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 엽기 상식 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 지음, 신수진 옮김 / 비룡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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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을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로 보냈던 분들, 많으시죠? 어쩜 매주 저렇게도 신기한 이야기들을 발굴해 내는지 감탄하며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어요. 어떤 이야기는 놀라움과 감동을 같이 전하기도 했고, 어떤 이야기는 '아하!'하고 무릎을 탁, 치게도 했죠. 이 책 <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사전!>을 보면서 '서프라이즈'를 떠올렸던 건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가 '서프라이즈'처럼 '으응?? 진짜????'를 연발하게 했기 때문일 거예요.


이 책 <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사전!>은 네셔널지오그래픽 키즈 팀이 만든 책입니다. 책, 토픽, 뉴스, 신문 등을 모두 뒤져서 모두가 놀랄만한 사실을 골라내고, 100퍼센트 사실인지 여러 차례 검증을 거쳐 만들었다고 해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 책의 시리즈는 모두 네 권! 동물, 우리 몸, 공룡, 엽기 상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은 '엽기 상식' 편을 소개해 드릴게요. 엽기와 상식은 분야를 넘나드는 만큼 이 책에는 동물 이야기, 우리 몸 이야기, 공룡 이야기가 고루 수록되어 있거든요 :)


이 책은 어떤 스토리가 있다기보다는, 낄낄거리거나 깜짝 놀랄만한 팩트를 쨍한 사진(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 아시죠?)과 함께 타이포그래피로 전달하고 있어요. 이미지로 재현하기 어려운 부분은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한 건데요. 같은 정보라도 어떤 폰트, 어떤 크기, 어떤 색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달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책을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책은 스토리랄 게 없고, 연속성도 없기 때문에 손 가는 대로 펼쳐서 읽어도 좋습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으응????', '대박.........'을 내뱉게 되실 거예요) 대체 어떤 이야기길래 이러냐고요? 맛보기로 조금만 알려드릴게요!


- 빨간색 젤리, 딸기 맛 요거트, 토마토케첩 같은 빨간 색 음식 중 몇몇은 벌레 내장을 으깨서 만든 색소로 물들인 거야. (51쪽)

- 어떤 야구 선수들은 손바닥에 생긴 굳은살을 없애려고 손에다 오줌을 바른대. (65쪽)

- 중국에서 어떤 남자가 아래쪽 눈꺼풀에 줄을 걸어서 자동차를 끌어당겼어. (70쪽)

- 사람의 위산은 엄청 강력해서 단단한 쇠도 녹일 수 있어. 부글부글. (142쪽)

- 루마니아 의사들이 네 살 아이의 콧속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 띠용! (193쪽)


말그대로 '띠용!!!!'할만한 이야기들 사이에는 어른인 우리도 믿지 못할 이야기들도 있고, '대체 왜???'하고 어깨를 씰룩거릴만한 이야기도 있어요. 그러다가 어떤 페이지에서는 저도 모르게 멈춰 서서 한참이나 상상력을 더해봅니다. 오줌에 어떤 성분이 있기에 굳은살에 바르는 걸까? 과학적인 근거가 있을까? 미신일까? 혹은 벌레를 먹는 민족들이 생각보다 많네. 아, 그러고 보니 파리도 달콤한 음식들을 좋아하는데- 혹시 파리가 먹는 벌레들도 달콤한 것 아닐까? 식물이 콧속에서 자라는 것은 일종의 수경재배인가? 씨가 어떻게 콧속에 딱 붙어있을 수 있었지? 싹이 틀 때 아이는 간지럽지 않았을까? 누군가 발견해 줬다니, 그럼 스스로 몰랐다고? 이런 생각들이요.


너무 엉뚱해서 조금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하는 이런 생각들은 왠지 모르게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낄낄거리고, 깔깔거리면서 '진짜?', '진짜래!'하는 사이- 어쩌면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아, 그리고 그 얘기 들어보셨죠? 위대한 발명과 발견은 모두 누군가의 엉뚱한 물음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누구도 물음표를 붙이지 않았던 것에 물음표를 붙이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느낌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히히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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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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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은 고 변희수 하사의 1주기였다. 그는 군인으로서 삶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자긍심을 가진 이었다. 군대를 마음 깊이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으며 고환과 음경을 제거했다는 이유로, 실제 업무 수행 능력과는 무관하게 강제 전역을 통보받았다. 군대에서 규정한 성별 이분법에 뿌리박은 남성 중심적인 '능력 있는 몸'에서 일탈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의 성전환수술이 일탈이었을까. 성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그는 자신의 문제를 소속 부대의 상사인 군단장, 여단장과 상의했고, 치료 목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권유받았었더랬다. 하지만 2019년 12월 수술을 마친 변희수 하사는 부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소속 부대가 변희수 하사가 계속 부대에서 근무하면 좋겠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음에도 그랬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본래 목적을 잃은 규칙과 규율들은 텍스트로 남아 유령처럼 우리 곁을 떠돈다. 오래된 관행이나 관습은 단지 '늘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옭아맨다. 대체 왜? 말이 안 되잖아!라고 외치는 건 옭아매진 자의 목소리일 뿐, 우리 귀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무감각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부당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한국 사회의 비극에 대해 쓰고 있다. 굵직하게는 천안함 생존자와 세월호 생존자를 다루고 있지만, 고 변희수 하사의 사례나 소방공무원, 산업재해 현장 등 가까이에 있지만 몰랐던, 혹은 잊고 지냈던 트라우마들을 다룬다.


저는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사건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외면하는 현재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본문 중에서, 16쪽)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일이 아니라, 그 이후 우리 사회가 천안함을 어떻게 대했고 기억해 왔는가 까지를 포괄한다는 저자의 문장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2010년 3월 26일을 떠올렸다. 세월호 사건에 비해 천안함은 그들의 신분이 군인이었다는 점, 그러니까 그저 개인이었던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와 달리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또 세월호 사건에 비해 많은 부분 가리어졌다는 점에서 잊혔었더랬다. (우리가 천안함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던가, 곰곰 돌이켜보면- 그날 천안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돌이키는 일, 또 희생자는 어떤 사람들이었나를 기억하는 일로 압축된다. 하지만 천안함에 타고 있던 58명은 생존했다)


생존 장병의 목소리와 경험에 귀 기울이는 일은 한국 사회가 어떤 곳이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천안함 생존 장병의 눈을 빌려 바라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그들을 잊고 살았다. 그들은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모욕 받아야 했고, 그날 이후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림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려웠다.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과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패잔병'이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해서, 그들은 숨어지냈다. 찾아보니-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는 갈 곳을 잃은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님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했던가)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설자리가 없다. ...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과 별개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삶을 옥죄어서는 안 된다. 사망자와 생존자의 고통을 비교해서도 안 되고,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을 폄하해서도 안 된다. 그런 말들로는 생존자의 상처만 더 깊어질 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20100326 / 20140416

두 개의 숫자가 적힌 문진이 참으로 묵직하다. 문진을 책에 가져다 대니 글자가 확대되어 보인다. 어떤 이야기는, 이렇게 오목렌즈를 들어 확대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논리가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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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만나는 봄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83
김지인 지음 / 북극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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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포근하게 내리는 겨울밤, 이제 그만 겨울잠에 들어야 하는데 아기곰은 동굴 벽에 꽃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엄마 곰이 아기 곰을 품에 안고 "우리도 이제 자야지." 다독이자, 이번엔 질문이 쏟아집니다.


우리는 왜 겨울잠을 자요? 잠을 자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꿈속에서 어떻게 알게 돼요? 봄은 왜 저를 기다려요? 꿈속에서 어떻게 봄을 데려와요?


하품을 하면서도 엄마 곰은 아기곰의 질문에 대답하지요. 엄마 곰의 이야기에 아기곰의 눈이 반짝입니다. 정말 꿈속에서 봄을 만날 수 있을까요? 혹시 봄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요? 어떻게 해야 봄을 꿈속에서 데려올 수 있을까요? ... 엄마의 다정한 토닥임과 포근한 단어들 사이에서 아기곰은 이내 봄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고, 겨울잠에 듭니다.


토닥토닥,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보듬어 본 경험이 있다면- 엄마 곰의 표정과 말, 행동 모두에 공감하며 그림책을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엉뚱한 듯 아닌 듯, 질문에 질문을 이어 붙이는 아기곰의 상상력은 그림처럼 '마그리트'를 닮기도 했군요.



그나저나, 정말 봄은 언제쯤 오려나요- 입춘이 갓 지나 받아든 그림책을 보고, 또 보고, 또 펼쳐봐도 아직 겨울이네요. 이제 곧 3월이니, 거짓말처럼 따뜻한 봄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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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인간의 선량함, 그 지속가능성에 대한 뇌과학자의 질문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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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타적 행동을 할까? 상대가 소중한 사람이라서? (우리는 때로 일면식도 없는 이를 위한 이타적 행동을 하기도 하지 않는가) 도덕적으로 옳은 방향이니까? 혹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 이 책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는 인간의 선량함과 그 지속가능성에 대해 묻고, 뇌과학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답한다.



책은 이타적 행동은 타인으로부터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해 줄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이타적 행동의 이면에는 자신의 능력과 이타적 성향을 과시하는 '값비싼 신호'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정욕구'다.



이 책은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많은 긍정적인 가치들의 기저에 있는 인정욕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정욕구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면 인정 중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다룬다) 또한 이타성과 공정성을 인정욕구가 발현되는 또 다른 양상으로 보고,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어떤 일들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함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타인을 돕거나, 불공정한 상황에 목소리를 내는 일을 '자신의 더 나은 평판'을 위해서 한다는 것인데- 진짜 목적이 무엇이든 그들의 행동은 선한 것이었으므로 인정욕구를 위한 이타성과 도덕성을 마냥 뭉개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어떻게 하면 인정 욕구를 건강한 이타성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지, 건강하고 합리적인 이타주의자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인정욕구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테니까.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마음을 이기심의 발로로 훼손하고자 함이 절대로 아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했고,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건설적이기도 했으나-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는 '뇌과학'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부지불식의 순간에 일어나는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이나 희생까지도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고 쓴 데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일기도 했다. (기찻길에 뛰어들어 시민의 목숨을 구한 일이라던가, 하는 뉴스에서 우리는 그의 희생에 감사하고, 경의를 표하지만- 그가 그런 평판을 위해서 기찻길에 뛰어들었다고 볼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므로) 하지만 지나치게 이타성의 순수함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오히려 약간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돕는 절대다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데도 동의했다. 따라서 우리는 일말의 이기심도 없이 타인만을 생각하는 순수한 의협심을 강조하기보다 사회적 평판을 좇는 욕구의 기처에 깔린 심리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정성과 이타성의 이면에 숨은 인정욕구는 앞에 내세우기에는 조금 꺼림칙하지만, 사실 우리 행동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기만족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니까) 어쩌면 나의 항상성을 유지해 주는 타인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한 노력은 인정 욕구의 근간이 되는 새로운 차원의 욕구, 혹은 가치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면의 인정욕구를 인식하고, 건강하게 타인과 소통하고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정욕구야말로 이제까지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이 될지도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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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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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철거되고 없지만) 아파트 입구에 조형물이 하나 있었다. 오각형이 알록달록하게 붙어 축구공 모형으로 둥글게 설치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것이 놀이기구 같았던지 자꾸 오르려고 했고, 어른들이 보기에는 넓은 앞마당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애물단지였다. 해서 설치된 지 만 4년을 넘기지 못하고 철거되었다. 철거 동의 여부를 묻는 설문에 나 역시 크게 고민하지 않고 동의했더랬다.



미련 없이 떠나보냈던, 철거되고 나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는 그저 광장으로 주민들에게 돌아왔다. 조형물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철거되고 보니 꽤 넓은 공간이었다. 여기 왜 굳이 조형물을 설치했다가, 금세 철거하는 수고로움이 더해졌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다.



거리의 조형물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우선 동상과 조각 등 정부 주도의 기념 조형물이다. 두 번째, 문화예술진흥법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을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 건축비의 1%(2000년부터 0.7%)를 회화, 조각 등의 미술품에 쓰도록 한 이른다 '1% 법'에 따라 설치된 미술품이다. 세 번째, 서울의 경우 서울시가 공공미술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하는 '서울은 미술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제작한 작품이다. 마지막은 기업들이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설치한 사례다. (본문 중에서, 10쪽)



아파트의 조형물은 두 번째 경우에 속했던가 보다. 건축비의 0.7% 라면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일 테니, 조각을 광장 안쪽으로도, 바깥쪽으로도 설치한 것일 테고. 의외로 거리에 미술작품이 많다, 싶었던 것은 모두 이러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에 의한 것이겠거니, 싶다. 그런데 거리로 나오면 그만인가. 건물 앞을 지키고 서서 누구나 오며 가며 감상할 수 있는 미술품은 대개의 순간 외면받는다. 왜 그럴까. 이쯤에서 우리는 수많은 거리 조형물 가운데서 어떤 것이 좋은 작품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거리로 나온 대개의 미술품은 '조각'이다. 조각은 그 자체로 공간감을 지니기에 어디에, 어떻게 세워져 있는가에 따라 맛이 다르다. 흰 벽으로 둘러싸인 미술관에서 예술의 아우라를 풍기며 전시되던 작품도 거리로 나오는 순간 처지가 달라진다. 미술관에서는 모든 환경이 작품을 떠받들어주지만, 거리로 나온 순간부터 조각은 일상의 풍경과 경쟁해야 한다. 알록달록한 간판, 근처 빵집에서 새어 나오는 빵 굽는 냄새, 어딘가로부터 시작된 음악소리, 자동차 소음- 여기에 더해 핸드폰 화면, 나란히 걷는 이의 이야기까지.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기에는 우리의 시선을 뺏는 요소가 많아도 너무 많다. 그 사이에서 거리로 나온 '조각 작품'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아니, 어떤 작품이 거리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어떤 작품은 특정한 거리에서 고유의 의미를 생성해낸다. 그러니까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놓일지에 대해 입체적인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공공미술은 그랬던가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1% 법에 떠밀려 무엇이든 빨리 설치해버리고자 했던 관행으로 공공미술이 외면받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이 책 <거리로 나온 미술관>은 숱한 고민을 안고 탄생한 공공미술의 뒷이야기가 실려있다. 공공미술의 좋은 사례라 하면, 해외의 것이 먼저 떠오를 법도 한데 저자는 끝까지 국내 공공미술 작품에 집중했다. 여기에는 광화문 흥국생명 앞의 '해머링 맨'같은 유명한 작품도 있지만, 인천국제공항의 아트포트 프로젝트, 국립중앙박물관의 건축 이야기, 녹사평역, 서울로7017, 중랑 용마폭포공원, 서대문 유진상가 등의 이야기도 실려 공공미술에 대한 시각을 보다 확장시키기에 용이했다.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웠던 것은 미술과 건축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뒷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세종문화회관 기둥 양식이 박정희 군부독재 시대의 남북 체제 경쟁의 산물이라는 점과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상이 그 자리에 설치되는 과정에 박정희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를 합리화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 등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피면, 거리로 나온 많은 작품들을 쉬이 만날 수 있다. 늘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대할 때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내 삶은 미술관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현대의 조각들은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우리 삶에 와 안긴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순간들을 기대하게 됐다. 이제, 조금 더 두리번거리면서 걸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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