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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식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평점 :
내 방 책상에는 열두권의 책이 쌓여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며칠 남지않은 10월이 다 가기전에 읽어야만 하는 책들...
내가 그 많은 책들중에서 이상권의 소설집 [성인식]을 빼든건 순전히 가장 작은
사이즈에 얇아 보였던게 소위 ’만만해 보여서’였다. 두껍거나 제목에서 풍기는
위압감으로 무거워 보이는 책들은 최대한 뒤로 미뤄두고, 얇고 가볍게 읽을만한
책을 찾다 고른게 바로 [성인식]이었다. 그러고보면 처음에 이 책을 받아보게 된 이유도
그와 같았던것 같다. 제목에서 풍기는 야릇함에 기대를 갖으면서 짧은시간안에 한 권을
독파할수 있을거란 기대감...
결국 짧은 시간안에 완독했다는 점에서는 기대대로 이루어진 셈이지만 그 계기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근래 읽은 수많은 책들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안에 완독한 책.
하룻만에...그것도 주말도 아닌 낮시간을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퇴근후에 펼쳐든 책을
새벽 한시까지 붙잡고 읽을수밖에 없었다. 아~ 근래 읽은책들 가운데 단연 최고의
소설이다.
’성인식’이라는 단어를 접할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20살, 장미꽃다발, 남친이나
여친, 그리고 키스, 어른이 된다는것, 야릇한 상상, 이 모든걸 단 한소절로 함축하고있는
박지윤의 노래 "나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그대 더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이게 성인식의 이미지다.
이 소설 역시 그런쪽을 상상했던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기대했던 성인식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소설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중고등학교 시절 청소년기에 겪는 사춘기,
또는 성장통을 다룬 소설이다. 제목을 ’성인식’이 아닌 ’성장통’이라고 했어야 할~
소설은 한권의 책 안에 5개의 단편이 묶여있는 옴니버스 단편소설집이다.
성인식, 문자메시지 발신인, 암탉, 욕짱할머니와 얼짱소녀, 먼나라 이야기 이렇게
다섯개의 단편이 성인식 제목으로 책 한권에 담겨있다.
성인식은 [청소년 문학]2007년 여름호에 실었던 ’눈물이 몸보다 무겁다’를 개작한
작품으로 과학고에 다니는 주인공 시우가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 홀로계신 고향집을
찾았다가 몸이약한 시우를 위해 가족처럼 키우던 개를 잡아 약으로 먹이려는 어머니와의
갈등과 개를 잡는 과정을 하나의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성인식’에 비유한 이 책의 대표
단편이다.
이밖에 청소년 학창시절 집단왕따를 주제로 한 ’문자메시지 발신인’과 ’암탉’, 조류독감
에피소드를 다룬 ’욕짱할머니와 얼짱소녀’, 광우병 파동을 다룬 ’먼나라 이야기’는 각기
청소년기의 주인공을 통해 시사적인 세태를 다루면서 주인공이 겪는 아픔을 통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를 담고있다.
재밌는 점은 이명박 대통령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2MB등으로 희화화 한다는 점 ^^
이로인해 작가 이상권은 아마 쥐도새도 모르게 미운털이 박혀 사찰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라고 감히 현직 대통령을 풍자한단 말인가...
이 책의 또다른 특이한점은 말미에 문학평론가 유성호교수의 작품해설집이 있다는점~
이 해설집을 통해 단편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의도와 얼핏 흘려넘기기 쉬운 은유나
의미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다. 이런 류의 책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해서 그런지 꽤나
신선한 느낌.
마지막 작가의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동짓달 어느 날이었다. 나를 찾아온 이장님이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몇시까지 회관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약속된 시간에 나가보니까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의
청년들이 모여있었다. 내 친구들이 대여섯명이었고, 나머지는 다 형들이었다. 그때
마을에는 초상이 나있었다. 요령잡이를 하는 아무개 어른이 나타나더니, 이번 장례식
때는 청년들이 상여를 메야 한다고 했다. 어른들의 회의에서 그런 결정이 내려졌다
면서. 황당했다. 우리들 중에서 상여를 메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러 어른들이 와서
상여메는법, 상여소리 내는법을 가르쳤다. 어른들은 상여를 메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면서 우리한테 술까지 돌렸다. 그러니까 일종의 성인식인 셈이었다.
그때 내나이 열일곱이었다.
이 대목은 첫번째 단편 ’성인식’의 또다른 버전인 셈이다. 아마 작가는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성인식’을 집필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알고보니 마을 청년들이 계속해서
사고를 치고,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심지어 감옥에 가는 이들까지 생기자 어른들이
회의를 하여 내린 결정이었다고...장례를 직접 체험하게 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
하루도 허투로 살지 말고 나쁜길로 빠지지 말아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소설에 나오는 각기 다섯명의 주인공들이 모두 중,고등학생들로 설정되어 있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나마저도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또래 아이가 되어 책속에 몰입할수
있었다.
아동 청소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추임새가 결코 빈말은 아닌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