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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싸우지 않는가 - 저성장 시대를 돌파하는 강소기업의 3가지 전략
야마다 히데오 지음, 서라미 옮김 / 청림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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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싸우지 않는가
경쟁을 해서 얻는 메리트와 디메리트가 있다. 기업에겐 기업 역량 향상, 시장의 성장, 조직의 활성화를 메리트를 주고, 고객에게는 다양한 니즈에 대응, 가격 저하라는 이익을 안겨준다. 기업이 과도하게 경쟁하게 되면 고객 지향에서 경쟁 지향으로, 지나친 가격하락으로 기업의 수익 감소, 피폐해지는 조직이라는 디메리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손자는 상대와 싸울 때 경쟁을 전략을 세 가지로 나눴다. 상대가 약할 경우, 상대가 나와 대등할 경우, 상대가 나보다 강할 경우로 그 전략을 세울 것을 설파했는데, 손자는 결코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와 싸우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납득할 수 있다.
우성인 생물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생태계에서 여러 종의 생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는 영역을 나누거나 공생하는 생존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역을 나우어 활동하는 분야를 달리하면 공존할 수 있다. 어떤 생물종이 생식할 수 있는 범위의 환경을 니치(niche)라고 한다. 한 개의 니치에는 한 종류의 생식종이 산다.
또 생태학에서는 서로 다른 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공간을 나누지 않고 공생하는 방법도 발견했다. 공생자가 숙주에게 영역을 할당 받을 경우 기생, 공생자만 이익을 얻고 숙주는 이익도 손해도 없는 편리공생, 공생자와 숙주 쌍방이 이익을 보는 상리공생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생은 기업 간에 서로 지속적인 관계로서 이익을 보는 상리공생을 말한다. 기업은 될 수 있으면 경쟁관계가 돌입하지 않아야 한다. 과도한 경쟁은 가격이 하락하게 되고,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의 이익이 제로나 마이너스에 가깝게 될 것이다. 때문에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기업 경영의 자세이다.
가장 좋은 경영은 블루오션 기업 정신이다. 니치 전략으로서 최대한 경쟁하지 않고 이익을 가져오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쟁이 없는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경쟁 없는 시장’이란 시장 선두 기업과 싸우지 않아도 되는 시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생계형 자영업체 또는 비즈니스 모델이 같은 업종끼리는 어떤 형태로든 경쟁하게 된다. 비즈니스 모델이 같은 기업과 싸운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동물은 경쟁자를 만나더라도 싸움을 하려고 하지만, 때로는 암컷을 둘러싸고 같은 종의 수컷이 격렬하게 싸우기도 한다. 즉, 다른 생물 간에는 싸우지 않는 쪽을 택하지만, 같은 종은 경쟁할 수밖에 없다.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기업을 마켓 리더, 마켓 챌린저, 마켓 팔로어, 마켓 니처와 기업이 가진 경영자원의 양과 질이라는 기준을 더해 경쟁 지위를 재유형화한다. 리더는 시장에서 가장 방대하고 질적으로 우수한 경영자원을 가진 기업이다. 챌린저는 리더에 준하는 경영자원을 가지고 리더와 경쟁하는 기업이다. 니처는 리더를 직접 노리는 위치는 아니지만, 독자적이고 우수한 경영자원을 보유한 기업이다. 팔로어는 경영자원의 양과 질적인 면에서 리더의 지위를 노리지 않는 기업이다.
선두 기업은 주변 수요 확대란 시장 파이를 넓히는 것이다. 선두 기업은 후발 기업보다 우수한 자원의 질과 량을 가지고 있다. 주변으로 수요가 확대되면 경쟁 기업의 특허로 인해 진입이 막히지 않는 한, 확대된 수요만큼 기존 시장의 점유율을 획득할 수 있다. 가령 아침에만 이를 닦던 사람들에게 ‘아침저녁 이를 닦자’라는 카피로 광고를 하여 치약 소비량을 늘일 수 있다.
이처럼 선두 기업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들을 이 책에선 저자 나름대로 풀어놓고 있어, 나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기업들뿐이랴 우리가 살아가면서 채득하게 되는 아이디어들이 반짝반짝하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기업이란 것이 무엇인가?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이 해소되었다. 멋진 저자님의 해박한 지식을 따라가다가 지난 날 나의 사업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살아가면서 참 많이 저자님께 고마워하게 될 것 같다. 나의 무지에 혜안의 불빛을 비춰주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