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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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유는 없었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이야기 그것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내가 쓰고 싶었고,
오래도록 내 목을 메이게 했으나 구성할 수 없었던 이야기. 혹은 구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
내게 김훈의 장편은 낯선 것이지만, 뜻밖의 '작가의 말'인 그의 자기혐오나 좌절은 너무도 절실히 이해된다.
주제 넘게도 감히 나는 그렇다고 느낀다. 

나는 홍보 담당자였고, 그는 기자였다.
그때의 기억과 상처가 나를 사실과 진실, 또는 정보와 뉴스에 대해 고민하게 했듯 그도 그러했을 게다.
나는 종종 사실을 가공해 보도자료로 만들어 그것만이 진실인 양 매체를 설득해야 했고,
기자인 그는 떄로 그렇게 가공된 보도자료로 기사를 썼을 테다.
그리고 그가 쓴 기사의 최종고를 손 보는 건 그가 아니었을 게다.
내가 쓴 보도자료도, 그가 쓴 기사도 
사실이라는 미명 하에 마음과 다른 이야기가 활자화됐을 테고
그걸 접하는 이들은 그 이면에 숨은 무수한 이야기들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최종 활자화된 이야기는 나같은 아이나 그같은 이들의 고민이나 망설임 혹은 먹먹한데 말할 수도 없는 애매한 감정 따위는 담지 않은 단호한 사실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됐을테니까. 
그러니 나는 감히 그를 이해한다 말한다. 
그리고 소설의 감동이나 공감과는 별개로 사실과 진실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묶은 그가 부럽다.  
내가 홍보를 한 것은 고작 4년, 더하기 드문드문한 시간이지만 그의 기자생활은 그보다 훨씬 더 길었다.
나의 영역은 고작 의료와 공연 혹은 문화 였지만 그의 문화부와 사회부를 두루 거쳤다 했다.
그러니 그의 좌절은 나의 것보다 깊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상처는 나의 것보다 훨씬 크고 너덜거릴 것이다. 

그가 기자 출신이 아니라면,
이 소설이 사실과 진실 이야기라는 출판사 평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그의 저자 후기를 '때때로 문인 혹은 문청에게 나타나는 염세적 허울 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염세와 허울, 이라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단어와
병이라는 구체적인 단어가 주는 부조화가 웃긴다고 생각하면서도
저 작명만큼 적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늘 저 병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나는 그의 자기혐오를 너무 절절이 이해한다.
우습지만, '고작 내깟게 어떻게...' 라고 나를 내려다보며 뇌까리다가도 그냥 한순간 확 이해되고 만다.
아마도, 나는 소설의 내용보다 작가의 말에 더 깊이 공감했는지 모른다.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하지만 그 공감의 폭과 정서는 여느 때와 다르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이런 감정이나 마음은 보도자료에 담을 수 있는 확연한 사실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이니까. 

이 초조한 와중에 놓지 않고 읽었건만... 즐거운 독서는 아니었다.
내가 종종 되새기는 '공무도하가'의 그 슬픈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의 공무도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간 너머로>라는 책처럼,
노목희가 그린 낙타 그림처럼
돌이킬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건너가는 사람들인 것 같다. 
의지와 상관없이, 계획과 상관없이
저도 모르게 어느새 그렇게 흘러와 버린 이들.
그렇다고 그들이 게으르거나 인생을 방치한 것도 아닌데
흘러와 보니 그렇게 넘어와 버린 이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은 나의 공무도하... 인지도 모른다. 슬프다.  

 

><공무도하> 김훈, 문학동네, 2009. 9  


그의 문체는 순했고, 정서의 골격을 이루는 사실의 바탕이 튼튼했고 먼 곳을 바라보고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자의 시야에 의해 인도되고 있었다. 그의 사유는 의문을 과장해서 극한으로 밀고 나가지 않았고 서둘러 의문에 답하려는 조급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의문이 발생할 수 있는 근거의 정당성 여부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글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 떼를 쓰지 않았으며 논리와 사실이 부딪칠 때 논리를 양보하는 자의 너그러움이 있었고,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 안에 이 세상을 강제로 편입시키지 않았고, 그 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세상의 무질서를 잘라서 내버리지 않았으며, 가깝고 작은 것들 속에서 멀고 큰 것을 읽어내는 자의 투시력이 있었다. 그의 글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성찰에 가까웠고 증명이 아니라 수용이었으며, 아무것도 결론지으려 하지 않으면서 긍정이나 부정,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가 보여주는 모든 폐허 속의 빛은 언제나 현재의 빛이었다. 강을 건너고 산맥을 넘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그 초로의 여행자는 관찰자인 동시에 참여자였고 내부자인 동시에 외부자였으며, 인간이 겪은 시간 전체를 살아가는 생활인이었다.    26-27

노목희는 때때로 장철수의 옷소매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 안쓰러움은 투항이나 탈출 혹은 생포되기를 예비하는 자의 조바심에 대한 연민이었다는 것을 노목희는 장철수가 검거된 후에 알았다.   36

토요일 야외수업 때 노목희는 아이들을, 이제는 무너져버린 저수지 뚝방으로 데리고 나갔다. 저무는 해가 능선을 스치면서 내려앉는 저녁 무렵에, 수면에서 명멸하는 빛과 색들의 변화를 노목희는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기우는 해에 끌리는 쪽으로 빛들은 떼지어 소멸했고 소멸의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서 신생과 소멸을 잇대어가며 그것들은 어두워졌다. 물 위로 뛰어오른 작은 물고기들이 다시 물에 잠기는 그 짧은 동안에, 물고기 비늘과 눈알에서 밝은 색으로 태어났다. 시간이 빛과 색을 가장자리 산그늘 쪽으로 끌어당겼고, 빛이 저무는 시간과 합쳐지면서 푸른 저녁이 수면 위로 퍼졌고, 색들이 그 위에 실려서 흘렀다. 산그늘에 덮여서 빛이 물러서는 가장자리 수면에서 색들은 잠들었고, 바람은 수면을 스칠 때 물의 주름 사이에서 튕기는 빛이 잠든 색들을 흔들어 깨웠다. 우두운 수면에서 빛들은 무슨 색으로 잠드는 것인지 바람에 흔들려 다시 꺠어나는 색은 잠들기 전의 색이 아니었다. 부서져서 흩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그것들을 빛 또는 색이라고 노목희는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말을 하는 동안에 그것들은 다시 부서지거나 새로 태어나서 말 너머에서 명멸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짧고, 정처없었다.    

미대 서양화과에서 노목희의 실기점수는 늘 B학점을 넘지 못했다. 붓으로 기름물감을 찍어서 캔버스에 바를 때, 붓 끝에서 손목으로 와 닿는 물감의 유성이 노목희는 낯설었다. 붓이 물감을 밀고 나갈 때, 몸과 물감 사이의 저항은 뻑뻑한 이물감으로 팔에 감겼다. 그 저항을 뚫고 나가면 한바탕 색의 세상을 펼쳐낼 수 있을 터인데, 다가오려는 것들 앞에서 노목희는 자주 망설이면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목희의 화폭은 주저의 흔적으로 남루했다. 실패한 화가인, 늙은 지도교수는 말했다.
......넌 왜 덤벼들지를 못하니? 뭘 그렇게 쭈빗거려. 힘을 줘서 밀어내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노목희의 화폭은 주저의 흔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도청소재지에서 열리는 서양화 공모전에서 노목희는 낙선했다. 이 세상의 색들은 빨강, 파랑, 노랑으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빨강에서 파랑으로 파랑에서 노랑으로 검정에서 흰색으로 흰색에서 검정으로, 끝없이 전개되는 흐름의 진행태였고 거기에는 지나간 시간의 훈적이 묻어 있지 않았다. 팔레트를 열고 나이프로 색을 으깨서 섞을 때 노목희는 그 흐름에 실려서 흔들렸다. 나이프 끝에서 색들은 피어나서 들끓었다. 저무는 해가 능선 아래로 깊이 기울어서 수면에 아무런 색도 남아 있지 않을 때 노목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저수지 뚝방을 내려왔다. 거기가 창야였다.    41-43

조사단장의 브피핑이 끝나고 질의답변 자리가 마련되었다. <파이스턴 데일리 리뷰>지의 여기자가 물었다.
- 환경변이가 폭격훈련과 무고나하다는 결론인가?
조사단의 관계분석팀장이 답변했다.
- 여러 가지 변이들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인과관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다.
한국매일신문의 문정수 기자가 물었다.
- 증명되지 않으면 부재하는 것인가?
분석팀장이 답변했다.
- 부재는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부재하는 것은 아니고, 그 반대도 또한 아니다. 존재와 증명 사이에 상관관계나 인과관계가 있다는 전제도 증명되기 어려운 것이지만, 증명되지 않는 것들의 실체를 긍정할 수 없는 것이 과학의 고충이다. 이해를 바란다.
기자석 뒷자리에서 <아시안 위클리> 기자가 발언권도 없이 말했다.
- 말이 어려워서 알아듣지 못하겠다. 그럼 조사는 왜 했나?
조사단장이 답변했다.
- 쉬운 말은 아니다. 오늘 회견은 여기까지다.    53-54

그에게서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사람의 체취와 비슷한, 몸속 깊은 곳에서 스며나오는 냄새가 풍겼다. 시간이 사람의 몸속에서 절여지면 이런 냄새가 날 것이라고 노목희는 생각했다. 그의 체격과 골상은 동양인이었지만 그는 어느 대륙이나 어느 나라 사람 같지는 않았고, 그의 나라는 몸에 깊이 절여진 그의 체취 속으로 펼쳐쳐 있는 것처럼 노목희는 느꼈다.    91

국물을 마셔, 튀김이 좀 딱딱해, 만든 지 오래된 것 같아, 라는 노목희의 말의 그 사소함과 명료함이 문정수는 문득 슬픔으로 느껴졌다. 슬픔은 난데없고 가늘고 날카로웠다. ...124-125

신문에 쓸 수 없는 것들, 써지지 않느 ㄴ것들, 말로써 전할 수 없고, 그물로 건질 수 없고, 육하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세상의 받가을 문정수는 때때로 노목희에게 말해주었다. 자정이 가까운 늦은 밤에, 혹은 자정이 지나서 날짜가 바뀐 새벽에, 그 이야기는 지체없이 전해야 할 전보처럼 다급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전하는 먼지와 불길과 냄새는 노목희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듯 싶었다.   125-126 

- 그게 더 아쌀해. 아는 놈이 한 놈도 없는 동네가 좋아. 그런 데서 살면 손바닥 악력이 금세 는다. 넌 그런 데로 가야 해.   

최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철수는 손바닥을 말아 주먹을 쥐었다. 아무것도 거기까지 따라오지 않기를 장철수는 바랐다.     167

젓가락으로 김치를 마주 잡고 찢어 먹는 하찮음이 쌓여서 생활을 이루느 ㄴ것인가. 그 하찮음의 바탕 위에서만 생활은 영위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소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의의 들판으로 생활은 전개되는 것인가. 그 사소함이 견딜 수 벗이 안쓰럽고 그 적의가 두려워서 나는 생활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이렇게 쭈빗거리고 있는 것일까......    218

문정수의 말은 듣는 사람이 없어도 무방할 듯 싶었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버린 세상에 관하여 문정수가 더듬거리며 말할 때 노목희는 가끔씩, 그랬겠구나...... 잘했어...... 내버려둬...... 괜찮아...... 괜찮을 거야..... 라고 응답해주었다. 노목희의 응답은 추인이거나 달램처럼 들렸다.
저 남자는 어째서 저런 하나 마나 한 말을 저렇게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일까? 저런 말을 하려고, 이 밤중에 나를 찾아오는 것인가? 괜찮아..... 내버려둬..... 이런 대답이 필요해서 이밤중에 저렇게 힘들게 더듬거리고 있는 것인가.
노목희는 무릎을 두 팔로 싸안고 앉아서 문정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노목희가 하푸을 하면서, 안 졸려? 라고 물어도 문정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문정수의 말은 듣는 사람이 없어도 무방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듣고서 잘했어, 내버려둬...... 라고 응답해주지 않으면 울음으로 변해버릴 말처럼 들렸다. 문정수의 어조는 무력했으나, 그 무력감 속에 폭발 직전의 위태로움이 숨어 있었다.    218-219

- 불쌍하구나, 다들. 하지만 너하고 관련 없는 사람들 아냐?
- 관련이 없기 때문에 더 답답해. 막막하고.
- 내버려둬. 그냥 내버려두는 게 가장 옳을 거야.
- 내버려두지 않을 수도 없어. 차장은 막 욕을 하더군.
- 누굴 욕해? 방천석을?
- 몰라. 그게 그 사람 버릇이야. 대상이 누군지도 모를 욕을 늘 해대지.
- 욕이 아닐 거야. 신음이겠지.    220-221

횟집마을로 넘어오는 비포장 오르막에서 장철수의 손수레는 뒤로 밀렸다. 장철수의 두 다리가 힘을 잃고 뒤로 끌렸다. 장철수의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졌다. 두 다리가 힘을 잃는 순간, 장철수는 땅의 중력에서 풀려나 주저앉거나 바람에 불려갈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 무력감은 가벼움이었다. 두 다리가 힘을 잃는 순간, 끌고 온 무게가 소멸했고, 뒤로 끌리는 몸이 소멸하는 무게 속으로 빨려들었다. 아마도 죽음의 질감이 이러할 것이라고 장철수는 생각했다.   239

 해망은 그들의 고향이며 객지였다. 공유수면이 매립되기 전, 펄에서 조개 잡고 어선들이 마을 앞 선착장까지 들어오던 시절은 몸은 고단했어도 마을은 화목하고 마음은 편했고 생활도 지금보다 넉넉했다고 그들은 사회조사원들이나 방송 기자들에게 말했다.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에는 삶이 건강했고 평화롭고 충만했다고 말할 때, 그들은 그 말의 대부분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더 큰 거짓이 작은 거짓을 눌렀다. 그들의 말 속에서 방조제 이전의 삶은 늘 평화롭고 충만했다. 그래서 매립으로 잃어버린 그 평화와 충만을 보상액수에 모두 포함시켜서, 그들은 펄에 코를 박고 살아온 해망의 갯가를 떠나려 하고 있었는데, 액수가 커질수록 소송은 지연되었고, 소송이 계속되는 동안 그들은 이제 두어 마리 남은 철새처럼 해망의 갯가에서 서성거렸다. 횟집 주인들은 그 엉거주춤을 스스로 '보상병'이라고 불렀다. 보상병이 깊어지면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지 못하고 들떠서, 낮에는 뭍으로 밤에는 펄로 헤맨다고 그르은 술자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횟집 주인들이 바다사자 주위에 모여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바다사자는 뒤채고 부딪치고 뛰어올랐다.   241

- 고마워. 내가 다 갚을게. 잘 풀리고 있잖냐.
문정수가 너 신장 얼마 줬니? 라고 말하려던 순간, 박올출이 먼저 말했다.
- 야, 장기매매 같은 건 기사 쓰지 마. 내가 다 갚을게. 넌 쓴 기사보다 안 쓴 기사가 더 좋다. 그게 더 진실돼. 안 그래?
문정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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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0월4주

영화는 손쉬운 오락이기도 하지만 

'영화 볼까?'가 아니라 '영화 봐야지'라고 생각하곤 하는 건 

일상 속에선 가려진 남루함이나 애달픔을 켜켜이 드러낼 때. 

그리고 그걸 유쾌하고, 혹은 따뜻하게 풀어줄 때. 

올해 유럽영화제에서 꼽은 영화에는 유독 그런 영화가 많더군요.

 

 <너의 한마디> 

진짜 남루합니다. 주인공 커플이 청소부라지요. 엄마는 치매에 걸렸고, 하나 있는 친구는 정말 극진하긴 하지만 미친년 같습니다. 아무래도 멀쩡하진 않아요. 

영화보면서 피곤한 것도 진짜 오랜만입니다.  

그런데도 추천하는 건 그 마지막 대사, "과거는 부정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지만 미래는 그렇지 않은 거잖아."  그리고 해맑은 키스.

그 엔딩이 주는 울림 때문입니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도 같은 맥락의 대사가 나왔지만, 사뭇 다르게 느껴졌거든요. 훨씬 사적으로, 훨씬 가깝게.

 

  <천국의 속삭임> 

별을 몹시 안 좋아하지만, 별 다섯개 드립니다. 그 이상도 드립니다.  

똑똑하고 명랑했지만 사고로 눈이 멀어버린 아이, 세상은 그를 격리하라고 합니다. 특수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거죠.  거기서 비뚤어지려던 찰나, 소년은 먼저 다가온 친구 펠리체에게 소리로 세상을 보여줍니다. 먼저 다가온 소녀 프란체스카에게 소리와 추진력으로 자신의 재능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소년의 용기와 행동이 시각장애아들에겐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강요했던 세상을 바꿉니다.  

실화라고 합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음향감독으로 손꼽히는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랍니다. 실화라서 감동적인 것보다, 소년의 재주가 놀라운 것보다, 절망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걸 재능으로 벼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됩니다. 소년은 순간순간 고통스럽고 외로웠겠지만, 그래도 늘 웃거든요. 지치지도 않고, 주저하고 슬퍼하긴 해도 물러서

진 않습니다. 그게 좋았습니다.  

 

 <시스터 스마일> 

완전 기대하고 있는데, 알라딘에선 이미지 조차 안 뜹니다. 빠른 속도로 매진되고 있는 기대작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역시 실화랍디다. 음악을 하고 싶은데 부모가 자꾸 결혼을 재촉해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노래로 유명해졌는데 수녀원에선 그녀의 외부활동을 탐탁치 않아 하자 수녀원을 나와 가수로 산 여성의 이야기. 뮤지션, 수녀, 한 여자로서의 갈등이 잘 드러났다는 코멘트가 붙어있습니다.  문청, 대필작가, 여자 혹은 딸로 살아가는 내 (남루한) 일상과 어떻게 매치될 지 궁금합니다.  

뭐 굳이 연결고리가 중요한가요. 그저 음악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겠지요. <사운드 오브 뮤직>과 <시스터 액트> 사이 어디쯤일까 마냥 궁금합니다.  

 

<더 클래스> 

 역시 기대작입니다.  실화는 아니지만, 소설 원작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가미했다고 합니다.  

휴먼드라마, 다큐멘터리, 이런 게 상당히 제 취향이기도 하고, 빈민가 고등학교의 스승과 제자 이야기라는 게 어떤지 기대를 하게 합니다. 드러난 문제아이든 아니든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아이를 교사가 알아챈다는 것, 그 아이에게 진심을 드러낸다는 것, 그래서 그 아이가 변한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니까요. 그런 교사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니까요.  

그 아이가 <천국의 속삭임>의 미르코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지 않는다 해도, 아이의 마음에서 자신의 다른 점을 알아준 교사는 평생동안 영웅일 겁니다. 제겐 그런 선생님이 있지요. 뭐, 그렇다고 제가 문제아였던 건 아니었지만...  

지루하고 남루했지만, 배를 깔깔 쥐고 웃던 순간도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예뻤던 시절인 열일곱이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볼 수 없는 영화들> 

 (좌) <이지 버츄>  

어쩐지 개봉할 것 같습니다. 콜린 퍼스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기대만발^^ 

(우) <애프터 러브> 

요것도 개봉할 것 같습니다.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 본 친구가 또 보려하길래 흥미가 생겼습니다. 이탈리아판 <러브 액추얼리>라는 코멘트가 붙었습니다.  

 

 

(이미지 없음) 

<푸른 수염> 계몽사 어린이 세계명작동화에서 몹시나 좋아라하던 동화였습니다. 어딘가 비밀스러운데가 있거든요. 제목이, 그리고 원작이 푸른 수염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할 거라 생각합니다. 개봉하면 꼭 봅니다^^ 

<환상통> 상처 때문에 글쓰기를 그만두고 여행 하다 다리도 잃은 어떤 이가 주위의 격려로 다시 글을 쓴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랍디다. 극기복례 스토리 안 좋아하지만, 어떻게 그만 둔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 환지통(환상통)을 겪은 사람의 실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너무 생생해 궁금하긴 합니다.  

<에브리원 엘스> 어느 소심한 커플이 다른 부부를 만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라지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엄청난 화학변화가 일어나는데, 한 사람이 둘이 되어 또 다른 둘을 만나면 어떻게 변할는지... 그런게 좀 궁금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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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 Closer 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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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감동은 온데간데 없고, 병실 식구들에선 가 오버랩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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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0월2주

그냥 이유없이 내 맘이 내 맘이 아니기 십상인 계절이니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 버려서, 

그게 하늘이 너무 푸른 탓인지 구름이 그림같은 탓인지 

외로워서인지 지루해서인지 게을러서인지 

아무튼 이유는 중요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모든 게 시큰둥할 땐 음악영화 보러가자~ 

노래 없는 영화 어디있을까마는 

노래가 주인 영화만큼 위로해주고, 신나게 해주는 영화도 없으니까. 

내 생애 최초의 음악영화였던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천둥번개가 치든, 천둥번개에 버금가는 놀랍고도 무서운 일이 일상에서 일어나든  

겁나는 순간마다 위로가 되는 'My faborite things'처럼  

영화는 끝나도 노래는 오래오래 마음에 남으니까.  

 

ost 들어보니 난 어쩐지 원작이 더 좋은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대가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 

이번 주엔 기필코 기필코 봐야지. 

뭐, 저 싱싱한 청춘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풀어지지 않겠어. 

게다가 예고생들 이야기, 

예대 입학 후 하루하루 신났던 십대 후반의 날들이 떠올라 

새삼 설렐지도 모르잖아. 아, <열정의 무대>도 다시 보고 싶다.

 

 <국가대표> 보면서 나도 모르게 두 주먹 꼭 쥐고 울었으면서도 

불이 켜진 후 씁쓸했던 건 

언제부턴가 극기복례, 고진감래, 그런 자수성가 이야기가 시큰둥하다는 것. 

그냥 영화는 영화, 당의정이었으면 싶은거지. 올핸 내게 피곤한 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바나블루스> 

쿠바니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할아버지들과 동향이라니까 

게다가 록이라니까, 펑크라니까, 더 신나는 음악 가득하다니까.  

 

 지난 여름, <해피 플라이트> 보러 갔다가 깜찍한 예고편 보고는 꼭 봐야지 했으나 

늘 그렇듯이 놓치고 말았으나 다행히도 아직 한단다. 

예고에 의하면 총천연색 화면. 

그 컬러풀한 색감만으로도 일단 기분은 업!업!업! 되실꺼고 

춤만 있다면 행복한 부부인데, 아마 여자가 다리가 절단되나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할까? 행복하겠지 

이유없이 기대된다.   

 

(볼까 말까... 시간 되면 보겠지^^)   

 

 

 

 

 

 

 

 

<드림업>은 사실 애매한 것이 

어쩐지 <페임>과 <하이스쿨 뮤지컬>만 못 할 것 같아서 굳이 극장까지 가야하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바네사 허진스 나오는데.. 

<비투스>와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시간 되면 기필코 다시 본다. 또 본다.   

사실 어둠의 경로로 본 탓에 보긴 잘 봤지만... 큰 화면으로, 돌비 서라운드 사운드로 다시 보고 싶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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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위크 - One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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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쓰고 찾아가고 추구하고 버티어내는"
혹은
낯선 행복.
 

산에서 만난 그 여인,
어쩌면 인디언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던 그녀는
기타로 캐내디언 포크송을 부르며 그를 노래에 초대한다.
그렇게 이뤄진 야생의 하룻밤.
그는 행복했던 것 같다.
오토바이 사고 후 잠시 기절했다 깨어나
덩실덩실 막춤을 출 때도 그는 행복했던 것 같다.
아마 죽은 개의 주인을 찾아준 후 그녀와 함께 말을 탈 때,
그때가 처음 아니었을까?
낯선 행복을 느낀 것.
어쩌면 오토바이를 산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르지.
한 번도 팔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아 면허증 갱신도 할 수 없어 내어놓았다는 할아버지를 만난 순간부터.

<제천영화제> 상영+매진작이라니까 <원스>,
오토바이 타고 홀로 떠나는 로드무비라니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뭐 그 정도 영화를 떠올리며 기대했던 나에게 영화는 생각보다 지루했다.
그러니까 뻔히 아는 마케팅에 또 한번 낚였군을 되뇌며,
혹은 단식 후의 피로였는지도.
그저 영화를 볼 때는
- 우울한 시한부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 음악 참 좋군. 주인공이 나랑 동갑이라 그런지 딱 좋아 딱 좋아
그랬더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난다.
거창하게도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사막 교부들의 '나태'의 정의(하늘은 네 안에서부터, 안셀름 그륀, 분도출판사,1999)
"지금 이 순간에 머물지 못하는 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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