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god를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하긴 하지만 예전의 나는 정말 못 말릴 정도로 god를 좋아했다. god 3집 거짓말이 결정적으로 빠지게 된 계기였고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쭉 좋아했지만 거짓말이라는 곡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들의 팬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의 god가 좋았다. 4집 5집 6집이 나오고 모두 구입하면서도 나는 3집의 god를 그 앨범들에서 찾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요즘은 콘써트 하느라 이래저래 바쁘다고 한다. 나도 god 콘써트나 한번 가봤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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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동물이다.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린다.

대단하기도 하다. 어쩌면 그렇게 쉽게 까먹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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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를 좋아하는 학생이다. 나는 정말 우리 학교가 좋다. 우리 학교 특유의 분위기를 동경하고 사랑한다. 세월이 흐르면 나는 학교가 그리워 다시 오고 또 오고 그러다 지나간 시간들을 눈물나게 붙잡고 싶어할 것임을 확신한다. 그래서 지금이 이보다 더 내 인생에서 소중하게 남을 시간은 없다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학교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로 빠질 수 없는 것이 내가 몸담고 있는 동아리이다. 요즘은 학교 생활의 절반이 이 동아리에 관련된 일이라서 더 애착이 간다. 무엇을 하는고 하면 작은 교내의 독서 토론 동아리인데 이 동아리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신입생 모집에서 경쟁률이 가장 높았댄다. 무려 지원자가 50여명이어서 반 친구들은 -그 수북히 쌓인 정성스런 신청서들-에 깜짝 놀라고 다른 동아리 애들도 시샘을 했다. 우리 학교의 한 학년 인원이 300명을 조금 넘는다는 것, 게다가 우리 동아리는 많이 뽑는 것도 아니고 1차 2차 3차 거르고 또 걸러서 10명만 뽑아간다는 것을 감안 할 때 50명은 정말 대단한 수치 아닌감? 우리 학교가 동아리 활동이 왕성하지 않은 학교도 아니고 활성화된 동아리만 해도 10개는 넘을 것인데 이제 고작 "4기" 째를 맞이하는 우리 독우회가 이렇게 반응이 좋은 건 작년이나 지금이나 참 대견(?)하고 뿌듯한 일이다.

작년에 내가 이 동아리에 들어오게 된 동기는 순전히 중학교 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유로 모인 아이들과 독서토론 대회 준비를 하다 도저히 기한까지 맞출 수가 없어서 참가를 포기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아쉬움이 너무나 커서 두고두고 남았었다. 그러다 새로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1기 창단멤버 적부터 쭉 우승신화를 일궈내온 독서토론 동아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당장에 신청서를 질렀다. 다른 학교였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우리 학교였기 때문에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2차 논술을 보고 3차 면접을 통과할 때까지 쭉 그런 생각을 했는데 사실 지금도 내가 그 때 떨어지지 않은 게 신기하다. 나보다 명석하고 우수한 애들이 많이 떨어졌었다. 처음 지원을 할 적에 아 쟤도 지원하네 싶었던 아이들이 모두 떨어졌다. 그런 애들을 제치고(?) 내가 뽑힌 건 도대체 무슨 운이 작용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 과에 독우회이면서 나의 마니또인 남자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실제로 그 선배가 신청서 들어왔을 적부터 내 이름을 동아리 선배들에게 말하고 다녔다든데 흠..

아무튼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나는 어느새 모든 학교 행사와 일정의 주축이 되는 2학년이 되었다. 동아리 신입생을 뽑는 일도 우리 학년의 몫이다. 포스터와 홍보 오디션 뽑힌 아이들과의 대면식 모든 것을 주관한다. 덕분에 3월달의 2학년은 갓 입학한 신입생들보다 바쁘다. 그네들은 이제 막 입학해서 '체감상으로는' 우리보다 더 바쁘고 우린 좀 익숙해져서 덜 하겠지만 어쨋든 할 일은 훨씬 많다.

요번에 우리 동아리에 지원하는 아이들의 신청서를 보니 개성도 문체도 관심있는 책도 각양각색이었다. 마음 같아선 다 뽑아주고 싶었지만 그게 되나. 이번 주까지가 동아리 홍보 마지막 주여서 질질 끌지 말자는 생각에 목요일 날 2차 논술 심사를 했다. 아이들이 많아서 교실을 2개나 빌려야 했다. 양 교실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는 그 눈빛들에 내 자신이 뭐라도 된 것 같아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논술 문제를 나눠주고 쓰는 요령을 대강 알려준 뒤에 앞쪽에서 2학년들과 자습을 하려고 했으나 도저히 공부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1학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곤소곤 떠들었는데 다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어찌나 할 얘기가 많던지. 새 학생 회장 선거에서부터 각 반 임원들 얘기가 주를 이뤘고 우리 독우회 부원중에 학생회에 들어간 사람이 많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만큼 학교에서 주축을 이루는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겠지? 흐흐흐.

그러다 시험을 치루는 도중에 갑자기 일이 발생했다. 수위 아저씨가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우리더러 누가 이 교실 쓰라고 했냐면서 막 화를 내시는 거였다. 우리는 그저 다목적실 교실이 비어있길래 잠깐 빌린 것 뿐인데 그게 원래는 그러면 안되는 거였나? 우리만 쓰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모든 동아리들의 활동의 장이 되어온 다목적실이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지금까지 이 교실을 허락없이 쓴 모든 아이들에게 할 화풀이를 우리에게 다 퍼부으셨다. 그 아이들이 우리가 아니라고 말을 해도 막무가내로 너희가 나를 언제까지 놀릴 것이냐며 역정을 내셨다. 우리는 1학년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밖으로 나가서 얘기하자고 그랬는데도 자꾸만 버티시다가 나와서도 온 복도가 떠나가라 삿대질을 하고 욕을 하고 화를 냈다. 죄송하다고 몇번을 말해도 똑같은 말만 계속 했다. 친구가 무릎까지 끓으면서 사과했는데도 화가 안 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가 이 정도로 사과해야 한다는 사실이 웃겨서 그 아저씨가 퍼붓는 말도 안되는 화풀이에 그래서요라고 응수했다. 모모양은 그 아저씨의 입을 어떻게서든 막으려고 하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니 거기서 울긴 왜 울어. 나는 우리가 상대를 해주니까 더 기가 올라서 말을 막하는 거라 생각하고 그냥 교실로 돌아와버렸다. 그리고 놀란 1학년들에게 거듭 사과를 하고 시험 시간을 30분 연장해주기로 했다. 돌아와서도 승질만 났다. 혼자 쌓인 걸 왜 우리한테 풀어서 애를 울리고 난리야.

그렇게 어찌어찌 2차 논술을 끝마치고(결국 그 날 야자는 몽땅 제낀 셈이 되었다) 아이들의 신청서와 논술 답안지를 모아보니 그걸 일일이 다 읽고 점수 매기는 일이 남아있었다. 시험을 치루면서도 저 많은 페이퍼를 언제 다 읽나 막막했는데 그 아이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걸 또 순위를 매겨서 20명을 가려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3학년 선배님의 말씀을 들으니 글이 좀 떨어지더라도 면접 때 이 애는 한번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싶은 애가 있으면 주저말고 뽑으라고 했다. 우리 중에서도 모모군이 그런 케이스(신청서와 논술은 별 볼일 없었는데 면접에서 대박난)라고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는데 읽다보니 도리어 내가 논술 시험을 받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주어진 예시문들을 잘 이해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내가 그 선택지를 공부해야했고 주어진 질문을 제대로 잡아내고 답변했는지 평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틀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수십개의 답안지를 보며 잘하고 못함을 가리자니 죽을 맛이었다. 5점 만점인데 2점 3점 이렇게 나눌 수가 없어서 내가 준 점수는 3.8, 4.2 식으로 보다 더 세분화되었다. 그럼에도 막상 점수를 매기면 너무 후한 것은 아닌가 혹은 너무 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본 것을 또 보고 몇번을 비교 대조해 봐야 했다. 내 잘못된 판단으로 억울한 아이가 생기면 안되지 않는가. 작년에 시험을 치뤘던 사람이고 우리 학교 아이들의 특유의 그 자존심(왠만한 모든 시험에서 떨어져본 적이 없다는)을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내 공부 시간까지 할애해서 논술 심사에 쏟아부었다. 답안지들이 다 고만고만한 것 같았다. 무쟈게 힘들었다. 머리가 뽀개지는 것 같았다.

나의 논술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페이퍼는 아직도 쌓여있다. 면접 질문들도 만들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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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누군가 아직 기억하고 있다면

 

사진 : 5.18기념관

누군가 아직 기억하고 있다면

- 바람구두

나는 늙는다. 1980년....

나는 늙는다. 1987년....

나는 늙는다. 1992년....

나는 늙는다. 1997년....

나는 늙는다. 2002년....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아직 맑스를 생각하며

산다는 건 얼마나

고리타분한 일인지

80년 광주의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밥 퍼주던 몸빼 아줌마들의

둥글게 굴곡진 몸, 삶, 밥처럼

세상은 따뜻하지 않아 라고

차가운 성당 바닥에 쪼그려 앉아

삼립 단팥빵을 뜯어 먹던 87년

우리가 패했다고 대성통곡하던

너의 흐느끼는 등언저리를 보며

나도 울었지 그로부터

20년이 흐르고 나도 이제 늙었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당신은 여전히 그곳에서

밥을 퍼주고 계신다

몸빼를 입고, 커다란 솥단지에 주걱을

힘차게 휘저으며 아이들을 쏟아낸

두 다리를 굳세게 벌리고 선 당신은

지금도 세상 가장 낮은 곳에 계시다

아아, 어머니!  너무도 거대한 계시...

 

BGM : Qui A Tue Grand'maman - Michel Polnare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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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날짜상으로는 틀림없는 3월인데 지가 쌩 겨울인 척을 한다.
못돼먹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다.

오들오들~ 덜덜덜~






봄은 언제나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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