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마록 1 : 국내편 ㅣ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판타지를 언급할 때 『퇴마록』은 빠질 수 없는 작품 중에 하나이다. 판타지 붐을 이끌었던 주역이었고, 그 인기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망했지만- 대단했다. 많은 이들에게 퇴마록은 추억의 소설일 것이다. 나는 단 한 번 읽고 말지만 말이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왜란종결자』, 『치우천왕기』는 좀 더 이후에 몇 번 읽었지만, 긴 길이에 다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재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 퇴마록이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기 때문이다. 이후 퇴마록이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워 찾아봤었지만, 표지를 두고 돌아섰었다.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색깔과 단순한 디자인이어서, 살 마음이 없었다. 아니, 그런데 글쎄, 모아놓으면 정말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봤더니.... 어느새 책장에 꽂혀있었다.

국내편
『퇴마록 국내편』은 국내편-세계편-혼세편-말세편으로 이어지는 퇴마록 시리즈의 시작을 고하는 작품이다. 퇴마록을 관통하는 네 주인공들이 등장하며, 그들의 만남과 과거가 제시된다. 국내편이라는 제목답게 배경은 한국으로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 단편처럼 짧은 이야기들이다. 각 편 사이의 연결점이 깊지 않다. 여름밤에 재미로 하고는 하는 '무서운 이야기'의 퇴마록 판이다.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다보니, 각 이야기마다의 재미도도 다 다르다. 당시로서는 꽤나 실험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채팅 대화를 삽입한 <아무도 없는 밤>같은 이야기도 있는 반면, 흔히 볼 수 있는 도시 괴담을 약간 바꾸었을 뿐으로 보이는 <그네>같은 단편도 있다.
다시 읽은 퇴마록은 좀....
어릴 때 읽는 것과 커서 읽는 것이 느낌이 다른 책들이 있다. 퇴마록도 그런 류라고 할 수 있는데, 좋은 쪽으로 보다는 안 좋은 쪽으로 달라졌다는 게 문제다. 머리가 굵은 탓일 테다. 국내편은 이우혁 작가가 전면 개정을 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에 내용, 문장 상으로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글은 대체로 고칠 수록 나아진다고 믿는 나로서는 전면개정에 전적으로 찬성이었기에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아쉽다. 작가 본인도 인정한 사실이지만 처음 쓴 소설이기에 필력이 별로 좋지 않다. 건조하고 묘사도 적고 설명이 많다. 글이 세련된 맛이 없이 투박하고, 시쳇말로 하자면 오글거린다. 연습을 하지 않은 글이라는 것이 대번에 드러난다. 전에는 못 느꼈던 점이다. 최근작이라고 볼 수 있는 치우천왕기와 비교를 하자면 확실히 못 미친다.

그래도 애정은 여전히
그럼에도 계속 읽는 것은 소설에 대한 애정 탓이다. 워낙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의도 큰 데다가 이야기 자체는 정말 재미있으니까. 물론 호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별로 무섭지는 않다. 그러나 환상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재미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특히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많은 신화를 끌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대단하다. 이번 퇴마록 개정판에서는 각 권의 제일 끝에 주석을 실어놓았다. 본문에는 꼭 필요한 부분만 가끔 있다. 원래는 따로 주석집이 있었지만 이렇게 권마다 집어 넣는 편이 훨씬 보기 편했다.
국내편은 가볍게 읽었다. 이후의 이야기에 비하면 준후, 승희, 현암, 박신부. 이 네 사람이 퇴마를 하러 다니는 것이 그저 일상으로 보이는 분위기니까. 국내펴는 다른 편으로 넘어가기 위한 도입부이고 사실 퇴마록 중에서도 가장 덜 좋아하는 편이라서 말이다. 국내편에서 제일 좋아하는 편은 마지막 퇴마사 승희가 합류하는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 편이다. 이야기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게 차근차근해서 좋다고나 할까.
재미있게 읽고는 있었지만, 뒤따라올 이야기를 생각하면 멈칫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계속 읽을 것이다. 이제까지 읽은 이 2권의 이야기보다 남은 이야기가 많다. 혼세, 말세는 각각 4, 5권으로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갈 길이 멀다.
"도대체 우린 누굴 위해서 싸우는 거죠? 어지러운 세상은 마를 만들어 내고 우린 그 마를 제압하려고 싸우고……."
"난들 알겠나? 하지만 우린 선을 위해 싸우는 거지. 아니, 꼭 선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은……."
준후가 끼어들었다.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그래, 맞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1권 4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