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철학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는 책 


<장자>를 읽다보면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해 먼저 알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시대적 상황이라 하면 사상적 밑바탕으로 공자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역사적 밑바탕으로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 더 거슬러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공자의 사상에 대한 이해에 상당히 목말랐다. 장자가 가장 영향을 받은 인물은 노자보다 오히려 공자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신의 사상을 전개할 때 공자에 의지해 전개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에 호가호위하면서 논리를 전개하기도 한다.


흔히들 장자, 그리고 노장사상이라 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경구를 연상하게 만든다. 암기식 정규 교육의 훌륭한(?) 자산으로 남아있는 글귀다. 우리는 여기서 자연을 '공간으로서의 자연'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장자>를 읽다보면 그 자연이 아니라 '이치로서의 자연'임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노장사상이 9세기 당나라 시대의 선승들에게 계승되면서 이러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지만, 장자 사상의 근원적 가치는 단지 속세를 떠난 자기 수양과정으로만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개인의 자유(또는 개인의 초월), 그리고 상호의존성에 의거한 비본질론적인 철학으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자는 유가적 견지에서 덕목과 규범을 앞세운다.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절대적 권위을 얘기한다. 제도나 이념, 도덕, 명분 등을 내세운다. 반면 장자는 이러한 것을 부정한다. 오히려 개인의 소요유(消遙遊)를 얘기한다. 보편적,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상대적, 시각주의적 진리를 앞세운다.


이러한 도를 설명하는데 장자 철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상관개념이 들어간다. 현대식으로 옮기면 변증법의 상호침투, 상대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있음은 없음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美 또한 醜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는 상관개념에 의하면 유가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가치의 중요성의 의미가 삭감되어버린다. 이러한 상관개념을 발전하면 도대체 보편타당한 진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철학으로 발전되고, 그러다보면 도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도의 보편주의에 다다르게 된다.


서로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며 아웅다웅하는 제가백가가 쟁명하는 시대에 가히 경침을 울릴 수 있는 철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상대의 논리를 억누르면서 이기는 철학이라면, 장자는 상대의 논리를 인정하면서 이기는 철학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과연 백가쟁명의 시대에 개인의 자유, 초월을 내세우는 태도가 옳았느냐는 것을 논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느낌이 든다. 장자의 무위의 정치가 과연 옳았는지 조금 갸우뚱해진다. 정치로 나아가려는 안회를 말리는 공자 얘기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공자는 장자 자신을 의미한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여기서 공자(곧 장자)는 개인의 도 닦는 것이 먼저라면서 '심재(心齋)'하라고 안명론의 입장에서 가르치고 있다.


군웅할거 시대에 개인의 자유, 개인의 성찰을 그 무엇보다도 우위에 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공자의 철학은 현실정치에 훨씬 걸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자든, 장자든 누구나 고전을 쉽게 접목시켜 해설해놓았다고 한다. 그 '쉽다'라는 것에 함정이 있다는 느낌이다. 시오노 나나미도 역사를 볼 때는 과거 사람들의 눈으로 먼저 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전을 쉽게 접목시킨다는 서적들의 대부분은 현대적 사례에 맞춰 해설하는 것에 연연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장자의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제대로 장자를 볼 때 오히려 현대로의 접맥이 훨씬 수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쉽게 접맥시킨다는 책들이 그 당시 얘기를 하지 않은 채 자구의 해설과 현대의 재미있는 사례 끌어들이기에 급급한 해설로 치우치고 있는 점이 우리의 고전 읽기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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