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파랑 세상의 모든 색
크베타 파코브스카 글.그림, 한미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때때로 지루함을 느낄 때도 있어요. 끝이 한결같은 이야기는 마음 속 어딘가에 작은 불만을 일으키기도 하고, 항상 모두들 행복하게 서로를 사랑한다는데 삶은 그렇게 늘상 따뜻하고 정이 넘치진 않기 때문이지요. 특히 어떤 동화들은 아이들에게 노골적으로 착해져라고 강요하는데, 그 착해짐의 방법이 어른 말을 잘 듣는 것일 때는 답답함까지도 느끼기도 해요. 


그래서 아이에게 종종 '낯선' 그림책들을 접하게 해요. 기상천외하고 때로는 맥락이 없어 보이는 듯한, 그렇지만 상상력과 개성을 자극하는 특별한 그림책들이요. 아이랑 함께 읽은 <빨강 파랑 세상의 모든 색>도 정말 특별한 그림책이었어요. 색다른 화풍이면서도 친숙한 형태의 이 책. 아이와 제가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그런 책이었지요. 보는 이에 따라 즐길거리가 달라지는 이 책을 오늘 소개하려 합니다.







글씨만 보아도 참 복잡합니다. 처음에는 뭐라하는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구요. 그만 좀 해! 라고 개구리가 소리를 친 것이 공감갑니다. 마치 아이가 울먹이면서 뭐라하는 소리 같아 웃음이 납니다. 달팽이는 회색이에요. 옅은 회색, 어두운 회색, 짙은 회색, 검은 색을 가지고 있어서 슬퍼합니다. 그래서 빨강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주황색을 가지고 싶어해요. 정말 아이 같네요. 아이들도 가지고 싶은게 있으면 이렇게 엉엉 울면서 울먹울먹 말하지요. 

색이 갖고 싶어 우는 달팽이의 이야기를 참 흥미롭게 표현한 것 같아요. 달팽이와 개구리의 대화를 글씨들로 이미지화 한 것도 색다르구요. 저자인 크베타 파코브스카는 체코의 그림책을 입체적 예술적 대상으로 승화했다는 평을 받는 작가입니다. 글씨와 문장만으로 대화와 감정과 분위기를 절묘하게 표현한데서 저자의 뛰어난 능력이 엿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른쪽 페이지 중앙에 휠이 보이시나요? 휠을 돌리면 달팽이의 무늬색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 책이 3살 아이에게도 사랑받는 건 이런 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아가는 저 휠 돌리는 것을 참 좋아해서 한 번 펴면 몇 분이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어요. ^^






개구리와 달팽이는 색깔을 찾으러 나섭니다. 사실 글이 매우 적은 책이라 전체의 스토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책도 시도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유치원 정도의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행간을 읽는 단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스토리가 분명하지 않다는 건, 몇 번이도 다시 펴보게 하는 힘을 가지니까요.

돌돌 색깔놀이판을 돌리면서 아이와 함께 색의 이름도 공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색의 이름을 가르치는 것보다 그저 빙글빙글 돌리며 즐거운 읽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모든 책들을 학습의 대상으로 보는 분들을 봐요. 집에 책이 좀 있다보니, 놀러오시는 분 중에 "이 책 읽으면 뭘 공부할 수 있어?"라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분들의 아이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더라구요. 하긴 저라도 싫을 것 같아요. 책 하나 읽을 때마다 뭘 하나씩 배워야 한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왼쪽의 휠을 돌리면 여러 색의 크레파스들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웃고 있는 표정이라 아이도 즐거운가봐요. 빗줄기에도 이렇게 색깔을 입히니 참 곱네요. 크레파스로 쓱쓱 그린 듯한 이 비들은 정말 아이가 그린 것처럼 선에 힘이 넘칩니다. 힘차고 즐거운 비라 보는 사람도 신나는 기분을 주는 것 같아요. 달팽이도 색깔을 얻어서 그런지 웃고 있고요.

색깔나라로 여행을 떠난 개구리와 달팽이는 여러 신기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분들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아이가 그린 듯한 화풍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그려도 참 힘차게 그려요. 아이들의 선에는 단호함과 힘, 그리고 즐거움이 담겨 있어요. 어른들이 아이처럼 그리려고 흉내를 내도 따라할 순 없지요. 그 느낌이 살지 않아요. 그런데 저자는 어떻게 그렸을까요? 그림 전체에 저자의 동심이 느껴집니다. 이 빨간 달도 그러하겠지요.











미소 짓는 달과 환하게 웃고 있는 달의 모습이 좋아 한동안 책장 위에 펴 놓았어요. 그림책에는 대상 연령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런 책이 정말 좋은 책이라 생각해요. 누가 읽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그림책.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고 읽는 것 자체로 행복해지는 그런 책 말이에요. 여러 색의 동글동글이들이 마치 아이들이 웃는 모습 같이 느껴지네요. 아마 이 책을 읽은 우리 아이 표정이 저러하겠지요. 너무나 사랑스럽고 기분 좋은 <빨강 파랑 세상의 모든 색>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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