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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기담 ㅣ 사계절 1318 문고 95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4년 10월
평점 :
모임에서 만난 분의 손가락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문에 손을 찧었는데, 손톱이 빠졌네요. 허허.
허허, 하고 웃으시지만 내 표정은 이미 일그러졌다. 얼마나 아팠을까, 손만 쿵 찧어도 얼얼한 기운이 한참을 가는데, 저렇게 빠질 정도면. 그런데 그런 경험이 내게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단 한번도 난 손톱이 빠진 적이 없었다. 언제나 다치지 않게. 삶의 대부분의 순간에서 말이다.
그래서 청춘기담의 여섯 주인공들같은 경험은 없다. <셔틀보이>처럼 누굴 괴롭히거나 괴롭힘을 당한 일도, <나이에 관한 고찰>에서처럼 공부와 학원에 시달린 경험도, <천국의 아이들>처럼 가출을 한 일도 전무하다. 전혀 곱게 자라지 않았다 생각하지만, 글들을 읽으니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고 곱게 자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내가 청소년일 때나 선생일 때나 아이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셔틀보이>의 현기가 우리반에 있었다면, 슬슬 피하면서 저런 애는 반에서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겠지. 엄마인 지금은 다를까? 우리 애에게 해꼬지라도 할까봐, 혹은 닮아갈까봐 같은 반이 안되었으면 할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속내나 상황은 전혀 알려고 들지도 않은채 말이다. <1705호>의 소년에게 무심했듯 그렇게.
그것이 내 아이라고 달랐을까. 엄마와 딸이 뒤바뀐 하루를 이야기한 <검은 거울>이나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즐거운 유니하우스>. 가장 가까운 부모가 아이들과의 소통이 막혀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이들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알려하지 않은채 그저 아이탓, 사춘기탓만 하고 있을 미래의 내 모습이 보여 숨이 턱 막혔다.
말로는 좋은 사람이자 부모가 되겠다면서, 존경받는 선생이 꿈이라면서 내 주위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거나 감싸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그저 내 손톱 지키는데 급급해서 누가 다치던, 무슨 일이 있던 상관하지 않았던 날들이 더 많았다.
학생일 때가 좋은 거야, 지금이 좋은거야. 라며 아이들의 힘듦을 가벼이 여기고 소통을 거부했던 내 모습이 청춘기담이란 거울에 비쳐 보인다. 이래서 이금이 작가인가. 짧은 단편들이 가진 힘이 느껴진다. 아마 <청춘기담>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을 바꾸어 보게 하는 또 다른 <검은 거울>일지도 모르겠다.
청춘과 기담. 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만나니 세상 이면의 아이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