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어릴 때 보던 책을 지금 다시 봤는데 정말 아닐 수 있고, 어려서 이해 안 갔던 책을 다시 보니 정말 멋질 때도 있다. 어느 시기에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책들. 그래서 어머니들은 어디서 주워 들은 책을 열심히 자식들에게 사주고, 청소년 권장도서니 하는 리스트도 생기는 것이리라. 






늦어진 독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가 때를 놓친 책이다.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였나. 엄마가 청소년 권장도서랍시고 사오셨다. 이전에 전질로 50권 사둔 민음사 세계전집에 있는 줄도 모르시고. 그래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한동안 집에 두 권이었고, 한 권은 결국 친척에게 넘어갔던 것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기에 읽는 것을 미뤘고, 그래서 펼쳐보는 게 참 늦어졌다. 굳이 미룬 데 대한 변명을 해보자면, 역시 10대에 읽어야한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는데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했었기 때문이다. 호밀밭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좀 더 전에 봤다면 감상이 달랐을까 


청소년의 방황. 홀든이 퇴학을 당하고부터, 집에 들어갈 때까지의 방황. 학교에서의 교우관계에서, 이성에 대한 관심, 어른스러운 척, 성적. 청소년의 모든 고민들이 이 책 안에 들어있었다. 그것도 아주 섬세하게. 소년의 방식이었지만, 소녀들도 모를 바는 아니리라.


내가 뭘 봤어야 하나. 뭘 봐야하나 모르겠다. 분명 내가 중고등학교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여기에 심히 동조해서 우울의 나락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 때도 평범한 소녀만한 감수성은 없었지만, 우울의 바닥은 자주 쳤고 회의적이었고 세상이 싫었더랬다. 시니컬? 시니컬. 시니컬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그때의 나는 세상 만사가 싫은 홀든을 이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물론 더 짜증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겠다.) 지금의 나는 홀든에게 네가 좋아하는 게 대체 뭐냐고 붙잡고 묻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몇 대 때려주고 싶기도 했다. 야 이 중이병 자식아. 라며. 


「오빠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거지?」

그 애가 이런 말을 하니 나는 우울해졌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런 말 하지 마. 왜 그렇게 말하는 거니?」

「오빠가 싫어하니까. 학교마다 싫다고 했잖아. 오빠가 싫어하는 건 백만 가지도 넘을 거야. 그렇지?」

-225쪽


「한 가지도 좋은 걸 생각해 낼 수 없는 거지?」

「그렇지 않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니까」

「그럼 어서 말해 봐」

「앨리가 좋아.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 이렇게 너랑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227쪽



좀 더 일찍 이 책을 봤다면, 내가 가장 홀든과 비슷한 상태(오만하게도 남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믿던 그 때, 나를 빼고 모두를 한심하게 봤던 때)였을 때 봤다면, 감상이 달라졌을까. 달라졌을 것이다. 혹시나 읽고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혹시나일 뿐이고. 지금의 나는 그 때와 다르니까.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감정이입은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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