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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앤룩스 NOX & LUX 2012.3.4 - Vol.1, 창간호
녹스앤룩스 편집부 엮음 / 녹스앤룩스(잡지)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최초의 장르문학잡지, <판타스틱>의 추억
워낙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고등학교 때도 거의 학교와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길에서 벗어날 때가 한 달에 한 번 씩은 꼭 있었는데, 바로 장르잡지 <판타스틱>이 출간될 때였다. 한 달에 한 번 판타스틱이 나올 때면 학교 근처 서점 순회를 했다. '나왔어요? 아직 안 나왔어요? 내일 올게요.' 내 손에 입수될 때까지 며칠을 반복해서 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판타스틱이 손에 들어올 때면 싱글벙글. 친구가 그 때의 내 모습을 보고 놀랐을 정도다. 그렇게 하루 아니면 이틀만에 판타스틱을 다 읽어버리면, 그 잡지는 내 손을 떠나 친구들 손을 떠돌기 시작했다. 취향따라 발췌독을 하는 친구들 손을 타다 보면 어느새인가 보면 옆반까지 가있더랬다. 판타지를 좋아하지만 다른 지식은 하나도 없던 나는 판타스틱이라는 잡지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끼고 살았는데 이게 웬 걸, 조금 있으니 종이 잡지는 사라지고 카페만 남아버렸다. 장르를 배워가던 창구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녹스 앤 룩스>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예전에 사라진, 판타스틱과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기대가 솟았다. 격월이라고 해도 좋고, 좀 얇고 가격이 낮아도(7천원) 괜찮으니 나온다는 것 자체가 무척 좋았다. 나오기 전부터 정기구독 신청하고,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기다리다가 받아본 녹스 앤 룩스. 창간호라서 미흡한 점도 보였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일단 잡지의 내용 이전에 이렇게 장르 잡지가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부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녹스 앤 룩스>의 기사 구분
녹스 앤 룩스는 꽤 특이한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다. 일단 녹스 앤 룩스는 '녹스', '앤', '룩스'라는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세 파트는 다루고 있는 부분들이 다르다. 일단 첫 번째, 녹스(★)는 본격 장르문학을 다루고 있다. SF, 미스터리, 판타지 등의 본격 장르를 심도있게 다루면서 비평도 싣는다. 일반문학과 대중문학과의 차이라거나, 문학과 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도 이쪽에서 다루게 된다. 앤드(&)는 통합 미디어를 다룬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 장르와 밀접해 있는 다른 포멧의 이야기들이다. 만화도 이쪽에서 연재된다. 마지막으로 룩스(○)는 좀 더 대중적인 파트-라이트노벨, 대중문화-등과 함께 한국 신화를 다루게 된다. 여기서 또 각각의 기사들에 Popular, Fandom, Mania 표시로 구분을 줌으로써 많은 독자층을 넓히려는 노력이 보인다.
아티클로이드
녹스 앤 룩스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이 각각의 파트를 맡는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명 아티클로이드. 보컬로이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각 파트를 제각기 다른 인격을 갖춘 캐릭터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녹스는 주얼리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서문현서, 앤드는 미디어에 관심있는 소년 나우, 룩스는 모델 일을 하고 있는 밝고 활동적인 여고생 은여울이 맡게 된다.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인물들이 바로 이 아티클로이드들이다. 중간중간에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짧은 사컷만화들이 들어있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기사 자체가 이들의 대화로 진행되기도 한다.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스템임은 분명하다. 기사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면도 있다. <판타스틱>이 전문 장르잡지로서 진지한 면모가 컸다면, <녹스 앤 룩스>는 좀 더 밝고 명랑하다. 판타스틱은 하드 SF, 녹스 앤 룩스는 라이트노벨로 쓰인 SF라고 비유하면 될까?

표지 개선 필요
그런데 이 아티클로이드가 장식하고 있는 표지는 잡지를 늦게 보는 데 공헌을 했다. 통학을 하거나 공강 시간에 늘상 책을 들고다니며 읽는 편인데, 도무지 들고다닐 수가 없었다. 덕들이라도 소위 '일코'에 신경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도무지 밖으로 들고 나갈 수가 없다. 판타스틱은 뻔뻔히 들고가서 교수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읽었는데. 특히 이번 창간호 표지는 이 잡지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딜 봐도 소설 잡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전 정보가 없다면 '통합 장르잡지'라는 문구 하나만으로 내용을 유추해야할 상황이다. 다음호부터는 표지를 좀 더 개선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잡지에서 다루는 범위가 넓다보니까 기사들도 그저 소개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아쉽다. 특히 필자가 기사마다 적혀있지 않은게 불편했다. 혹시나 정보가 있을까 싶어 뒤져봐도 안 나와서... 편집면에서 좀 바꿔야할 것같다.

Alice Next Door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내가 녹스 앤 룩스에서 가장 기대한 건 장르문학 기사같은 것이 아니라 만화였다. 처음에는 그냥 장르잡지래서 구독신청했는데 신서로의 <A.N.D>가 들어있다는 말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Alice Next Door라고 몇 년 전에 네이버 베스트도전에서 연재하던 만화로 꽤 인기를 끌었는데 연중이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통틀어 내가 유일하게 팬카페까지 가입한 웹툰이다. 그 때 연재되었던 만화 그대로는 아니다. 내용도 조금 바뀔 것같고, 앨리스도 그 때보다 더 커졌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이 AND만으로도 잡지를 구독할 이유가 충분하다. 내용? 기억을 잃은 빠루마스터 앨리스와 낙서쟁이 흰토끼의 원더랜드 대모험☆ 스팀펑크적인 원더랜드가 배경이 된다.
재미있는 기사들
계속해서 연재될 기사들도 있다. NOX LIBRIS라는 칼럼은 동서양의 신화를 비교한다. 이번 호에서는 서양의 드래곤과 동양의 지네를 비교했다. 동서양의 신화를 비교함으로써 신화적 원형들을 좀 더 쉽게 알려줬다. Gengre Guidance는 이번에 고대 그리스 연극을 다뤘다. 며칠 전 수업시간에 그리스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수업보다 이쪽이 이해가 더 잘 됐다. 고전 속 캐릭터 소사전도 꽤나 재미있는 프로젝트. 말 그대로 고전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이번 테마는 저승차사. 여울이를 주인공으로 한 짧은 콩트 형식으로 설명을 해준다.
이외에도 재미있는 기사들이 있었다. 특히 전자책 출판 관련기사는 2주 후의 수업 발표에 참고 자료로 써먹을 수 있을 듯. 근대 소설과 장르픽션의 비교도 흥미로웠다. 소위 순수문학이라고 불리는(나는 일반문학이라고 부르는?) 문학작품들이 근대소설이다. 이 근대소설과 장르문학의 뿌리를 비교하고 현 상황을 짧게나마 분석해놓았다. 라이트노벨 쪽도 상당히 많이 다루고 있다. 잡지의 성격이 라노베와 가깝기 때문일까. 노블엔진과 시드노벨. 창간호에서 한번에 두 라노벨 출판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이 잡지에서 라이트노벨을 얼마나 비중있게 보고 있느냐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애초에 룩스라는 파트 자체가 라노베를 위해 떼어져 있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녹스, 앤, 룩스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오래 가기를!
우편 배송으로 뒤늦게 도착했던 내 <녹스 앤 룩스>. 먼 길 돌아오느라 수고 많았다. 이 잡지가 쉽게 망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나는 다음 달 호를 기다려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