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World 窓]2004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사치

매년 10월 둘째주 목요일이면 각 언론사의 문학담당 기자들은 긴장 상태에 돌입합니다. 한국 시각으로 저녁 8시면 어김없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관련 1보가 한 줄짜리 문장으로 외신을 타고 날아들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불과 두 시간여 만에 관련 해설기사를 작성해야 하는데 다행히 수상자가 널리 알려진 인물이어서 자료 확보가 용이하면 모를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문인일 때는 당황하게 마련입니다.

엊그제 발표된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프리데 옐리네크도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인터넷 시대여서 옐리네크는 쉽게 정체를 드러내더군요. 하룻밤을 지새고 나니 속속 날아든 외신들은 그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과 근황들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가 ‘사회 공포증’을 앓고 있어서 수상식에 참석하지 못할 예정이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근년에는 번역 일에 매달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가장 큰 사치는 그저 쓰고 싶은 글만 쓰는 것”이라고 밝혔더군요. 다행히도 옐리네크는 15억원에 이르는 상금을 받게 돼 이제 그 사치를 누릴 수 있게 된 겁니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을 정도로 지명도 높은 작가도 “쓰고 싶은 글만 쓰고 싶다”는 소망을 말할 정도라면 문인의 길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물론 어떤 글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강자의 편을 드는 것은 문학이 아니다”고 말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할 만합니다. 아무도 문인들에게 희생과 용기를 주문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본인들이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지요. 문학이 시장에서 죽었다고 하소연하는 한국 문인들에게 독자와 타협하지 않는 글쓰기로 일관하다가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옐리네크의 사례는 약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독일까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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