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쓰리 세컨즈』의 표지를 들여다본 본 친구가 말했다. '작가 이름들이 참 특이하네.' 그랬다. 익숙한 영미식 이름이 아닌 스웨덴의 이름. 북유럽 스릴러 소설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나에게는 이게 처음인 셈이다. 스웨덴. 춥고 복지가 잘 되고 비싼 나라라고만 인식되던 곳. 영화 <렛미인>에서 보여준 하얀 눈밭이 내가 스웨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의 전부였다. 그런 미지의 나라에서 나온 스릴러는 어떤 모습일까. 워낙 책이 호평이라서 읽기 전부터 두근두근.



 



호프만과 그렌스


『쓰리 세컨즈』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피에트 호프만 에베트 그렌스


피에트 호프만은 범죄자. 아니, 범죄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범죄자로 조작된 된 경찰의 정보원이다. 암호명 파울라. 마약 소탕을 위해 투입된 경찰의 끄나풀로서 임무 완수를 위해 철저하게 신분을 감춘다. 냉혹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 사랑이 지극한 가장이기도 하다. 에베트 그렌스는 포기를 모르는 경찰. 그런 캐릭터 있지 않은가. 고집불통이라서 승진도 못하고, 한 번 맡은 사건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고, 남들 배려 안 하는 괴팍한 중년의 형사 말이다. 꽤 흔한 캐릭터이기는 한데, 이런 인물들이 또 나름의 매력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호프만과 그렌스는 각자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호프만이 정보원으로서의 일을 하다가,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그걸 덮어야하고, 근데 그걸 그렌스가 수사하게 되고... 뭐 이렇게. 완벽하게 엇갈리면서도 또한 완벽하게 맞물려 들어간다.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이 우연히라도 만날 접점도 없는데, 하나의 사건을 각자 다른 방향에서 헤쳐나가면서, 결국 일말의 결말을 도출해내는 걸 보고 있자니 괜스레 나도 뿌듯하다고나 할까.


 

'사람이 죽었습니다. 베스트만나가탄 대로 79번가입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기한은 사흘이었다.

당신은 누구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1권 338쪽

 



사실 나는 읽으면서 여기 나오는 아저씨들이 다들 멋져보여서 좋았다.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각자의 신념이 뚜렷한 남자들! 냉정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아저씨들이지만 한편에서는 자기 가족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이게 바로 비정한 범죄와 사나이의 세계! 영화가 눈 앞에 바로 펼쳐지는 듯했다.

 

호프만은 다시 한 번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두 아들을 태운 차 트렁크에 암페타민과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실었다. 

호프만은 북받치는 감정을 꿀꺽 집어삼켰다. 우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1권 286쪽

 




 



범죄자의 세계


쓰리 세컨즈의 흡입력은 상당하다. 일단 호프만의 처지와 임무 자체가 긴장이 넘친다. 일이 어떻게 튈지 알 수 없는 상태. 임무를 완수하는 건 어려워보이고, 호프만은 자칫하면 버려질 것이다. 호프만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며, 믿을 것은 자기자신 밖에 없다는 점을 확실히 알고 있다. 파울라를 관리하는 빌손은 나름대로의 우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어쩌겠는가. 경찰이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법을 어기고 있는 상황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을.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세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식으로 이용되고 '덮어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 무엇보다 독특한 점은 상세함일 것이다. 범죄 수법이 정말 실감나게 그려진다.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심리묘사, 범죄와 그쪽 세계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다. 작가들이 전직 사회부 기자와 전직 범죄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책날개의 사진에서 보이는 포스를 보라. 일반인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자세하게 보여주는 건 쉽지 않았을 것같다. 감옥으로 마약을 어떻게 반입하고, 튤립이 몇 도에서 피고 지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런 농축된 묘사와 설명은 뒷세계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에 불을 붙이기 충분하다. 근데 그 방법들이 소설로 이렇게 까발려졌으니 앞으로 이 방법 써먹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니, 소설에 쓰인 걸 보면 이미 그쪽 세계에서는 한물 간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범죄의 세계를 이렇게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는 게 놀랍다. 범죄와 관련된 이 모든 시스템은 실제하는 세계일 것이다.


 

"이봐, 호프만, 도대체 어떻게 할 건데?"

피에트 호프만은 씩 웃어 보였다.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 이후 처음으로 웃는 거였기 때문이다.

"튤립과 시(詩)가 도와줄 겁니다."

-1권 176쪽





허구 섞인 진실된 세계


스웨덴이라고 해서 완전히 다른 세계는 아니었다. 다른 세계는 국경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빛과 어둠으로 나뉘는 것이니까. 스웨덴만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에 쓰리 세컨즈 속의 허구와 진실을 구분해놨다. 보니까 시스템이나 설정적인 부분은 다 진실이다. 인물이야 허구이지만. 안데슈 루슬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두 작가는 상당히 문제적인 작품을 써버린 거 같다. 장막 뒤에 가려진 세계는 냉혹했다. 경찰이 대체... 아, 그만해야지. 


마지막 장을 덮자  『비스트』를 보고 싶어졌다. 대체 가끔 언급되는 사건은 무엇이었던 것인지, 어째서 그렌스 형사가 저 모양인 것인지. 근데 언제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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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The SandMan 1 - 서곡과 야상곡 시공그래픽노블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SF&판타지 도서관에는 재미있어보이는 책들이 많았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집어든 것은 『샌드맨 1 -서곡과 야상곡』이다. 왜? 어째서? 물어본다면, 《녹스 앤 룩스》에서 봤던 <<샌드맨> 즐겁게 읽는 법>이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샌드맨. 제목은 정말 많이 들었고, 유명 SF작가 닐 게이먼을 이야기하면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소설이 아닌 그래픽 노블(만화)라는 건 알고 있는데, 대체 뭐하는 이야기야?

 

샌드맨 즐겁게 읽는 순서?

<샌드맨 즐겁게 읽는 법>에서는 각 권의 분위기와 기조를 분석하면서 독자에게 맞는 샌드맨을 추천한다. 1권부터 차례대로 읽는 것은 그리 추천하지 않는 듯한 기색이다. 그럼에도 내가 1권부터 읽었던 것은, '판타지 소설 독자라면 처음부터 이작품부터 읽어도 무리가 없다.'라는 문구와 그래도 순서대로 봐야지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판타지 독자였기때문일까?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픽 노블 어려워라.

그런데 내가 제일 당황했던 것은 내용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그래픽 노블이라는 이야기기 형식 그 자체였다. 내용? 분위기? 익숙한 장르였고, 기본적인 이야기 골조도 판타지다웠다. 그러나 그래픽 노블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래픽 노블을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그래픽 노블이든 아니든 영미권 만화책을 제대로 본 것이 이번 처음이다. 어쨌거나 만화책이니까 만만하게 봤는데,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림부터가 낯설고, 전개도 그리 친절하지 않았고, 사람 얼굴도 그림마다 바뀌는 거같아서 구분하느라 애먹고. 소설로 써져있다면 되려 더 이해도, 속도도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그래픽 노블이 어째서 그냥 코믹북이라고 불리지 않고 '노블'이라는 명칭을 다는 건지 제대로 이해했다.

 

꿈의 왕, 샌드맨.

샌드맨, Sand Man은 모래로 만들어진 사나이같은 게 아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었다는 것은 비밀. 유럽 전래 민담에서의 샌드맨이라는 존재이다. 모래를 뿌려 사람들을 잠들게 하는 꿈의 요정. 이 작품에서 샌드맨은 죽음의 동생이자 꿈의 세계의 왕, 신이다. 죽음을 소환하려는 사람들의 오만한 시도가 실패하고 그 동생 샌드맨이 소환당해 유배되었다. 70년이었던가? 70년 동안 때를 기다린 샌드맨은 복수를 끝내고, 자신의 잃어버린 물건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퀘스트를 하나씩 완수해가는 과정. 미국식 유머도 조금씩 들어있다.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도 잠시 등장. 잘 알지 못하니까 저 악당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잔인한 꿈.

하나의 이야기가 책 한 권을 관통하고 있지만, 퀘스트 형식이다 보니까 한 퀘스트 하나씩이 각각의 이야기인 듯한 느낌도 준다. 이야기 배경도 느낌도 각각 다 다르다. 근데 어떤 이야기는 꽤 잔인하기도 했다. 아니, 대부분이 그랬다. 만화로 보면서도 끔찍했으니 영화로 나왔으면 못 보고 돌렸을 테다. 꿈이라는 세계가 대변하는 것들. 악몽, 욕망, 잔인성, 야수성 등이 깨어나며 현실을 파괴했다. 그러나 '샌드맨'이라는 인물 자체가 잔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배 때문에 약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려나.

 

 

어쨌거나 재미있었다. 다른 권들은 무슨 이야기일지 궁금한데, 어디서 구해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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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1 : 국내편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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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 판타지를 언급할 때 『퇴마록』은 빠질 수 없는 작품 중에 하나이다. 판타지 붐을 이끌었던 주역이었고, 그 인기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망했지만- 대단했다. 많은 이들에게 퇴마록은 추억의 소설일 것이다. 나는 단 한 번 읽고 말지만 말이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왜란종결자』, 『치우천왕기』는 좀 더 이후에 몇 번 읽었지만, 긴 길이에 다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재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 퇴마록이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기 때문이다. 이후 퇴마록이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워 찾아봤었지만, 표지를 두고 돌아섰었다.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색깔과 단순한 디자인이어서, 살 마음이 없었다. 아니, 그런데 글쎄, 모아놓으면 정말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봤더니.... 어느새 책장에 꽂혀있었다.



 

 

 


국내편


『퇴마록 국내편』은 국내편-세계편-혼세편-말세편으로 이어지는 퇴마록 시리즈의 시작을 고하는 작품이다. 퇴마록을 관통하는 네 주인공들이 등장하며, 그들의 만남과 과거가 제시된다. 국내편이라는 제목답게 배경은 한국으로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 단편처럼 짧은 이야기들이다. 각 편 사이의 연결점이 깊지 않다. 여름밤에 재미로 하고는 하는 '무서운 이야기'의 퇴마록 판이다.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다보니, 각 이야기마다의 재미도도 다 다르다. 당시로서는 꽤나 실험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채팅 대화를 삽입한 <아무도 없는 밤>같은 이야기도 있는 반면, 흔히 볼 수 있는 도시 괴담을 약간 바꾸었을 뿐으로 보이는 <그네>같은 단편도 있다.



다시 읽은 퇴마록은 좀....


어릴 때 읽는 것과 커서 읽는 것이 느낌이 다른 책들이 있다. 퇴마록도 그런 류라고 할 수 있는데, 좋은 쪽으로 보다는 안 좋은 쪽으로 달라졌다는 게 문제다. 머리가 굵은 탓일 테다. 국내편은 이우혁 작가가 전면 개정을 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에 내용, 문장 상으로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글은 대체로 고칠 수록 나아진다고 믿는 나로서는 전면개정에 전적으로 찬성이었기에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아쉽다. 작가 본인도 인정한 사실이지만 처음 쓴 소설이기에 필력이 별로 좋지 않다. 건조하고 묘사도 적고 설명이 많다. 글이 세련된 맛이 없이 투박하고, 시쳇말로 하자면 오글거린다. 연습을 하지 않은 글이라는 것이 대번에 드러난다. 전에는 못 느꼈던 점이다. 최근작이라고 볼 수 있는 치우천왕기와 비교를 하자면 확실히 못 미친다. 



 

 

 



그래도 애정은 여전히


그럼에도 계속 읽는 것은 소설에 대한 애정 탓이다. 워낙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의도 큰 데다가 이야기 자체는 정말 재미있으니까. 물론 호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별로 무섭지는 않다. 그러나 환상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재미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특히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많은 신화를 끌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대단하다. 이번 퇴마록 개정판에서는 각 권의 제일 끝에 주석을 실어놓았다. 본문에는 꼭 필요한 부분만 가끔 있다. 원래는 따로 주석집이 있었지만 이렇게 권마다 집어 넣는 편이 훨씬 보기 편했다. 

국내편은 가볍게 읽었다. 이후의 이야기에 비하면 준후, 승희, 현암, 박신부. 이 네 사람이 퇴마를 하러 다니는 것이 그저 일상으로 보이는 분위기니까. 국내펴는 다른 편으로 넘어가기 위한 도입부이고 사실 퇴마록 중에서도 가장 덜 좋아하는 편이라서 말이다. 국내편에서 제일 좋아하는 편은 마지막 퇴마사 승희가 합류하는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 편이다. 이야기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게 차근차근해서 좋다고나 할까. 


 

 

 

 
재미있게 읽고는 있었지만, 뒤따라올 이야기를 생각하면 멈칫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계속 읽을 것이다. 이제까지 읽은 이 2권의 이야기보다 남은 이야기가 많다. 혼세, 말세는 각각 4, 5권으로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갈 길이 멀다.


"도대체 우린 누굴 위해서 싸우는 거죠? 어지러운 세상은 마를 만들어 내고 우린 그 마를 제압하려고 싸우고……."
"난들 알겠나? 하지만 우린 선을 위해 싸우는 거지. 아니, 꼭 선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은……."
준후가 끼어들었다.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그래, 맞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1권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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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앤룩스 NOX & LUX 2012.3.4 - Vol.1, 창간호
녹스앤룩스 편집부 엮음 / 녹스앤룩스(잡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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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장르문학잡지, <판타스틱>의 추억

워낙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고등학교 때도 거의 학교와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길에서 벗어날 때가 한 달에 한 번 씩은 꼭 있었는데, 바로 장르잡지 <판타스틱>이 출간될 때였다. 한 달에 한 번 판타스틱이 나올 때면 학교 근처 서점 순회를 했다. '나왔어요? 아직 안 나왔어요? 내일 올게요.' 내 손에 입수될 때까지 며칠을 반복해서 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판타스틱이 손에 들어올 때면 싱글벙글.  친구가 그 때의 내 모습을 보고 놀랐을 정도다. 그렇게 하루 아니면 이틀만에 판타스틱을 다 읽어버리면, 그 잡지는 내 손을 떠나 친구들 손을 떠돌기 시작했다. 취향따라 발췌독을 하는 친구들 손을 타다 보면 어느새인가 보면 옆반까지 가있더랬다. 판타지를 좋아하지만 다른 지식은 하나도 없던 나는 판타스틱이라는 잡지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끼고 살았는데 이게 웬 걸, 조금 있으니 종이 잡지는 사라지고 카페만 남아버렸다. 장르를 배워가던 창구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녹스 앤 룩스>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예전에 사라진, 판타스틱과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기대가 솟았다. 격월이라고 해도 좋고, 좀 얇고 가격이 낮아도(7천원) 괜찮으니 나온다는 것 자체가 무척 좋았다. 나오기 전부터 정기구독 신청하고,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기다리다가 받아본 녹스 앤 룩스. 창간호라서 미흡한 점도 보였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일단 잡지의 내용 이전에 이렇게 장르 잡지가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부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녹스 앤 룩스>의 기사 구분

녹스 앤 룩스는 꽤 특이한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다. 일단 녹스 앤 룩스는 '녹스', '앤', '룩스'라는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세 파트는 다루고 있는 부분들이 다르다. 일단 첫 번째, 녹스(★)는 본격 장르문학을 다루고 있다. SF, 미스터리, 판타지 등의 본격 장르를 심도있게 다루면서 비평도 싣는다. 일반문학과 대중문학과의 차이라거나, 문학과 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도 이쪽에서 다루게 된다. 앤드(&)는 통합 미디어를 다룬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 장르와 밀접해 있는 다른 포멧의 이야기들이다. 만화도 이쪽에서 연재된다. 마지막으로 룩스(○)는 좀 더 대중적인 파트-라이트노벨, 대중문화-등과 함께 한국 신화를 다루게 된다. 여기서 또 각각의 기사들에 Popular, Fandom, Mania 표시로 구분을 줌으로써 많은 독자층을 넓히려는 노력이 보인다. 


아티클로이드

녹스 앤 룩스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이 각각의 파트를 맡는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명 아티클로이드. 보컬로이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각 파트를 제각기 다른 인격을 갖춘 캐릭터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녹스는 주얼리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서문현서, 앤드는 미디어에 관심있는 소년 나우, 룩스는 모델 일을 하고 있는 밝고 활동적인 여고생 은여울이 맡게 된다.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인물들이 바로 이 아티클로이드들이다. 중간중간에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짧은 사컷만화들이 들어있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기사 자체가 이들의 대화로 진행되기도 한다.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스템임은 분명하다. 기사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면도 있다. <판타스틱>이 전문 장르잡지로서 진지한 면모가 컸다면, <녹스 앤 룩스>는 좀 더 밝고 명랑하다. 판타스틱은 하드 SF, 녹스 앤 룩스는 라이트노벨로 쓰인 SF라고 비유하면 될까?



표지 개선 필요

그런데 이 아티클로이드가 장식하고 있는 표지는 잡지를 늦게 보는 데 공헌을 했다. 통학을 하거나 공강 시간에 늘상 책을 들고다니며 읽는 편인데, 도무지 들고다닐 수가 없었다. 덕들이라도 소위 '일코'1에 신경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도무지 밖으로 들고 나갈 수가 없다. 판타스틱은 뻔뻔히 들고가서 교수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읽었는데. 특히 이번 창간호 표지는 이 잡지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딜 봐도 소설 잡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전 정보가 없다면 '통합 장르잡지'라는 문구 하나만으로 내용을 유추해야할 상황이다. 다음호부터는 표지를 좀 더 개선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잡지에서 다루는 범위가 넓다보니까 기사들도 그저 소개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아쉽다. 특히 필자가 기사마다 적혀있지 않은게 불편했다. 혹시나 정보가 있을까 싶어 뒤져봐도 안 나와서... 편집면에서 좀 바꿔야할 것같다.


 




 


Alice Next Door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내가 녹스 앤 룩스에서 가장 기대한 건 장르문학 기사같은 것이 아니라 만화였다. 처음에는 그냥 장르잡지래서 구독신청했는데 신서로의 <A.N.D>가 들어있다는 말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Alice Next Door라고 몇 년 전에 네이버 베스트도전에서 연재하던 만화로 꽤 인기를 끌었는데 연중이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통틀어 내가 유일하게 팬카페까지 가입한 웹툰이다. 그 때 연재되었던 만화 그대로는 아니다. 내용도 조금 바뀔 것같고, 앨리스도 그 때보다 더 커졌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이 AND만으로도 잡지를 구독할 이유가 충분하다. 내용? 기억을 잃은 빠루마스터 앨리스와 낙서쟁이 흰토끼의 원더랜드 대모험☆ 스팀펑크적인 원더랜드가 배경이 된다. 



재미있는 기사들

계속해서 연재될 기사들도 있다. NOX LIBRIS라는 칼럼은 동서양의 신화를 비교한다. 이번 호에서는 서양의 드래곤과 동양의 지네를 비교했다. 동서양의 신화를 비교함으로써 신화적 원형들을 좀 더 쉽게 알려줬다. Gengre Guidance는 이번에 고대 그리스 연극을 다뤘다. 며칠 전 수업시간에 그리스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수업보다 이쪽이 이해가 더 잘 됐다. 고전 속 캐릭터 소사전도 꽤나 재미있는 프로젝트. 말 그대로 고전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이번 테마는 저승차사. 여울이를 주인공으로 한 짧은 콩트 형식으로 설명을 해준다. 


이외에도 재미있는 기사들이 있었다. 특히 전자책 출판 관련기사는 2주 후의 수업 발표에 참고 자료로 써먹을 수 있을 듯. 근대 소설과 장르픽션의 비교도 흥미로웠다. 소위 순수문학이라고 불리는(나는 일반문학이라고 부르는?) 문학작품들이 근대소설이다. 이 근대소설과 장르문학의 뿌리를 비교하고 현 상황을 짧게나마 분석해놓았다. 라이트노벨 쪽도 상당히 많이 다루고 있다. 잡지의 성격이 라노베와 가깝기 때문일까. 노블엔진과 시드노벨. 창간호에서 한번에 두 라노벨 출판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이 잡지에서 라이트노벨을 얼마나 비중있게 보고 있느냐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애초에 룩스라는 파트 자체가 라노베를 위해 떼어져 있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녹스, 앤, 룩스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오래 가기를!

우편 배송으로 뒤늦게 도착했던 내 <녹스 앤 룩스>. 먼 길 돌아오느라 수고 많았다. 이 잡지가 쉽게 망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나는 다음 달 호를 기다려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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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 디자인 팝업카드 만들기 공룡과 나비잠의 또드락 뚜드럭 2
공룡과 나비잠 지음 / 두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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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카드 도안은 여러군데에서 구할 수 있다. 온라인상에 돌아다니는 무료 도안도 많고, 도안집도 꽤 있으니까. 도안은 어디서 구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항상 공룡과 나비잠 사이트(http://www.dinonabi.com)를 추천한다. 팝업 자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이트 주인인 공룡과 나비잠은 팝업 아티스트이다.

 

 

 

 

일전에 나왔던 공룡과 나비잠의 『입체도형 팝업카드 만들기』가 기본적인 도형 팝업 형태를 설명했다면, 『실루엣 디자인 팝업카드 만들기』는 좀 더 정교하고 실용적인 팝업을 담고 있다. 말 그대로 실루엣 팝업들. 

 

'일단 책을 샀는데, 서평을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아마 이 안의 내용이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보고 만들어볼 수밖에 없는 도안집이니까.

 

 

 

 

책의 첫부분에서는 팝업을 만들기 위한 준비물이라거나 기본적인 기호 등을 설명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미 이 책을 구입한 독자를, 어느 정도 팝업카드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상정한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실제로 팝업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는 이 책보다는 『입체도형 팝업카드 만들기』를 통해 연습이라도 한 번 해보고 오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아니라도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책에는 13개의 도안이 들어있다. 어버이날, 크리스마스, 새해 등의 각종 기념일에 쓸 만한 도안들이다.

무슨 도안들이 들어있는지 보고싶다면 [여기]로.

 

카드는 실루엣으로 다 잘라도 되고, 사진에 나온 것처럼 색칠을 해도 꽤나 괜찮다. 물론 실루엣 작업은 손이 더 많이 가고, 복잡하다. 실루엣 도안만이 아닌 일러스트 버전 도안들도 있으니 그 쪽이 만들기가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색칠을 하거나!

 

 


 

뒤편에 있는 이런 도안들을 복사해서 자르면 된다. 이 초가집 도안의 경우에는 컬러 일러스트 도안도 따로 실려있다.

 

 


 

일단 서평을 쓰려면 적어도 하나는 만들어 봐야하지 않겠냐며 패기 넘치게 만들었던 나무 팝업카드.

1/2 크기로 축소해서 출력했더니 칼질이 장난 아니게 힘들었다. 안 그래도 오랜만에 해서 속도가 느렸는데. 보통 팝업카드는 대부분 종이 두께까지 계산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함부로 축소 출력했다가는 붙이는 와중에 망하는 수가 있다. 사실 이 나무 도안도 자르기보다 붙이는 데서 골머리를 썩었다. 축소 탓은 아니고 도안끼리 헷갈렸다. 내가 제대로 못 만든 것인지 카드와 팝업의 접착면이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서 결국 아무렇게나 붙여버렸다. 도안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사진 다음에 좀 더 예쁘게 제대로 찍어서 올려봐야겠다.

 

 

실루엣 디자인 팝업카드들은 워낙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보니 쉽게 덤비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하나 만들고 나면 계속 보고 또 보게 된다. 뿌듯하게. 아까워서 누구 주지도 못하겠다.

 

다른 것들도 만들어보고 싶다. 시간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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