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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시간 - 열두 달 숲속 길을 따라서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84
윌리엄 스노우 지음, 앨리스 멜빈 그림, 이순영 옮김, 국립수목원 감수 / 북극곰 / 2022년 4월
평점 :
지난 주말엔 가까운 공원으로 아이와 산책을 다녀왔어요. 여기저기서 꽃 사진을 보내주셔서 '봄인가'싶었는데, 아직 꽤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옷깃을 여미며 핫초코도 한 잔씩 마셨지요. 하지만 한겨울의 핫초코와는 달랐어요. 군데군데 개나리가 샛노랗게 우리를 반겼고, 산수유도 예쁘게 폈더라고요. 목련도 곧 꽃망울을 틔울 듯이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듯했고요. 그게 지난 토요일이었으니, 벌써 나흘전 이야기네요. 그 사이 목련은 활짝 꽃을 피워냈고, 벚꽃도 조금씩 피고 있어요. 와, 이게 나흘 만에 일어난 변화라니. 정말 아름다운 나흘이었군요.
그렇게 눈이 내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한 햇빛이 쏟아지는 날들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몇 달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자연은 완전히 다른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렇게 1년에 네 번이나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니 자연은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요. 직접 겪어온 것도 벌써 서는 일곱 해인데,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이토록 경이롭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그 '변화'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일까, 싶기도 합니다.
이 그림책 <숲의 시간>은 숲의 1년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면지를 지나면 '숲속 마을 지도'를 만날 수 있는데, 그 지도를 따라 한 바퀴 걷는 거예요. 책장을 넘기는 사이 우리는 겨울에서 봄, 봄에서 여름, 또 가을과 겨울을 지나게 됩니다. 이 책은 특별한 서사가 없어요.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캐릭터도 없습니다. 굳이 주인공을 꼽는다면, '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무엇인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사이- 쌓였던 눈이 녹고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계절이 바뀌니 동물들의 하루도 달라져요.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동물들의 집 안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인데, 계절이 달라지면서 집 안에 놓인 물건들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비슷한 톤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것을 꺼내 잘 정돈해 둔 모습이 참으로 정갈하다 느껴졌어요. 그와 비슷하게 동물들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모습뿐만 아니라 사이사이 다른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 더 좋았어요. 아, 이렇게 어울려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스스로 자, 그러할 연. 그 두 글자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 요즘-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무엇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현대사회의 우리가 지닌 슬픔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잠시 쉬어가도,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을 거라는, 안전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나를 채찍질하고, 잠시라도 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우리의 자연이 숲속 동물들의 자연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게 되는 그림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림이 참 예쁘죠. 커다란 종이에 차근차근 쌓아 올려진 이 그림들을 오래 보며- 우리, 좀 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