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와 어린동생 내 친구는 그림책
쓰쓰이 요리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 한림출판사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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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개월 여조카 세모가 요즘들어 부쩍 16개월된 동생 네모를 꼬집고 할퀴고 물어 뜯는다.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타일러도 보고 패기도 하면서 동생을 때리면 나쁜 아이라고, 아직 말도 못하는 아가를 때리면 아가가 너무 불쌍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해 보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고민 끝에 동생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골라 읽혔다. 같이 놀다 잠시 놀이에 몰입해 있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진 동생 영이를 찾아 헤매는 순이. 순이의 애타는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영이의 모습이 내겐 꽤 순수하고 이뻐 보였다.
정작 세모는?
동생을 좀 잘 데리고 놀라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모는 글 속에 나온 기차 놀이 폭 빠져 버렸다.ㅠ.ㅠ.

'치.치.포.포. 치.치.포.포. 이모 이건 모야~?'
얄미우리만치 의도를 벗어난 아이를 보며, 잠시 정말 계몽적으로 말을 걸어 볼까 하다 그만 뒀다. 아이에겐 아이만의 시각이 있는 것.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보면, 세모도 동생을 더욱 애틋하게 사랑하겠지, 하면서.

그리고 얼마후. [우리교육]에서 현장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대화법 강좌를 들었다. 중등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지만, 강의가 끝난 뒤, 강의를 맡은 이명남 샘께 조카들 이야기를 해봤다. '조카 아이가 자꾸 동생을 물고 꼬집고 해요. 정도가 심해서 걱정이에요. 지켜 보니 세모가 놀때 동생이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자꾸 끼어들려고 하는 게 성가신 모양이에요...'

선생님께서는 그렇다면 둘을 떨어 뜨려 놓는 방법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아마도 큰 아이는 나쁜 마음에 동생을 때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자꾸만 방해를 하니까 성이나서 그런 것일 게라고, 둘을 계속 같이 있게 하면서 큰 아이에게만 일방적으로 베풀라고 하면 아이가 억울해 하고 나중에는 심각하게 동생을 미워하게 될 거란 말씀을 주셨던 것 같다.

그 말씀을 듣고 쪼로록 조카들에게 달려가 네모가 걸리적거리겠다 싶으면 어부바도 하고 껴안기도 하고 새로운 놀 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 세모가 네모 때문에 짜증낼 일을 안 만들려고 해 봤다. 결과는 아직까지는 꽤 좋다.

아이들은 어떤 나쁜 마음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나쁜 영향이 미칠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폭력을 행사하는가 보다. 질투와 미움으로 얼룩진 어른들의 세계보다는 훨씬 건강한 것 같다.

아무튼 동생을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에 읽힌 당초의 목적을 이루진 못했지만(사실은 문제 설정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세모는 네모를 사랑하고 있었고, 단지 자신의 불편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을 뿐이다.) 즐겁게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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