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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포퍼는 "비트겐슈타인이 초조한 모습으로 부지깽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며", "자기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그걸 지휘봉처럼 휘둘렀다"라고 회상한다. 그러다가 윤리학의 지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때 비트겐슈타인은 포퍼에게 도덕적 규범의 예를 하나 들어보라고 요구했다. 포퍼는 "나는 대답했다. '초청 연사를 부지깽이로 위협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 대답에 격분한 비트겐슈타인은 부지깽이를 내동댕이 치고 문을 쾅 닫으며 방을 나가버렸다."라고 기술하고 있다."」(15)
1946년 10월 25일, 케임브리지 대학의 작은 회의실에서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 10분간 격렬한 논쟁이 붙었다. 종내에는 비트겐슈타인이 포퍼를 부지깽이로 위협했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도대체 비트겐슈타인은 왜? 부지깽이를 들었을까?!
서두에 박력있는 문체로 사건을 묘사한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회원들의 엇갈리는 진술들, 수십 년 뒤 포퍼는 자서전에서 의혹스러운 그날의 회상 기록을 한다. 저자들은 그 일치하지 않는 진술들에서 두 철학자의 특징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매혹의 카리스마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과 포퍼, 이 두 맞수를 공평하게 다루려 할 때 부딪히게 되는 한 가지 문제는 비트겐슈타인 사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마법의 힘이라고밖에는 달리 마땅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어떤 힘이 그에게 있다는 사실이다.」(37) 케인즈 교수는 케임브리지에 비트겐슈타인이 도착하자 이렇게 말했다. "신이 도착했다. 나는 5시 15분에 도착한 기차에서 신을 만났다." 비트겐슈타인의 제자들은 그가 벽을 통과할 것이라고 말하면 그 말을 믿어버렸다. 「이때 나는 의자의 팔걸이를 어찌나 세게 쥐었던지 손목이 하얗게 될 정도였다. 나는 그가 정말로 벽을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지붕이 무너질까봐 걱정했다. 그것은 그가 지닌 마력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마력의 일부는 이처럼 거의 모든 것을 마술처럼 환기시킬 수 있다는 데 있었다.」(40)
반면 포퍼는 「한 사람은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모습이었고 다른 사람은 왜소하고 평범해 보였기 때문에 전자가 포퍼일 것 같았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실은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한 두 번째 사람이 포퍼였다.」(41)
저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두 철학자의 고향 빈으로 독자를 데려 간다. 그 10분을 위해 아예 뽕을 뽑자는 심산. 비트겐슈타인家는 오스트리아에서 로스차일드家 다음으로 부자였다. 예술의 도시 빈의 최상류층. 비트겐슈타인의 집은 브람스와 쇤베르크와 말러 등이 드나드는 음악 살롱이었다. 또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비트겐슈타인의 누이가 결혼할 당시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유대인이었음에도 막대한 재산 덕분에 양차 대전을 무사히 넘겼을 정도의 가문 출생 막내 귀공자 비트겐슈타인.
반면 포퍼의 아버지는 변호사였지만 마찬가지 유대인이었던 관계로 나치에게 재산이 몰수 당했다. 포퍼는 학업을 포기해야했고 막노동을 했고, 결국은 뉴질랜드로 망명한다…
성공 과정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 비트겐슈타인은 공학도였다. 수학에 관심이 있어 논리 철학으로 한창 명성 날리던 러셀의 책을 읽고는 편지를 쓰게 되고 만나고 대번에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이 천재인 것을 알고 아낌없는 지원을 한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했고. 그를 이해하거나 그를 세상에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오.」(62) 그러나 몇 년 후 이 천재는 스승 러셀을 무시한다. 「걱정 마세요. 절대로 이해 못 하시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65), 「그는 1차 대전 이후 러셀의 모든 철학적 연구가 형편없는 것이라는 얘기도 서슴지 않고 했다.」(66)
그러나 포퍼는 러셀을 존경했다. 「피터 먼즈는 러셀에 대한 포퍼의 태도가 "거의 영웅 숭배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평가한다.」(71) 포퍼는 비트겐슈타인과는 달리 열심히 작업했지만 그의 명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뒤늦게야 출판되었다.
빈 학파는 비트겐슈타인을 '숭배'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빈 학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포퍼는 빈 학파에 속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 끼지 못했다. 후에 포퍼는 혼자서 빈 학파를 박살내버린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 언어의 오해에서 오는 부산물일 뿐이라고 했다.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없다고 못박았다. 「사람들은 철학이 결코 진보하지 않으며 우리는 아직도 고대 그리스인들과 똑같은 철학적 문제에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입이 닳도록 하는 사람들도 정작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가 계속 같은 질문은 던지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275) 반면, 포퍼에게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없고 언어적 수수께끼만 존재한다는 주장은 그가 "즐겨 혐오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287)
이상의 내용을 염두하자면 포퍼에게 비트겐슈타인은 「학문적 적수 이상의 존재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존경받는 변호사의 아들에게조차 닿을 수 없었던 화려한 빈을 상징했다. 포퍼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사회적 지위와 부가 존경받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던 제국의 도시, 인플레이션이 낳은 가난에도 꿈쩍하지 않고 나치마저 매수할 수 있었던 별천지를 보았다. 이 세계는 가난 때문에 뒤처지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해야 했던 자신의 상황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198)
모든 것을 깔보는 천재와 이인자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저돌적인 도전자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은 이러한 제조건에 의해 격렬할 수밖에 없었다. 단, 비트겐슈타인은 포퍼를 몰랐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포퍼는 달랐다. 「포퍼는 어서 시작하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는 에너지가 솟구쳤고 가슴은 쿵쿵 뛰었으며 더 많은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다.」, 「철학이 말의 유희일 뿐이라는 쓰레기 같은 관념을 일소해버릴 것이다. 눈뜨고 못 보아줄 정도로 잘난 척 하는 이 선동가를 해치우리라.」, 「고귀한 자가 추락할 것이다. 빈 학파를 정신적으로 이끌었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그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었던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 저택의 홀을 왔다갔다하며 사색하는 외로운 천재.」, 「오늘밤 승리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사과해야 하리라.」(302-303)
두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방대한 자료를 아우르고 치밀한 기획/구성력을 발휘한다. 비트겐슈타인 추종자 측과 포퍼 측의 엇갈리는 그 날의 부지깽이 사건을 엄청난 괴력(?)으로 파고 들어 '서사'를 화알짝 전개시킨다. 이것은 추리 소설인가?! 오, 이렇게 철학적이고 역사적이고 매력적인 서사를 가진 추리 소설이 있었나?… 철학의 대중화를 꾀함인가?… 재밌다, 너무나 재밌다,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게다가 파트마다 삽입된 매력적인 사진들은 어떻구… 한 사건을 핵으로 두고 자박자박 살을 붙이는 저자들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하며, 그 유쾌한 지적 유희의 독서삼매에 빠질 기회를 그대도 반가이 맞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