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해탈 아루나찰라 총서 14
까라빠뜨라 스와미 지음, 대성 옮김 / 탐구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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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를 한마디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아를 여러 마디의 말로 제대로 묘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햇빛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님에게 햇빛을 설명하는 것과 같이

아무리 잘 설명하더라도 장님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이해탈’, 이 책은 수행자를 위해 진아의 속성을

최대한 잘 설명해보고자 노력했다.


“진아는 일체를 보지만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보이지 않는다.”

  ; 우리, 보는 자들은 진아의 일부 속성들이 대상화된 보는자 자신이기 때문에 ‘진아’ 자신을 볼 수는 없다. 대상화된 모든 관념이나 의식들이 진아로부터 나투어졌으므로 그들 스스로가 가장 내밀한 자기 자신인 ‘진아’를 볼 수는 없다. 성경에서 ‘나를 보고 살아남을 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나투어진 것들이 가장 내밀한 핵심인 진아를 알기 위해서는 진아가 되는 길이 있을 뿐이다. 진아 자신조차도 자기를 볼 수는 없다. 자신을 대상화시키면 이미 자신이 아니다.


진아는 가장 내밀한 핵심이기 때문에 진아로부터 나투어진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나투어진 그 모든 것이 허상임을 안다. 그 자신으로부터 나투어졌기 때문에 자신의 빛을 거두어들이면 나투어진 것은 사라진다.

진아가 자신의 빛을 거두어 들이면 마음자리조차 사라진다.

오직 명료한 각성만 있을 뿐이다.

마음자리조차 사라지므로 털끝만큼의 생각도 일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진아는 자신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생각을 일으키면 진아는 진아의 자리에서 나투어진 마음자리로 물러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진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이유는 나투어진 자리에서 진아를 보려고 애쓰기 때문이며, 진아의 자리로 가지 않는 한 순수 진아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아의 자리에서 자신의 빛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스스로 보기가 좋았다 라고 한 것이 이 뜻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행의 핵심은 순수 주시자의 자리로 이동하여 지속적으로 머무는 것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가장 내밀한 핵심인 진아에 항상 머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수행자들이 지금 이 책을 읽고 모두 이해 할 수는 없을지라도, 옆에 두고 한 번씩 뒤적인다면 언젠가는 큰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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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오쇼 라즈니쉬 지음, 장순용 옮김 / 들녘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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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쇼의 The Book
우리가 오쇼의 the book을 읽고 매 주제별로 깊이
명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의미와 우리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모든 주제 각각에 대한 오쇼의 시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오쇼의 다른 책에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측면이
기술되어 있어서 존재를 보는 오쇼의 여러 시각들을 좀 더
폭넓게 볼 수 있었다. 
 

오쇼의 책들은 너무 많다.
그렇다고 그 책들이 다른 저자들의 책에 비해 무게가 덜한 것도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오쇼의 모든 책을 읽고 그의 말을
놓치지 않고 마음에 새기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주제별로 적게는 2쪽에서 많게는 10쪽 정도로 
 비교적 알맹이만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오쇼의 핵심사상의 간파
하기가 비교적 쉽다.
각자가 흥미 있는 몇 가지 주제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다면 인생과 존재를 보는 오쇼의 사상을 거의 통째로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느덧 글을 읽는 나 자신도 오쇼와 같은 방향을 인생과
존재를 보는 느낌이 베어 나오는 것 같다.

오쇼의 잔잔한 미소가 보인다.
무거운 현실의 일상이 한결 가벼워지고 심각함이 떨어져 나간다.
삶이 무거운 현대인들이 읽으면 삶의 무게가 한층
가벼워질 것이다.
오쇼의 깊은 명상을 공감할 수 없는 분들에게는 좀 따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오쇼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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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살다가 가지는 않았을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 도덕경 등에서도 앞선 문명의 많은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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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단타, 예수, 간디
S.프라바바난다 지음, 황필호 옮김 / 강남대학교출판부 / 2002년 10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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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간디의 삶의 철학이 진리에 위배되지 않듯이 베다와 성경의 내용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리를 알수있는 훌륭한 책이었다.
간디 명상록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이명권 옮김 / 열린서원 / 2003년 7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05년 01월 1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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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진리를 탐구하는 일반인들뿐 만 아니라 영적인 수행단계에 들어가 있는 수행자들에게도 그 깨달음의 단계를 넘어서는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리는 결코 많은 말들이 필요치 않다. 아주 명쾌하고 간단하지만 피나는 노력과 자제가 수반되어야 한다. 진리는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할 뿐
바가바드기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간디 해설, 이현주 옮김 / 당대 / 2001년 10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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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디의 명상록을 읽고 간디의 팬이 되었다. 간디도 예수나 부처처럼 깨달은 영혼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간디가 직접 저술했거나 말했던 내용은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다.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책이란 아무 책이나 많이 읽는다고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꼭 필요한 진리만을 모아 놓은 책을 반복해서 읽고 그 뜻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디 자서전-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간디 지음, 함석헌 옮김 / 한길사 / 2002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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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듣기로 간디는 태어 날 때부터 위대한 영혼이었다고 한다. 예수님처럼..... 간디와 Jesus는 닮은 점이 매우 많다. 간디는 내면적으로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능력들을 사용하지 않고 인간적인 고뇌와 고통을 감내하며 우리들에게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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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 흰구름의 길 오쇼의 장자 강의 1
오쇼 라즈니쉬 지음, 류시화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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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시절, 희랍에는 유명한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며, 다른 한 사람은 디오게네스였다.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누리는 무아지경의 환희와 침묵에 대해,

그리고 거울 같은 그의 눈이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정복하러 떠나는 길에 디오게네스가 사는

가까운 강둑을 지나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가 보고 싶어서 그곳으로 갔다.

디오게네스는 벌거벗은 채로 겨울 아침 햇살을 즐기고 있었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조용했으며,

강물이 그의 곁을 흘러가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다.

알렉산더 같은 사람은 물질과 소유에 관한 것

이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알렉산더 왈 “난, 알렉산더 대왕이다.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 난 그대를 도와주고 싶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웃음을 터뜨리며

디오게네스 왈 “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옆으로 약간 비켜 서 달라.

당신은 지금 나의 태양을 가로막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디오게네스 앞에서 자신이 걸인처럼 느껴졌음에 틀림없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온 세계가 필요하며,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디오게네스 왈 “그대가 나처럼 만족하기를 원한다면

이리 와서 벌거벗고 누워라.

미래를 잊고 과거를 떨쳐버려라.

아무것도 그대를 막지 않는다“

 


알렉산더 왈 “그대 말이 옳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그대처럼 편안해지고 싶다“

디오게네스 왈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안해지기 위해 그대는 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알렉산더 왈 “내가 승리자가 되었을 때,

내가 온 세계를 정복했을 대 그때 다시와서 배우겠다.

그리고 이 강둑에, 그대 곁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자 디오게네스 왈 “여기 누워 즉시 편안해 질 수 있다면

왜 미래를 기다리는가?“

알렉산더는 갑자기 그가 침몰하는 느낌을 받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죽음과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는 서둘러 디오게네스로부터 도망쳤다.

알렉산더의 전 생애동안 디오게네스의 망령은

알렉산더를 따라 다녔다고 전해진다.

그가 어디를 가든 디오게네스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밤에도, 꿈속에서도 디오게네스는 웃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죽을 때가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는 그것이 결코 오지 않음을 알았다.

알렉산더는 죽을 때 빈손이 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도록

자신의 왼손을 자신의 관 밖으로 내어놓도록 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는 같은 날 죽었다고 전한다.

 


알렉산더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거지로 죽었고,

디오게네스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그대로 가지고

죽음을 통찰하면서 황제로 죽었다.

인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밖으로 나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애써 증명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이 그 어느 누구도 아님을 깨닫는 길이다.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아무도 아님을 깨달으라.

그때 그대는 새로운 차원 속으로 폭발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전체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밖으로 나가서 애써 자신이 누구임을 증명하려고 했다.

에고는 빌어 온 자아일 뿐이다. 

에고는 다른 사람에게, 대중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자아는 그대의 확실한 존재이다.

그것은 그대의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가져갈 수 없다.

---삶의 길, 흰구름의 길---

 


우리는 에고를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가?

그 욕망의 충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수하는가?

자아는 세상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보고 욕을 하고 비웃더라도

자아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에고가 기분 나쁘게 느낄 뿐이다.

에고가 없는 자는 진정으로 자아로 삶을 살 수 있다.

디오게네스처럼, 장자처럼....

우리는 보통 장자를 노자의 아류로 많이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노자의 도덕경이 워낙 유명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즈니쉬가 해설한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을 읽고

전문가들이 장자를 노자보다 더 높이 생각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노자는 정치색이 너무 짙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위의 글과 같은 분위기의 일화들이 많이 나오는 책으로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명상하게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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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체험여행
박석 / 모색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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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 깨달음에 관한 책을 읽을 때 깨닫고 난 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의 책은 잘 읽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배울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설픈 깨달음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오히려 깨달음에 관한 개념들에 혼란만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증된 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다.


요즘은 불교의 선에 대한 책을 보았는데 그것이 깨달음의 전부인지, 또 요가를 통한 깨달음과의 차이점 그리고 요가와 도가에서 이야기하는 몸속의 에너지 체계 등의 상이점이 궁금하였다.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박석교수의 “명상의 위대성과 위험성”이란 심포지엄 원고를 읽고 “깨달은 자가 속한 문화와 종교에 따른 집단주관이 영향을 미쳐 깨달음의 수준도 많은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보였다. 그래서 박석교수의 책을 한권 읽어보기로 하였다.


*** 책 내용 중에 “화두선과 요가의 수행법을 비교하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선종의 깨달음은 마음의 해탈에 그친다. 그러나 요가의 깨달음은 마음의 해탈뿐만 아니라 육체마저도 완전히 자유롭게 한다.

  - 철학적 심오함에 있어서 아무래도 선의 깨달음이 요가의 깨달음에 비해 더 깊다. 또한 일상성과 완전히 괴리되지도 않는다.

  - 대부분의 요가 성자들은 현실과 원만하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들은 너무나 초월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고 그래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히말라야의 깊은 동굴 속에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 나는 더불어 사는 삶, 나누는 깨달음이 더욱 가치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아래 글은 박석교수의 심포지엄 내용 중 일부이다.

  - 최근 인터넷에서는 사이비 종교나 명상에 반대하는 안티 사이비 사이트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그 중 사이비 명상단체로 지명한 단체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명상단체로 성공한 대부분의 단체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단월드, 수선재, 도화재, 법륜공, 마음수련원, 붓다필드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현재 단월드 게시판은 단월드에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 잠정적으로 폐쇄된 상태이고 이에 대해 공방이 오고가는 중이다.

    이 사이트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고발내용 중에는 객관적인 태도를 상실한 감정적, 인신 공격적 내용도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일리가 있는 부분도 많다.


  박석교수의 주장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깨달음을 수단으로 해서 현실세계에서 명성이나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들이 많다. 이들의 폐해도 자못 크다고 생각된다. 완전하게 깨닫지 못한 자들이 깨달음을 수단으로 개인적 욕망을 탐하지 않고, 나누는 깨달음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된다. 박석교수도 앞선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책은 구도 중에 일어났던 많은 내용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초보 명상 수행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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