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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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어릴 때 보던 책을 지금 다시 봤는데 정말 아닐 수 있고, 어려서 이해 안 갔던 책을 다시 보니 정말 멋질 때도 있다. 어느 시기에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책들. 그래서 어머니들은 어디서 주워 들은 책을 열심히 자식들에게 사주고, 청소년 권장도서니 하는 리스트도 생기는 것이리라. 






늦어진 독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가 때를 놓친 책이다.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였나. 엄마가 청소년 권장도서랍시고 사오셨다. 이전에 전질로 50권 사둔 민음사 세계전집에 있는 줄도 모르시고. 그래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한동안 집에 두 권이었고, 한 권은 결국 친척에게 넘어갔던 것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기에 읽는 것을 미뤘고, 그래서 펼쳐보는 게 참 늦어졌다. 굳이 미룬 데 대한 변명을 해보자면, 역시 10대에 읽어야한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는데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했었기 때문이다. 호밀밭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좀 더 전에 봤다면 감상이 달랐을까 


청소년의 방황. 홀든이 퇴학을 당하고부터, 집에 들어갈 때까지의 방황. 학교에서의 교우관계에서, 이성에 대한 관심, 어른스러운 척, 성적. 청소년의 모든 고민들이 이 책 안에 들어있었다. 그것도 아주 섬세하게. 소년의 방식이었지만, 소녀들도 모를 바는 아니리라.


내가 뭘 봤어야 하나. 뭘 봐야하나 모르겠다. 분명 내가 중고등학교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여기에 심히 동조해서 우울의 나락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 때도 평범한 소녀만한 감수성은 없었지만, 우울의 바닥은 자주 쳤고 회의적이었고 세상이 싫었더랬다. 시니컬? 시니컬. 시니컬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그때의 나는 세상 만사가 싫은 홀든을 이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물론 더 짜증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겠다.) 지금의 나는 홀든에게 네가 좋아하는 게 대체 뭐냐고 붙잡고 묻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몇 대 때려주고 싶기도 했다. 야 이 중이병 자식아. 라며. 


「오빠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거지?」

그 애가 이런 말을 하니 나는 우울해졌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런 말 하지 마. 왜 그렇게 말하는 거니?」

「오빠가 싫어하니까. 학교마다 싫다고 했잖아. 오빠가 싫어하는 건 백만 가지도 넘을 거야. 그렇지?」

-225쪽


「한 가지도 좋은 걸 생각해 낼 수 없는 거지?」

「그렇지 않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니까」

「그럼 어서 말해 봐」

「앨리가 좋아.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 이렇게 너랑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227쪽



좀 더 일찍 이 책을 봤다면, 내가 가장 홀든과 비슷한 상태(오만하게도 남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믿던 그 때, 나를 빼고 모두를 한심하게 봤던 때)였을 때 봤다면, 감상이 달라졌을까. 달라졌을 것이다. 혹시나 읽고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혹시나일 뿐이고. 지금의 나는 그 때와 다르니까.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감정이입은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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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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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나도 제목만큼은 꽤 많이 들었다. 어쩌면 내 책장 구석에 박혀서 자주 봤기에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오늘 여름의 가운데에서 이 유명한 작품을 집어들었다. '눈의 나라'라는 제목을 한 이 책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7쪽. 시작. 



첫장을 펼쳐 들자, 눈 앞에 눈의 마을이 있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일본 특유의 서정성이다. 가끔 본 일본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고요함. 그 서정. 아름다움. 문장은 수려하고, 미(美)로 가득 차있다. 작가가 작품을 그 아름다움으로 채우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이 소설에서 사건과 갈등이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품은 정적이고 잘 그려진 한 폭의 유화, 아니 수채화, 아니 유화같다. 어쩐지 수채화보다는 유화같다는 느낌. 


작품의 배경은 일본 니가타 현의 에치고 유자와 온천, 작가는 설국을 여기서 직접 집필했다고 한다. 실제 존재하는 마을이라니까, 물론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지. 설국의 완결판이 출간된 건 1948년이라니까. 




아름다운 눈이 녹으면 평범한 물이 될 뿐이지만.


도쿄의 시마무라는 저 고요한 눈의 마을에서, 고마코라는 게이샤를 만났다. 이름도 몰랐고 잠시 이야기만 나눴던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니가타현까지 몇 번을 다시 간다. 고마코의 아름다움, 헌신, 사랑. 그리고 또 다른 여인 요코. 그녀는 시마무라와 깊은 연관은 맺지 못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시마무라를 계속해서 매혹시킨다. 삼각관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마무라가 요코에게 끌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처녀의 한쪽 눈만은 참으로 기묘하게 아름다웠으나, 시마무라는 얼굴을 창에 갖다 대더니 마치 해질녘의 풍경을 내다보려는 여행자인 양 재빨리 표정을 바꾸어 손바닥으로 유리를 문질렀다. 

11쪽.


사실 내용은 뭔가 비어있다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눈이 녹으면 물밖에 없듯이, 녹아서 부피가 줄어들어버리듯이. 문장과 문체를 걷어낸 설국의 이야기는 내게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시마무라라는의 남성으로서의 욕망을 미(美)라는 절대 가치로 치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쨌거나 이 이야기는 시마무라가 바람 피는(시마무라는 도쿄에 아내가 있다) 이야기가 아닌가. 요코가 왜 죽어야 했는가의 문제부터, 고마코와 요코의 미묘한 관계, 고마코의 감정까지 생각해보면 더 깊은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공식에 따라 시마무라의 이야기를 로맨틱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설국이 아름다웠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팥빙수도 입 속에서 녹으면 물일 뿐이지만 입에 들어간 그 직후에는 매혹적이듯이. 설국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눈. 녹기 직전의 쌓인 눈. 사건 그 자체보다 문장과 분위기를 탐하게 하는 소설. 그게 설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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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의 신
린지 페이 지음, 안재권 옮김 / 문학수첩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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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내가 읽거나 본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서 미국은 언제나 자유와 기회의 땅이었다. 망쳐진 명성을 회복하고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사랑의 꽃 피우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위해 많은 유럽인들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것이 행복의 보증수표라도 되는 양. 아메리칸 드림은 이민하는 국가만 달라진다 뿐이지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유럽인들. 미국으로 이민한 사람들은 꿈을 이루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까?






1845년, 뉴욕. 고담시


『고담의 신』은 19세기, 정확히는 1845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북전쟁도 일어나기 전이다. 뉴욕은 수많은 범죄와 악행이 벌어지는 도시였다. 배트맨의 도시로만 생각했던 고담은 그런 뉴욕의 별명. 수많은 이들이 이민을 온 미국 안에서도 어느 나라에서 이민을 왔느냐에 따라 차별이 심해지고, 종교탄압도 지속된다. 그런 뉴욕에서 다른 중요한 도시들에 비해 뒤늦게 경찰국이 탄생하고, 화재로 직장을 잃어버린 티머시 와일드는 형 밸런타인의 영향으로 신생 경찰국의 경찰이 된다. 그리고 뉴욕 인근에서 아동을 십자로 벤 잔인한 살인이 벌어지고, 티머시는 그 살인을 수사하게 된다.


"나머지는 알다시피 범죄를 예방하지. 순찰경관, 그리고 지서장들도. 하지만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일단 벌어진 범죄를 해결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야. 그게 자네의 자리가 아닌가 나는 생각하네, 와일드군. 사실이 벌어진 후에 해결하는 것. 아무나 그런 일을 시도할 수는 없다는 건 알겠지. 그러니 맹세코, 그게 자네가 할 일이야. 수수께끼를 푸는 것, 그리고 그걸 나에게, 오직 나에게만 보고하는 것."

-249쪽



인상적이었다. 린지 페이의 문장은 섬세하고 묘사는 곳곳을 훑어내린다. 캐릭터도 잘 살아있었다.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 번역 문장이 군데군데서 튀어나왔다. 한창 집중하다가 그런 문장이 나올 때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 외에는 별 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지루했다는 평도 봤는데, 나는 오히려 상세한 묘사와 곁가지의 자잘한 에피소드를 반기는 취향이라 오히려 더 재미있게 본 듯하다. 내가 소설은 어지간해서는 지루해하지 않기도 하고.





추리보다는 티머시가 더 좋았다. 


무엇보다 이 시기 뉴욕. 19세기잖은가. 나는 빅토리아 시대 런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도시가 달라졌지만 시기는 비슷하니까 역시 취향이다. 사건의 진상보다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에 벌어진 사건들이 재미있었다. 일종의 코지 미스터리적 재미? 물론 그처럼 코지하지는 않지만. 경찰이 처음 만들어졌는데 생각보다 그래도 잘 운영되네 싶기도 했고 말이다. 수사 보다는 티머시의 로맨스와 형과의 갈등이 더 흥미로웠다. 범인보다는, 그 추리 직전에 있었던 머시와의 사건, 밸런타인과의 사건이 더 큰 충격을 가져다줬고 말이다. 아, 독자들은 티머시가 정육점 종이에 써가면서 추리할 때 같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서는 독자에게도 다 주어졌으니까.




어디에도 평화는 없었다.


고담이었다. 배트맨의 도시. 악의 소굴. 뉴욕이 바로 그 고담이었다. 자유와 기회의 땅에서, 누군가는 자유를 위해 런던을 꿈꿨다. 런던 사람은 자유를 위해 뉴욕으로, 뉴욕사람은 자유를 위해 런던으로. 그러나 어디든 갈등은 존재했다.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종교로, 인종으로 차별당하는 게 당연하던 그 시대, 그 땅. 바로 뉴욕. 그 곳에서는 배트맨, 아니, 티머시 같은 경찰이 필요했다. 


"나아질 거야." 나는 약속했다. 그저 그게 사실이길 바라면서. "이 일에서 멀어질수록 더 나아지고 또 나아질 거야."

"멀어진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너나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일들, 우리를 아프게 하거나 더럽히는 일들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어." 나는 이렇게 말하며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냥 계속 걸어가는 거야. 뉴욕에서는 그 어떤 것도 깨끗하지 않아."

-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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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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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캄보디아로 갔던 가족여행. 그곳에서 진짜 해골을 봤다. 어렸기에 무슨 역사가 있었는지도 몰라 가짜처럼만 보이던 그 해골들. 그럼에도 인상적으로, 강렬하게 남아있다. 쌓여있는 두개골에는 총살로 난 구멍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킬링 필드라는 끔찍한 제노사이드로 죽어간 사람들의 해골이 캄보디아 전역 곳곳에 탑으로 보존되어 있다던 가이드의 설명이 생생하다. 킬링 필드만이 아니다. 인간이란 종의 동족 대학살은 수없이 자행되어 왔고 지금 어딘가에서도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제노사이드. 대량학살


제노사이드. 인간의 광기. 생존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어찌할 수 없는 원죄인가. 제노사이드를 하는 생물은 인간 뿐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지만, 사실 진짜 그런 것은 아니란다. 『제노사이드』에서도 잠시 나왔지만 침팬지도 동족 살해를 자행하고, 그 수법은 꽤나 잔인하기도 하다. 나는 침팬지의 제노사이드를 『다니』라는 소설을 통해 먼저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소설에서도 침팬지들의 전쟁이 인간의 학살과 겹쳐 보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동족 대학살의 대표주자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인가보다. 


예거는 울컥했지만 화를 참았다. 다른 인종을 때리는 것에 저항감이 있었다. 게다가 믹이 왜 유인원을 쏘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린 원숭이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대장 원숭이에 대한 증오 때문인지. 실제로는 그 어느 것도 아니라 하등동물에 무력을 과시하며 비열한 허영심을 만족시키려 한 것일지도 몰랐다.  -p.205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는 새로운 종의 탄생과 그 종을 말살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지구에서 가장 번성한 호모 사피엔스. 이 인류가 이렇게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한 폭력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뭣보다 그 최정점에 선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라니 뭐랄까 사실 같으면서 통쾌했다. 낄낄.






잘 짜인 구성, 전문적인 깊이까지.


꽤 긴 이야기였음에도 이야기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느슨해지지 않으며, 조금 느슨해진다 싶을 때는 곧바로 고삐를 조인다. 이야기는 진행될 수록 전체적이고 구체적인 상을 그려낸다. 단 두 사람의 시선에서 시작해 민족과 국가로 발전한 후 종국에는 인류라는 종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한다. 또한 제노사이드는 이야기의 규모가 갈 수록 커지던 것과는 반대로 하나의 개체에 얽혀있으며, 유전자라는 굉장히 작은 영역까지 세세하게 신경쓰고 있다. 


작가는 진화라는 영역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굉장히 전문적인 과학지식들을 끌어온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언급되는 리간드와 수용체, 거울 구성체 등의 전문 용어들은 생소하다. 난해하다. 그러나 작가는 나름대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실제 과학 서적에서는 얼마나 더 어려울지 생각해본다면 이 정도는 양호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고 과학적 설명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다. 독자가 이 전문지식에 굳이 얽매일 필요도 없다. 물론 이런 과학 지식을 통해 글에 깊이가 더해진 건 사실이지만 애써 이해하지 않아도 이야기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번역이 힘들었겠다 싶었을 뿐이다.


  겐토는 자기 어머니가 문득 떠올랐다. 분명코 이 강인한 면은 말이나 종교나 인종을 넘어선 모든 인류에게 공통되는 선(善)이리라. 겐토는 먼 나라에 있는 용감한 어머니에게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예거 씨."

  겐토는 하늘에 대고 전화 상대에게 들키지 않게 작게 신음했다. 그 후의 각오를 정하고 인생 최대의 도박이 될 말을 꺼냈다. 

  "제가 약속합니다. 반드시 당신의 아이를 구하겠습니다"

-p.349




한국? 일본? 중요한가?


한국학생 정훈이 나오고, 일본 작가가 쓴 소설에서 일본의 제노사이드 행태가 나온다는 점에서 일본 우익들의 비난을 받았다고 들었다. 근데 그냥 언급되는 수준인 왜 과민반응일까 싶었다. 인종, 국가 등의 이유로 타자를 배제하기 때문인가? 일본인인 믹이 좀 비열하게 나오기는 했으나 그 반대선상에서 겐토라는 존재도 있는데 말이다. 국적이 한국이고 일본이라는 그게 그렇게 중요했던 건지. 소설에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걸 넘어선 화합인데 말이다.


한신 대지진 때는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 일본인이 서로 도왔다고 겐토는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앞으로 올 손님이 부디 일본인을 원망하지는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선조가 어리석으면 후손이 고생하기 마련이었다. -p.171







종의 진화. (아래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신인류에 대한 이야기는 SF에서 많이 다루어진 영역이기도 한데, 그것을 이런 식으로 풀어나간 데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신인류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신인류의 탄생으로 인한 인간이라는 종의 반응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신인류는 이제 막 태어난 시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이들인지도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럴 것이라고 하는 추측형 시나리오만 소설 내에 무수할 뿐. 물론 그들이 실제로 보이는 능력은 있지만 호모사피엔스인 나로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신인류에 대한 SF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는데 개인적으로 떠오른 작품은 올라프 스태플든의 『이상한 존』. 어느 신인류나 마찬가지겠지만 극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존과 아카리가 계속 겹쳐보였다. 말을 배우는 게 느리고, 얼굴이 크고, 고양이 눈같다는 점 또한. 하이즈먼 리포트에 기록된 대로 만약 제노사이드의 신인류가 제6감을 가지고 있다면 아키리와 존은 더 가까워지겠지. 이상한 존에서도 신인류는 척결되었는데, 이런 제노사이드, 신인류에 대한 배제와 척결은 아무래도 DNA에 각인된 어쩔 수 없는 본능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단한 소설


대단한 소설이었다. 재미라는 점도 좋았고, 치밀한 구성도 멋있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대단한 것은, 인간의 존재와 그 폭력성을 드러내보이며, 우리 존재를 고찰하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진화라는 게 반드시 진보, 진일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 앞으로의 한발, 또 다른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것은, 그럼에도 내가 호모 사피엔스에게 호의적일 수밖에 없는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면 아무 담보물도 없이 자기 목숨을 위험에 처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구하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의 플랫폼에서 떨어지는 외국인을 구조하거나 아니면 목숨 걸고 신약 개발에 뛰어든다던가,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극히 소수 아닌가. 그것도 일종의 진화한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구태여 누스를 만나러 가지 않아도 그런 사람과 길에서 지나쳤을 수도 있겠군." 

-p.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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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앤룩스 NOX & LUX 2012.5.6 - Vol.2
녹스앤룩스 편집부 엮음 / 녹스앤룩스(잡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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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장르잡지 <녹스앤룩스> 5, 6월호. 




표지


창간호에서 많이 지적당한 표지. 창간호는 정말 이게 뭐 하는 잡지인지 알아볼 수 없는 표지였다. 사실 이 표지도 선뜻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픽셀이 튄다고 하나? 그냥 확대한 게 보인다. 리터칭이라도 하지 싶다. 어쩐지 글씨체도 안 어울리고. 


그래도 전호에 비하면 괜찮음! 일단 무슨 기사가 들어있나 알 수 있는 것부터 좋아진 셈이다. 




기사들


이번엔 전체적으로 라이트노벨의 비중이... 아니, 원래 라이트노벨의 비중이 크기도 했지만. 본격 장르문학에 관심 있는 나로서는 '녹스'쪽의 이야기가 약간 부진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1 연재소설과, 앞쪽의 리뷰들을 제외하면 <'장르문학가'이 씨의 논문 작성기> 밖에 없었다는 거. 물론 라이트노벨 관련 기사도 두어 편이니까ㅠㅠ 비교적 균형이 맞기는 한데... 그나저나 하울링 드림 제작 노트는 왜 녹스로 분류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앤인데.


이런 내 장르 편애에 의한 감상은 뒤로 넘기고, 질적인 면에서 보면 문단과 장르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 <'장르문학가'이 씨의 논문 작성기>는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확신 못할 현실의 문제가 제시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기도 했고. 문창과는 저런 식이구나 신기신기. 







이번 호에서 가장 중요한 기사는 비주얼 노벨일 것이다. 솔직히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비연애물 비주얼노벨'로 범위를 한정해놓아서. <하울링 드림>, <틱택토>, <루시>, <위도 625> 이 네 비주얼 노벨이 주요 예시가 되었는데, 물론 예시는 예시일 뿐이지만, 범주가 좁다는 느낌이었다. 앱스토어에서 잘 나가고 있는 <와쳐>도 지나가다가 언급될 뿐이고, 동인형식으로 나온 이전의 한국 비주얼노벨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었다.(11월 소년, 타뷸라의 늑대 등. 물론 지금은 구할 길 없는 작품들이라는 점이 문제이긴 하다) <웬디의 네버랜드>나 <시, 연~삼국지화>같은 연애물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예전에 녹스 앤 룩스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TTT인터뷰 기사([클릭])에서는 다 언급이 되었던 작품들인데 왜 빠졌을까? 주로 스마트폰과 관련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 3- 


물론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에 대한 전반적 소식과 지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 본다면 그리 부족한 기사는 아닐 것이다. 깊이있게 분석하기보다는 요새 이런 게 트렌드, 라고 소개하는 데서 그친 셈이다. 물론 나도 처음 알게된 것들도 있긴 하다. 그동안 의식을 별로 하지 못했던 비주얼 노벨의 '연출'에 대한 인식이라거나.



또 다른 특집은 라이트노벨의 미디어 믹스를 다루고 있다. '던전 앤 파이터'나 '소드 걸스' 등의 게임을 라이트노벨로 제작하는 기획들인데.  솔직히 관심있는 분야가 아니라서. 소드 걸스는 대체 무슨 게임인지도 모르겠고. 카드 게임인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기사는 물론 <본격 편의점 요리>이다. 이건 여기에 왜 들어있나. 내가 읽을 가치가 있는 건가. 잡지보다는 개인 블로그에서나 끼적일 내용 아닌가. 교정은 왜 안 되어 있는가. 사진 화질 안 좋다. 포토샵 처리라도 하지. 나는 왜 이걸 보고 있나......?



편집 실수... 아직도 시행착오 중

교정하니까 생각난 건데. 이리저리 오탈자가 보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작가가 잘못 표기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5월호에서 디자이너의 불찰로 글작가와 만화가 성명이 잘못 표기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5월호의 Trouble X Treble은 스토리를 구성작가 Azure님께서 맡아주셨고, 만화는 새로 합류하신 다군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단비님께서는 앞으로 일러스트 작업에 매진하실 예정이므로, 이외의 그림에는 당분간 참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2012년 5월호의 만화 Trouble X Treble의 글작가 'Azure';, 그림작가 '다군'으로 바로 잡습니다.


2호라서 아직도 시행착오 중인 듯...





연재물


<영생>은 아직 뭐가뭔지 감이 안 잡히기는 하는데. 일러스트 예쁘다.

다 무시하고 신서로님 <A.N.D> 스릉흡느드... 체-셔! 체-셔! 체셔가 나왔다!! 체셔 멋쟁이! 완전 멋있음! 사랑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재구성한 작품인데....이 이야기 지난 호에 했나? 녹스 앤 룩스에서 이게 제일 좋다. AND가 실렸다면 다른 잡지라도 사봤을지도 모르겠다. 




끄트머리의 Q&A


녹스앤룩스는 '트렌드' 잡지입니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서브컬처의 유행과 흐름을 잡아내는 데에 잡지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들, 이 시대의 한국 서브컬처에 필요한 정보들을 소개하는 성격이 강하므로, 문예지나 만화 잡지와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심층기사의 취재보다는 문화 전반의 상황을 두루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전문기사나 특정 장르에 대한 심층기사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지적한 것들은 막판 Q&A에서 밝혀진다... 열심히 불평했더니 막판 반전이!!! 는 농담< 

난 심층 기사가 아쉽지만, 취지가 저렇다니 어쩔 수 없나.

잡지는 적어도 '트렌드'를 잡아내어 소개한다는 취지 하나만큼은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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