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이젠 더 과감하게 쓸 것”  [04/10/11]
 
올 주요 문학상 휩쓸어

김영하씨는 이제까지 한국문학이라는 경계를 깨려고 끊임없이노력해왔다며 앞으로 세계적인 명작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영하(36·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서사창작과)교수는 상복이 터졌다. 지난 8월에 창작집 ‘오빠가 돌아왔다’로 이산문학상, 9월에 단편 ‘보물선’으로 황순원문학상, 그리고 지난주엔 장편 ‘검은꽃’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이름 있는 문학상을 혼자 독식한 것이다. 현대 한국 문학 100년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수십년간 적절한 안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식으로 움직이던 문학계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이다.

그를 두고 ‘문학계의 사라포바’라고 우스갯소리할 정도다. 김교수의 문학상 독식을 두고 다양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자기 식구 챙기기나 고른 격려와 적절한 안배라는 내부 게임을 하기엔 지금 문학의 자리가 너무 위태롭다는 위기감을 반영했다는 평가도 있다. 상받을 만한 작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현단계 한국문학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편에서는 김교수의 탁월한 작품 생산력이 만개하고 있다는 찬사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문단 안팎에서 가장 인정받는 작가가 된 김교수를 지난 7일 연극원 교수실에서 만났다. 치밀하고 속도감있는 글만큼 말도 경쾌한 그는 상도 3개나 한꺼번에 받았으니 이제 더 이상 눈치볼 일도, 신경쓸 일도 없이 거침없이 훨씬 더 과감한 소설을 써나가겠다고 말했다.

―올해 등단 10년에 주요 문학상 3개를 받았다. 한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단계로 올라간다는 느낌인데.

“단편, 장편, 작품집이 모두 상을 받았다. 평소 상복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기쁘다. 인정 욕구가 해소됐다. 지금까지 시장에 신경쓰지 않는 문학을 해왔는데, 지금부터는 상에도 신경쓰지 않은 문학을 하게 됐다. 이제 거칠 것이 없다. 좀 더 과감한 작품을 쓰겠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며 추구해온 김영하 소설의 핵심은 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거칠게 말하면 한국문학의 영토, 경계라고 믿는 것을 끊임없이 넘나들려는 충동, 한국 문학의 관습적 틀을 깨려는 충동이다.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을 동등하게 읽었고, 한국문학이라는 주변부 문학이 아니라 그저 문학을 한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써왔다. 흡혈귀, 살인사건, 자살안내인 등 기존의 우리 문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것들을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아랑의 전설’의 경우 한국의 전설을 다루면서 포스트모던적 방법을 썼고, ‘검은 꽃’은 한국 이민사를 다뤘지만 세계사적 문제로 넓혀갔다. 경계를 치고 받는, 경계는 깨는 10년이었다.

―평소 세계적인 조망을 확보한 작가가 되기 위해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고 말해왔다.

“한국어는 소수언어지만 한국문학에도 곧 기회가 올 것이라고 느낀다. 전체적으로 전세계가 좁아지고 있다. 얼마전까지 우리가 이란 영화, 아프가니스탄 영화를 일반 상영관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모든 장르의 문화에서 지역색이 약해지고 경계는 급속히 얇아지고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최근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을 3쪽에 걸쳐 소개했다. 전세계에서 타자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소설가로서의 전략은.

“질높은 장편에 주력하겠다. 그야말로 에누리없이 잘 써야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적인 것은 한국적인 것일 뿐이다. 세계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오리엔탈리즘의 프리미엄에 기대지 않고 밀도 있고, 신선한 기법에 깊이있는 장편을 써나겠다. 이제 36세이다. 외국의 뛰어난 작가중에서 내 나이에 데뷔하지 않았던 작가도 많다. 새로 시작하는 초심, 숙연한 마음으로 도전하겠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어떻게 찾아내나.

“다른 작가처럼 그저 머리에 떠오르는 소재를 쓴다. 소재가 떠오르면 이것 써도 되나, 욕먹지 않나라는 자체 검열 없이 용감하게 쓴다. ‘검은 꽃’쓸 때 주변에서 무슨 애니깽이냐, ‘아랑의 전설’은 무슨 전설의 고향이냐고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오기가 더 생긴다. 토니 모리슨은 자기 서가를 살펴보고 비어있는 책을 쓰라고 했다.”

―유희로서의 글쓰기를 이야기해 왔다. 글쓰기가 즐겁나.

“그렇지 않다. 그러나 즐겁게 쓰려고 한다. 기법과 방식을 생각하고 신나게 자료 조사하고 취재한다. 탐험가적 작가랄까. 나에게 보상도 많이 한다. 맥주도 마시고, 두드릴 때 소리가 좋은 키보드도 샀다. 등단할 때 선배들이 문학도 즐겁게 하고, 문학을 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주문했었다.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그 말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무리 어려워도 죽는 소리 하지 말고, 어려워도 멋져보이고 싶다. 그래서 주변에서 아버지가 재벌인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매년 1만부가 나가면 충분하다는 말을 해왔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

“100만부를 팔아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괜찮은 독자 1만명이 이해못하는 100만 독자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1만~2만부 정도면 작가로서 행복하다. 하루키는 10만부쯤 팔릴 땐 모두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100만부가 팔려 나가니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그럴 것 같다.”

―교수 생활은 어떤가. 왜 문창과가 아닌 연극원을 택했나. 작품에 소홀해지는 것 아닌가(그는 지난 9월 연극원 교수가 됐다).

“문창과 교수가 되면 신춘문예 조련사가 돼야 할 것 같았다. 연극원에서는 서사의 원칙적인 것을 가르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다시 읽고, 그리스 비극, 희극을 본다. 나도 공부를 새로 할 수 있어 좋다. 교수가 작품을 쓰기 어려운 것은 학교라는 보수적 분위기가 자유로운 상상력을 제약하고 월급 때문에 생활이 안정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연극원은 대단히 자유롭다. 또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월급도 적다. 소설을 써야 먹고 산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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