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9. 14.

요즘 회사에 나와서 몰래몰래 책을 훔쳐보고 있다. 지각을 안하기로 마음먹고, 8시 반쯤 회사에 나와 자료실에서 그림책 두어 권을 뽑아들고 담배 한대 태우며, 회사생활이란 걸 유유자적하게 하고 싶었다. 텍스트 양이 절대적으로 적은 그림책이라면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천에서 나오는 월요일을 빼고는 대부분 이 작정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책은 읽고 싶고, 내가 지금 앉아 있는 공간은 회사고... 내 직업이 편집자이긴 하지만 작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책을 여보란 듯이 볼 수는 없다. 근무태만이니까. 더욱이 밀려 있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읽고 싶었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도 읽고 싶었고, 배빗 콜의 여러 그림책도 읽고 싶었다. 또 내게 편집자 의식이란 것을 주입해 넣은 정은숙의 새책 <편집자 분투기>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읽었다. 누가볼까 몰래몰래 눈치보며, 한장한장을 넘겼다. 재밌다. 몰래봐서 그런지 더 재밌다. 책 속에선 너무도 멋진 세상이 펼쳐진다. 유쾌, 통쾌, 발랄하고 너무도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내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이 구체화된 언어로 둥둥 떠다닌다.
아, 이젠 일할 시간. 다시 조마조마하게 훔쳐보던 책을 덮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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