻔하니 공급했던 책이나 되찾아오자”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도업체가 받을 돈을 얼마고 줄 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실사부터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손해를 봐도 행여 손해가 나더라도 앞으로 생길 부도사태에 대비해 자료도 남기고 선례를 남겨야 합니다.” 연쇄부도의 위기속에 빠진 출판 유통에 ‘위기관리 대책’이 없다. 상식적인 부도처리 원칙과 합의가 없이 주먹구구식 또는 관습적 대응으로 오히려 출판 유통의 체질과 출판사들의 재정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실정이다. 특히 연이은 도매상 부도 처리과정에서 일부 ‘힘있는’ 출판사들과 ‘내 책만 건지면 그만’이라는 식의 일부 출판사들이 채권단 차원의 공동대응 대신 독자행동을 취하는 바람에 제대로 채권을 회수못하고, 이과정에서 중소출판사들만 더욱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따라서 장기 불황과 부도 여파로 도매상들이 계속 부도날 가능성이 큰만큼 이번 기회에 부도업체 처리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범출판계 차원의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책값 미리받은 일부 출판사

‘내책 찾으면 그만’ 횡포에 중소·인문사는 자금회수 더 막막
“도매상 고의부도 낼 정도”울화통

출판계 공동대응 절실 현재 출판유통 관행상 도매상들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일반 서점에 넘긴 뒤 한참 있다가 대금을 받아 출판사에 지급하지만 일부 힘있는 대형출판사나 베스트셀러 출판사들에게는 서점으로부터 돈을 받기도 전에 미리 대금을 지급해주고 있다. 그런데 부도가 날 경우 도매상이 이들 선지급한 출판사들로부터 돌려 받을 채권은 포기하고 공급받았던 책만 다시 가져오는 식이 되면 대형 출판사들은 미리 받은 돈은 돈대로 챙기고 다시 돌려받는 셈이니 오히려 이익을 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부도가 나면 ‘적당히 넘어가자’는 식으로 부도처리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달 한 지방 도매상 부도 사태 때에도 부도 업체 대표가 자신이 받을 채권을 확실히 받아 거래 출판사들에게 지급가능한만큼 지급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일부 출판사들이 독자적으로 책을 회수해버려 결국 다른 출판사들도 책을 회수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한 소형출판사 대표는 “이런 식의 처리가 관행이 될 경우 결국 도매상들이 합리적인 경영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최악의 경우 고의부도 사례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베스트셀러 출판사들은 먼저 돈받으니 손해볼 일이 없고 결국 인문출판사 등만이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가 심화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결국 이런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판계 공동 차원의 협의와 대책 마련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출판계의 중론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출판 주요 단체들 특히 지난 98년 도매상 연쇄도산 사태로 만들어진 한국출판인회의가 앞장 서 해결책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한 소장은 “낡은 사고 틀에 안주하며 주먹구구식 경영으로 일관해온 유통업계에만 책임을 돌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많은 책임은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수수방관만 해온 우리 출판계에도 있기 때문에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출판계가 나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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