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의 책돋보기-피아노치는 여인 [04/10/13]
 
[책벌레의 책돋보기-피아노치는 여인]증오·음란성으로 통속성에 도전

매년 10월 두 번째 주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참가자들은 그 다음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에 온갖 촉각을 곤두 세운다. 혹시 도서전에 참가중인 작가중에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을뿐더러 수상작을 출간한 출판사는 단번에 축제분위기에 휩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들에 대한 다양한 루머와 억측이 나도는 가운데 발표시간이 다가올 수록 어느 누구도 수상자를 점치기 주저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는 항시 깜짝쇼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계속적으로 이제 여류 문인이 받을 차례라는 루머가 있었지만 오스트리아의 여류작가 엘프리데 옐리넥(59)의 수상은 무척 예외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필자에게 옐리넥의 수상 소식을 처음 전해준 독일의 비평가 후버투스 빙켈스 박사는 옐리넥의 문학을 아마도 번역불가능한 페미니스트적 아방가르드문학이라고 칭하면서 그녀를 수상자로 결정한 것은 무척이나 용감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필자의 견해로는 옐리넥은 사상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방가르드 경향의 작가이다. 또한 그녀의 수상은 증오, 음란성, 그로테스크, 단조로움, 죽음과 같은 부정성의 원칙으로 점철된 문학에도 노벨상이 문호를 개방한 것 일까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옐리넥의 문학이 평가받는 지점은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적이며 극도의 풍자적인 분석과 상투적인 통속성에 대한 파괴에 있다. 가부장적인 사회질서와 자본주의적 소비지향적 사회가 지닌 모순성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 그녀의 문학적 실천은 90년대 이후에는 무엇보다 오스트리아의 극우 정치인 하이더와 오스트리아 사회의 보수화에 대한 저항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런점에서 보자면 옐리넥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결정은 문학의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스웨덴 한림원의 전통적인 평가 기준을 고수한 셈이다.

체코태생의 유대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옐리넥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혹독한 발레와 피아노 교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녀의 대표작 ‘피아노 치는 여인’에서는 이러한 자전적 요소가 많이 엿보인다. 소설의 주인공 에리카 코훗은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 피아니스트로 어려서부터 키워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못하는 30대 후반의 비엔나 음악아카데미의 피아노 전공교수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섹슈얼한 정체성 마저도 상실당한 관음증환자다. 자신의 학생인 발터 클레머러가 그녀의 사랑을 갈구함에도 에리카는 단지 매조키즘적인 쾌락만을 추구할 따름이다. 비정상적인 사랑의 행위에 대한 거부감에 못이겨 그녀를 떠나간 어린 연인을 일견 복수심에서, 다른 한편 연민의 감정으로 찾아나선 에리카는 어린 연인의 쾌활한 일상성을 바라보며 도리어 자신의 어깨를 칼로 찌르고는 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 소설은 2001년 미하엘 하네케에 의해 영화화되어 많은 반향을 얻은바 있다.


(김영룡 문학평론가)=파이낸셜뉴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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