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안목을 길러 보세요 [04/10/03]
[편집자레터] 세계인의 안목을 길러 보세요

“아홉살 난 내 딸만큼도 외국에서 지내보지 않은 사람이 또 미국을 전쟁으로 몰아 가는군.” 뉴스위크지 기자 출신이 아들딸과 함께 한 세계 일주 여행을 기록한 어느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대목입니다. 여기서 그 사람이란 바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져내리던 날, 우연히 싱가포르에 머물던 그 책의 저자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이렇게 바다 건너에서 보면 부시가 인식하는 세계와 지구촌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 사이에 간극이 분명히 보이는데…”라고요. 맞습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눈을 크게 넓혀줍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주지요.

이 저자의 가족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산호초가 안고 있는 환경 문제나 멸종 위기에 처한 인도네시아의 오랑우탄을 살피기 위한 사전 조사가 너무나 철저했습니다. 일반 교양서는 물론이고 연구보고서까지 뒤지더군요. 그렇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산 지식을 가르치는지라 1년 가까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전혀 걱정이 없었습니다. 여행의 묘미를 잘 알고 있었지요.

여행을 너무나 좋아하고, 또 거기서 인생의 의미를 건져내는 소설가 함정임씨의 커버스토리를 꼼꼼히 읽어보세요. 그 자체로 찌든 삶에 청량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에 ‘아테네’가 아니라 ‘세계’라고 대답했다지요. 또 보들레르는 ‘여기가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라고 외쳤답니다.

여행의 유혹을 뿌리치기 무척 어려운 계절입니다. 당연히 여행을 떠나야지요.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책도 몇 권 꾸리면 어떨까요.

최근 한 출판사 사장이 인문 분야의 고사(枯死)를 우려해 낸 ‘성명서’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초판 1000부만이라도 공공도서관에 비치될 수 있다면 사장되어 가는 수많은 값진 원고들이 빛을 볼 수 있을텐데…”라는 무언의 외침이 헛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중앙일보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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