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한국은 언제쯤…] <하> 숨겨진 뒷 이야기

노벨 문학상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수상자 선정을 둘러싼 잡음도 무성했다. 1901년 첫 문학상이 프랑스 시인 셜리 프뤼돔에게 돌아가자 스웨덴 한림원에는 항의와 분노의 편지가 줄을 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가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르셀 푸르스트(프랑스)·제임스 조이스(영국)·프란츠 카프카(체코)·베르톨트 브레히트(독일) 등도 수상자 명단에 없다. 이런 까닭에 1974년 수상자인 미국 작가 솔 벨로우는 “노벨상을 받은 무명작가의 대열에 끼기보다는 차라리 상을 받지 못한 거장들의 대열에 참여하는 문제를 심각히 고려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선정 경향=역대 수상자 100명 중 88명이 유럽과 미국인들로 서구 중심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권에서의 수상자는 타고르(인도, 1913)·가와바타 야스나리(일본, 1968)·오에 겐자부로(일본, 1994)·가오싱 젠(중국, 2000) 등이다.

매년 문학상 발표가 날 즈음에는 스웨덴 한림원 주변에는 갖은 추측과 리스트가 난무한다. 한림원의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 선진국들이 독식한다는 비판이 일자 60년대부터는 제3세계 국가에 대한 `쿼터'를 늘리기도 했다. 일반 대중의 독서 성향과 동떨어진 무명의 엘리트 작가를 선호한다는 지적도 있다. 1974년에는 공동수상자인 스웨덴의 예빈드 욘손과 해리 마르틴손이 한림원종신회원(18명)으로밝혀져물의를빚기도했다.

영어나 스웨덴어로 번역된 작품, 스웨덴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 유리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중국작가 가오싱 젠의 책도 종신회원 중 한 명이 번역했었다.

▲수상 거부자들=1964년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내 작품을 상으로 평가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수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닥터 지바고'를 쓴 파스테르나크는 정부의 협박을 못 이겨 상을 받지 않았다. 그는 1958년 수상자로 결정됐으나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어, 러시아 작가동맹으로부터 제명처분됐다.그는 흐루시초프 서기장에게 “러시아를 떠나는 것은 죽음과 같다. 부디 엄한 조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탄원서를 보내 국외추방을 면했다.

(광주일보 채희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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