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프랑크푸르트도서전 결산]아랍권 동네잔치 ‘열기시들’…2005년 한국이 주빈국

지난 10일 폐막된 ‘2004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내년 주빈국 행사를 앞두고 있는 한국으로선 전야제의 성격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행사였다.

예년에 비해 한국관의 규모를 늘리고 길이 22m, 폭 2m 규모의 ‘직지심경’ 조각물을 설치하고, 한국의 대표 시인 10인의 시(詩)를 영어로 번역해 전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내년의 주빈국관과 한국관에 대한 준비에 대해서는 “큰 일 났다”라는 조직위 관계자의 발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도서전 ‘하락’ 추세 뚜렷=지난해보다 7개국이 늘어난 110개국 7000개 출판사가 참여해 35만종에 이르는 책을 전시, 외형상으로는 성공적인 행사를 치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작권자가 대거 몰리는 영미관 8홀조차 부스만 임대해 놓고 텅빈 곳이 군데 군데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예년 같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저작권 거래가 도서전에 오기 전 상당수 이루어지고 있고, 도서전은 그동안 이메일로만 주고 받는 바람에 서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던 관계자들끼리 얼굴이나 보며 차를 마시는 사교의 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5년도 주빈국인 한국 이후에는 아직도 뚜렷한 주빈국을 선정조차 못해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하향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동네 잔치’ 수준의 아랍 주빈국 행사=주빈국 주제어인 ‘미래를 향한 시선’을 모토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랍 특유의 문화를 보여주지 못한 채 주빈국 아랍 연합의 ‘동네 잔치’로 방문객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특히 500여평에 이르는 주빈국관은 아랍 각국의 서적들을 단순히 진열하는 데 그쳐 마치 도서관의 서가를 방불케 했다. 그나마 전시된 서적들조차 대부분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아랍어 서적들을 그대로 전시, 아랍어를 이해하는 아랍인만을 위한 전시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또 주빈국관과 별도로 마련된 국가관인 ‘아랍관’(6홀)에는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곤 제대로 부스조차 채우지 못해 텅 비어 있거나 피로에 지친 전시 관계자들이 엎드려 자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서방과 아랍권의 갈등을 치유하겠다며 잔뜩 세계인의 기대치를 높인 주빈국 아랍연합의 분위기는 준비 소홀로 기대에 훨씬 못미쳤다는 게 현지 언론의 평이었다.

▲한국도 내년 주빈국 준비에 비상=프랑프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위원장 대행 박맹호 민음사 사장)는 지난 7일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가진 기자 회견에서 내년의 준비상황을 거칠게나마 일부 공개했다.

황지우 총감독은 “요란한 쇼맨쉽이나 눈요기 꺼리들을 보여주기 보다는 유럽인과 독일인의 심성과 취미 속에 한국문화를 스며들게 하는 것, 안으로 입김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모던 코리아’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밝힌 내용들은 너무나 추상적인 것들인데다가 그것도 공연과 전시에 관한 것들이어서 과연 내년의 주빈국관과 국가관을 채울 수 있을까 하고 출판관계자들은 우려를

표시했다. S출판사 J사장은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은 한마디로 ‘책잔치’다.

그런데 조직위의 구상은 책을 중심으로 공연과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과 전시를 중심에 두고 책전시를 기획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실제 조직위에 관계하고 있는 실무자들 조차도 내년의 주빈국관과 국가관이 몇 평인지 몰라서 질문할 때마다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우리가 유럽인과 독일인에 보여줘야 할 주빈국관은 750평, 한국관은 300평 등 총 1050평에 이른다.

하지만 황지우 총감독이 “이곳에 와서 도서전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배워간다”고 할만큼 도서전에 대한 준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책중심’ 발상전환 시급=M출판사 J씨는 조직위가 그동안 허송세월한 가장 큰 이유로 조직위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조직위원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인물이 맡아서 재계를 끌어들이고 출판계의 협조를 구해야 하며, 그 아래 집행위원장을 2명 두어 도서전과 공연·전시를 맡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강숙 전 조직위원장의 사퇴로 박맹호 부위원장이 대행을 맡고 있는데다가 총감독이 공연·전시와 도서전 기획을 도맡다 보니 효율적인 준비작업에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딱 1년. 짧다고 하면 짧지만 지금부터라도 지혜를 모으기만 하면 그래도 늦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외국서적(전체 출판물의 80% 수준)을 번역하는데만 열을 올리는 국내 출판계의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 또한 아랍의 ‘동네 잔치’수준을 면하지 못하리라는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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