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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 사랑에 관하여 - 세계의 고전 사상 7-003 ㅣ (구) 문지 스펙트럼 3
플라톤 지음, 박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함께sym 먹고 마신다posium는 의미를 지닌 향연sym-posium. 고대 그리스인들은 음주 모임을 생리적/감정적 쾌락을 발산시키는 장으로 맺지 않고 이야기를 꽃피워 정신적/이성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항연이라는 문화를 만들어냈다."(202) "적당한 음주는 우리의 영혼을 유연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순전히 이성적으로만 사유할 때에는 전혀 생각해내지 못하는 여러 다른 대상들도 사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뿐만 아니라, 술 한 잔 한 잔을 마실 때마다 적도를 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절제하는 연습은 감정에 대한 이성의 통제를 필요로 하는 모든 다른 덕목의 함양에 기초가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플라톤이 음주를 일종의 철학적 사유의 훈련으로 간주하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197-198)
아폴로도로스가 아리스토데모스에게 들은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들려주는 형식으로 향연은 시작한다. 화자가 중첩된 듯한 서두에 다소 헷갈렸지만 아가톤의 집에서 서막이 오른 후부터는 일사천리로 푹 빠져 읽었다.
항연에 참석한 현자들이 와상에 눕거나 앉아 돌아가면서 사랑eros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파이드로스-파우사니아스-에릭시마코스-아리스토파네스-아가톤-소크라테스-알키비아데스의 이야기… 순이다. 엉뚱한 얘기들이 많아 나와서 동화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재밌는 것은 뒤로 갈수록 고차원적이고 유머가 넘치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 소크라테스가 현녀 디오티마에게 들은 이야기-사랑은 진행될수록 높은 단계로 발전-와 같은 전개 형식이다. 디오티마의 이야기인 즉, "하나의 아름다운 육체에서 출발하여 두 개의 아름다운 육체로, 두 개의 아름다운 육체에서 모든 아름다운 육체로, 아름다운 육체에서 아름다운 자기 함양의 노력에로, 아름다운 자기 함양의 노력에서 아름다운 인식에로, 그리하여 그러한 인식들로부터 저 더 높은 단계의 인식에까지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그 인식은 피안의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인식이며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것 자체를 직관하는 것이랍니다."(141-142)
파이드로스는 토마스 만의 중편 <베니스에서의 죽음> 때문에 익숙한 이름. 그가 하는 사랑 이야기에서 건진 것 -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에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이미 신들려 있기 때문"(58) - 앞으로 많이 써먹게 될 것 같은 문구다. 흐흐.
파이드로스의 이야기 중 황당하고도 웃겼던 부분은, 군대를 연인들로 구성하자는 것. 연인 앞에서 싸우다 도망가는 게 부끄러울테니 열심히 싸울테고, 연인의 위험을 목숨 걸고 지켜낼 것이기 때문이라나(뒤로 가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고대 그리스는 동성애가 자연스러웠다).
파우사니아스의 이야기는 조선시대적이다. 계급적이다. 어처구니 없다. 파우사니아스 다음 주자는 아리스토파네스인데 딸꾹질이 나와서 부득불 에릭시마코스가 바통 터치. 의사인 그는 의술의 관점에서 사랑을 이야기 한 후 향연에 초대된 현자답게 박식해서 음악, 천문학, 예견술에 빗대어서도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 중 내가 체크한 것 - "건강한 사람이 하는 사랑과 병든 사람이 하는 사랑은 다를 수밖에 없다"(73), "우리는 결코 사려 깊지 못한 사람들도 좀더 사려 깊은 사람으로 바뀌도록 사려 깊은 사람들을 존중해주고 또한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지켜주어야 한다"(77)
딸꾹질 멎은 고대 희랍 최고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 등장. 미상불, <향연>에서 가장 재미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도 희극이 비극보다 천하다는 괴상한 말이 나오고, 또한 알키비아데스도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를 조롱하는 말투를 한다(<항연>을 저술한 플라톤은 비극이 이데아에 더 가깝게 닿아 있다고 판단. 그러나 결론 부분에 소크라테스는 희극과 비극을 차별하자 않고 둘 다 인정한다). 그러거나말거나 이 천진한 현자는 익살맞다(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선을 당장 사봐야겠다!).
"이 사람 아리스토파네스여! 자네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겐가?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순간에 농담을 하고 있으니 말일세."(80)라는 에릭시마코스의 말에 아리스토파네스는 앞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겠다고 한다. 영화 <헤드윅>과 이승우의 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에도 나오는 '사랑의 기원'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
인간은 본디 둥그런 등과 원형의 옆구리를 지니고 있었다. 네 개의 손과 네 개의 다리, 둥그런 목 바로 위에 완전히 서로 똑같은 두 개의 얼굴이 반대로 놓여 있고 그 위에 머리가 붙어 있었다. 귀도 네 개, 성기도 두 개였다. 이 고대인들은 종이 셋이었다. 성기 두 개가 남성인 종, 여성인 종, 하나는 남성 나머지 하나는 여성인 종 - 이렇게 세 종류였다. "남성은 본래 태양의 자식이고 여성은 지구의 자식이며, 그 두 종의 성질을 모두 지닌 이 세번째 종은 달의 자식인데, 그 이유는 달이 그 두 행성에 모두 관여하고 있기 때문"(83)
그 고대인들은 너무나 오만하여 신들에게 대들었다가 까불면 "다시 둘로 나누어서 외발로 뛰어 다닐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노라"(84)는 경고와 함께 제우스에 의해 둘로 쪼개졌다! "이렇게 인간의 본래 상태가 둘로 나뉘어졌기 때문에, 그 나뉘어진 각각은 자기 자신의 또다른 반쪽을 갈망하면서 그것과의 합일을 원하게 되었다"(85), 그리하여 "우리들 각자는 하나가 둘로 나뉘어진 존재 즉 반편(半片)의 사람"(86)이다.
때문에, 자웅양성이었던 종에서 나뉘어 남자가 된 반편들은 여성을 좋아하고, 반대로 여성이 된 반편들은 남성을 좋아한다. 본래 순전한 여성적 존재에서 반편이 된 여성들은 남자들에 전혀 관심이 없고 여성들에게 친근감을 느끼며, 이러한 부류들로부터 레즈비언이 생기는 것. 반면 순전 남성적 존재였던 반편들은 호모가 되는 것. ㅡ 오, 이 동화처럼 재미난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배꼽이야말로 먼 옛날 인간이 둘로 쪼개졌을 때 제우스의 명을 받은 아폴론이 치료해주며 남겨둔 흔적, 우리의 죄를 상기하라는). 뒤이어 터지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익살에서 나는 얼마나 웃었던고…. 그 익살을 인용하자면, "내가 방금한 말을 자네 에릭시마코스는 내가 파우사니아스와 아가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여 내 말을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방금 말한 그러한 극소수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둘 다 모두 본성상 진정한 남자들인 것 같으니까 말일세."(90-91) - 이 말인즉, 파우사니아스와 아가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
아가톤의 이야기는 매우 현란하다. 사랑에 대한 찬미가 주된 내용이다.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화려한 언변에 엄살을 늘어놓다가, 예의 그 변증법을 실행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이 이상하다 싶은데 아가톤은 자꾸 "네", "네" 동조한다. 나는 의아했다. 그것이 소크라테스의 기교였던 것. 소크라테스에게 휘말린 아가톤은 "소크라테스여! 저는 제가 그때 이야기했던 것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113)며 꼬리를 내린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 정도로 공격을 그만두지 않는다. 살살 달래며 상대방에게 카운터를 날릴 준비를 한다. "그건 아닐세, 아가톤이여! 자네는 그 문제에 대해 훌륭하게 이야기한 셈이네. 그렇지만 조금만 더 물을 테니 대답해보게나!"(113-114)
결국 아가톤은 제압 당한다. "소크라테스여! 저는 선생님 말씀에 반박할 수가 없군요. 그러니 선생님이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 여길 수밖에 없겠습니다." 패자 앞에 관대한 소크라테스! "친애하는 아가톤이여! 사실은 자네가 진리에 대하여 반박할 수 없는 것이지, 나 소크라테스에게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네."(114)
아가톤을 제압한 후 소크라테스는 여유만만 설교하는 입장이 되어 사랑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크라테스의 스승 디오티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 불멸성에 관한 갈구! 인간은 불멸성을 사랑한다는 것. 생산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불멸의 축복. 신은 가진 것을 잃지 않지만 인간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끊임없이 잃어간다. '어린아이일 때의 나'와 '노인일 때의 나'는 다르다. 시간도 인식도 육체도 잃어가는 것…. 그러므로 육체의 지속성은 자식을 생산하는 것. 인간들이 명예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도 그 이유(명예는 기억의 지속성). 육체의 생산보다 더 위대한 것이 영혼의 생산! 그것이야말로 명작을 만들어내는 모든 시인들과 장인! "이러한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본성 가운데서 사랑보다 더 훌륭한 협력자를 찾기는 어렵다는 사실"(143)
막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끝나자 알키비아데스가 술에 취해 아가톤의 집에 입장한다. 아가톤과 소크라테스의 사이에 앉은 그도 역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사랑한다. 미청년을 사랑하고 다니는 소크라테스를 뜨겁게 사랑하는 미청년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사랑을 받는 아가톤을 질투한다. 알키비아데스가 취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언변은 탁월하며 웃긴다. 소크라테스의 외모를 실레노스(심오한 지혜를 지니고 있고, 들창고, 두꺼운 이술, 황소 눈을 가진 매우 못생긴 외모의 소유자)와 가장 비슷하다고 둘러 말할 때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여! 겉모습을 놓고 볼 때, 선생님이 그 조각상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대해 선생님 자신도 아마 반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152)
이어, 소크라테스의 전쟁 중 무공, 신비하기까지한 기행 등을 이야기 하다가 끝내는 "선생님이야말로 유일하게 저의 연인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보이는데, 선생님은 그 사실을 저에게 밝히기를 주저하시는 것 같습니다."(161)면서 속내를 털어 놓는다. 또한 "사실 이분은 나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글라우콘의 아들인 카르미데스와 디오클레스의 아들인 유티데모스 그리고 이분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농락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식으로 행동을 하셨었다네. 실상 그들과 관련하여 이분은 사랑하는 사람의 역할보다는 사랑받는 연인의 역할을 수행한 셈이지. 그래서 아가톤이여! 자네에게 충고하건대, 자네도 이분한테 놀림당하지 말고, 우리들의 경험을 교훈 삼아, 속담이 말해주듯이 '실제로 겪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우둔한 아이처럼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을 걸세."(170-171)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보기 좋게 반박하고 아가톤도 소크라테스에 동조한다. 알키비아데스는 탄식한다. "소크라테스님만 나타나면 어떠한 사람도 훌륭한 청년을 차지할 수가 없게 된다네. 지금도 또한 얼마나 쉽게 그리고 그럴듯한 이유를 대서 이분은 자기 곁에 이 훌륭한 청년을 자리 잡도록 만들었는가!"(173)
갑자기 한바탕 소란스러운 무리가 들이닥쳐서 현자들은 집으로 가고, 아리스토파네스와 아가톤과 소크라테스만이 남아 밤새 이야기를 했고, "그러다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먼저 잠들고 그 다음에 거의 동이 틀 무렵, 아가톤도 잠들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님은 그 두 사람을 모두 잠들게 한 후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고, 아리스토데모스는 평소에 늘 그렇게 하듯이 그분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174-175)
향연을 읽고서 플라톤이 명상적 합리주의자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