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만: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땐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
여전히 모자무싸 1화를 곱씹고 있다. 유튜브에서 정신과 의사들과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황동만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을 여러 개, 여러 번 봤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본 영상은 유튜브 뇌부자들 영상이었다. 유튜브 진행자들은 황동만의 구구절절 사연(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과 황동만도 인생이 잘 풀렸다면 저 지경의 성격파탄자는 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우쭈쭈 우리 동만이 힘들어쪄요?
왜 황동만은 망가져서까지라도 자신을 증명하고 싶을까? 인정 욕구의 유무 혹은 강약이 예술지망과 예술안지망의 차이인걸까?
황동만에게 물어보고 싶다. 왜 세상에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나를 증명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나를 증명해야 할 기회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건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 본 적도 없다(인정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의 냉소를 가득 안고 살아가는 건지도, 시인 백석의 나타샤식 패배주의 ㅋㅋㅋ 그게 난가?).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그저 하루를 존버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건지도. 그런데 말입니다, 존재가 무가치한 것, 그 무가치함을 인식하는 게 생존(살아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죠? 자신이 가치가 있냐 없냐를 생각하는 거 자체가 핑계(안일함, 나태) 아닌지? 무엇에 대한 핑계냐면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업무들을 하지 않는(해낼 능력이 없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핑계.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열광했다는 사실에 실망 중이다. 드라마의 인기가 말해주는 건 세상은 황동만들로 가득하다는 거니까 실망이지. 그저 그런 재능을 타고났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주제파악 못한 채 인정해 달라고 징징대기만 하는 사람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칭찬을 주세요. 사랑을 주세요. 10살짜리 애도 아니고 서른 마흔 먹어서도 칭찬은 나를 춤추게 해, 사랑은 유일한 동기부여 하고 있으면 어쩌자는 건가? 거기다 감정시계까지 차고서 내 감정이 이런데, 네가 좀 내 감정에 맞춰라라고 진상을 부리는 거 최악 아닌가.
어느 해외 영화제에 갔다가 구제샵인지 벼룩시장인지에서 구입한 가슴 부근에 구멍이 있는 길고 무거운 가죽 코트를 2차 대전 때 어느 군인이 입어서 총구멍이 난 옷이라고 구차한 소개를 하는 황동만은 그 옷을 입으면 역사의 센터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고 했다(진심 한심!). 황동만은 왜 역사의 정중앙으로 들어가고 싶을까? 센터가 되고 싶은 욕망은 도대체 뭘까? 황동만이 학원강사를 하는 것도 센터가 되고 싶은 욕망을 채워줘서일까? 내 목소리가 가 닿는 곳까지 다 내 거라는 건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인 건가?
+어떤 종류 건 창의적인 작업을 못 한 날은 잃어버린 날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가, 진짜 예술가라면 일을 해야 한다.
+돈 생각 때문에 심란해서 행복하지가 못하다. 돈이 없으니 오로지 돈 생각만 한다. 오전 10시에 아메르 전기회사의 담당자 루이스를 만났다. 엔지니어들은 오전 10시에 출근한다. 그는 나를 고용하고는 싶은데 주당 25달러 이상은 주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주당 25달러로는 기본적인 생활도 힘들다고 말했고 우리는 목요일에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 신규 여자 직원 2만 명을 뽑아야 한다는 패터슨의 윌러드 주식회사에서도 일하고 싶다.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다.
<퍼트리사 하이스미스 일기와 노트 1941-1950>
황진만: 언제까지 집구석에서 놀 건데?
황동만: 노는 거 아니라고. 다 생각하는 거야. 글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줄 알아? 다들 나처럼 일해. 5년에 한 편 10년에 한 편씩 하면서.
황진만: 5년에 한 편, 10년에 한 편 하는 게 그게 일이야? 취미지? 일은 아침에 눈뜨면 씻고 나가서, 어금니 꽉 깨물고 죽기 살기로...
황동만: 한다고 죽기 살기로
황진만: 매일! 될 때까지!
황동만: 매일 죽기살기로 하면 진짜 죽지!
황동만이 20년 동안 영화감독(사실 무직)이라고 착각하면서 글 끼적대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황진만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은 20년 동안 생각만 하는 걸 '업'으로 삼아서 살 수가 없다고. 2~3년 하다가 안 되면 눈 낮춰서 취업하는 거라고. 장기 취준생도 특권이라는 걸 왜 모를까. 20살의 나에겐 그 특권이 없었지. 내 부모는 전혀 비빌 언덕이 아니었고, 언니나 오빠도 없었으니까. 먹고 살만 하니까 영화 전공 하는 거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황동만은 철부지 십 세 같다. 황동만 같은 특권을 가져보지 못한 나로서는 저렇게 철없이 지 좆대로 살면서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는 황동만의 조건이 부럽기도 하다. 예술한다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평생 먹고 놀면서 잘 나가는 친구들한테는 악플 달면서 스트레스 풀고. 어찌 보면 부러운 삶이지. 어머! 나 지금 황동만이 부러워서 이렇게 졸라 까고 있는 거????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었는데 그걸 못해봐서 황동만에 긁혀서 이러는 건가? 나도 비빌 언덕이 있었으면 소설 쓴답시고 집에서 먹고 놀면서 "노는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라고!!"라고 저러고 싶었는데 말이다. 개부럽네, 황동만.
어쨌든 황동만은 주인공이고 드라마의 인기를 보면 많은 동정표와 공감표를 얻은 듯한데(유튜브, 특히 동종업계 사람들이 나도 황동만이다라고 외치는 걸 보면) 1화를 꼼꼼히 다시 한 번 더 본 지금도 나는 황동만이 싫다. 딱 10살 특히 남자애들이 하는 짓거리다. 내가 못하든 잘하든 무조건적인 지지와 칭찬을 바라는 그런 애들. 그걸 40살 먹고도 하고 있는데, 그걸 본 시청자들이 황동만에게 몰입하고 공감하고 저건 내 얘기야 하는데... 박해영 작가는 전국의 황동만들을 격려하고 싶어서 이 드라마를 쓴 걸까? 내 드라마가 너의 변PD가 되어줄게 하는 마음으로 이 드라마를 쓴 거라면 100% 성공한 듯. 전국의 황동만들이 위로받았을 테니.
최대표: 안 되는 거 붙잡고 있으면서 남 잘되는 거 배 아파하지 말고 이제 좀 건설적으로 생산적으로 살자, 응?
황동만: 내 인생이 왜 네 마음에 들어야 되는데요?
황동만의 이 대사를 듣는데 진짜 가슴 깊은 곳에서 빡이 쳐 올라왔다. 같은 말로 돌려주면 "내 영화가 왜 네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요?"
장미란(한선화 배우): 어휴, 아무것도 아닌 새끼가, 쯧.
아무것도 아닌 새끼들이 깝치는 거 진짜 싫다.
사람들은 종종 내 앞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매운맛이라고 앓는 소리 또는 자화자찬을 하곤 한다. 너한테 매운맛인 대소사들이 나에겐 그저 순한맛이었다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걸 말하면 너는 "왜 내 인생이 니 맘에 들어야 하는데요?"라는 악다구니나 하겠지. 그런 악다구니와 함께 니가 그렇게 잘났어? 잘나지도 않은 게. 하는 소리는 토핑으로 듣겠지(경험담).
결론은 모자무싸 1화를 보고 나서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는 거. 에휴... 황동만을 곱씹으면서 내 안을 뒤져봤다. 아무리 뒤져봐도 내 안에는 자신을 증명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인정 받고 싶어서 미쳐버린 황동만이 없었다. 아, 그래서 나는 지금처럼 그저 안빈낙도에 만족하면서 일기나 끼적대면서 사는 거였구나.
그런데 말입니다, 퍼트리사 하이스미스의 일기는 왜 이다지도 재미가 있는 걸까요? 아무 내용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건 아마도 대문호라는 후광 탓일까요? 얼마 전에 구매했는데, 출판된 지 반년 지났는데 초판 1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